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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피플>70개 해외미술관 탐방하고 돌아온 최병식 경희대 교수

작성자
김철수
작성일
2009.11.10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2157
내용

<피플>70개 해외미술관 탐방하고 돌아온 최병식 경희대 교수


미술평론가이자 미술시장 전문가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최병식(55) 경희대 미술대 교수가 최근 해외 70개 미술관을 탐방하고 돌아왔다. 발 빠르게 앞서 가는 해외 미술관들의 동향을 파악한 그는 인터뷰 자리에서 향후 국내 미술관들이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사항들을 조목조목 짚어냈다. 지난 8월10일 (사)한국사립미술관협회 주최로 코리아나화장박물관에서 열린 정부의 사립미술관 지원정책 진단관련 특별좌담회 직전 종로구 안국동의 한 카페에서 최병식 교수를 만났다.
<편집자 誅>


“미술관 경영, 기발한 생존전략으로 정면 돌파해야 해야”


최병식 경희대 교수. 그는 이번 여름 방학을 이용해 유럽의 미술관을 중점적으로 살펴보고 돌아왔다. 손가방 하나 들고 유유자적하는 일정이 아니라 커다란 카메라 가방을 메고 70여 곳의 미술관을 하루에 6~7군데씩 돌아다니는 강행군이었다. 부어오른 발을 잠시 쉴 틈도 없을 정도로 빡빡한 일정이었다. 미술관 연구로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도 아니고, 커다란 명성을 얻는 것도 아니고, 그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열심인 이유가 뭘까?


“미술관과 박물관과 인연을 맺게 된지 6~7년 정도 됐다. 2004년에 사립미술관 ㆍ 박물관 평가단장을 하면서 인연을 맺게 됐다. 그동안 미술관과 박물관을 많이 다녔지만 미술전공자지 미술관 전문가라고 말할 순 없었다. 뮤지엄을 직접 연구하겠다는 생각을 한 건 2005년 말쯤이었다. 현장을 다니면서 좀 충격을 받았다. 우리나라가 5000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고 문화를 상당히 향유하고 있는 국가라고 생각했다. GNP나 GDP 기준으로 봐도 그렇다. 그런데 현장을 다녀보니까 그렇지 않더라. 문화국가라고 할 수 있는가, 회의적이었다. 사회기반 시설에 대해서 정부가 너무 무지하다. 전문가들마저도 뮤지엄이 무엇인지 모르고 뮤지엄을 추상적으로 생각했다. 또 천편일률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어놓고 정부가 뮤지엄을 제한하고 그랬다. 문화국가를 소망하는 사명감 같은 게 작동한 것 같다.”


지난 2005년에 안식년을 기회로 미국과 프랑스 등 50개 정도의 해외 뮤지엄 실태를 조사했던 최 교수는 올해 다시 유럽을 중심으로 외국의 뮤지엄을 집중적으로 탐방하며 추가로 자료를 조사했다. 최 교수는 이번 탐방을 통해 인상 깊었던 뮤지엄을 몇 곳 꼽았다.


“로마 스페인 광장 바로 옆에 사람들이 누구나 찾는 유명 아이스크림집이 있다. 그 코너에 키츠박물관이 있다. 영국의 서정시인 존 키츠(1795~1821)를 기념하는 곳이다. 버려졌던 것을 한 시인이 발견해서 기금을 모아 만든 뮤지엄이다. 엄청난 유물을 전시했다기보다 살아가는 역사의 흔적을 후세에게 보여주는 뮤지엄이었다. 그게 인상적이었다. 미술관 하면 우리는 거창한 미술관을 생각한다. 프랑스의 세잔 화실의 경우에는 엑상프로방스에 화가의 작업실을 생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그가 쓰던 정물대, 의자, 그의 손때가 묻은 가구들을 보면서 관람객들은 마치 그를 만나는 것처럼 감동을 감추지 못한다.”


크고 엄청난 규모의 뮤지엄 보다 작지만 알찬 뮤지엄에 감동한다는 최 교수는 영국 런던의 초상화미술관에 대한 충격도 고백한다.
“영국 런던의 초상화미술관에 갔는데 너무 충격적이었다. 작품이 60점정도 걸려있는 작은 규모의 미술관이었는데 40명 정도 들어가면 꽉 차는 좁은 공간에서 4중주 연주가 펼쳐지고 있었다. 한 후원자가 기금을 내서 음악대학과 연계해서 연주하고 있었다. 그날 많은 미술관을 돌아다니느라 무척 피곤한 상태였는데 그 피곤이 한꺼번에 싹 가시는 기분이었다. 연주를 들으면서 종합예술이 이렇게 매치될 수도 있다는 게 감동적이었다.”


딱딱하고 근엄한 미술관이 아니라 다양한 즐길 거리가 있는 시민들의 휴식처, 마음의 안식처, 다양한 문화의 교차점, 바로 그것이 최 교수가 생각하는 미술관의 이데아다.
최근 세계적인 트렌드도 예민하게 포착하고 돌아왔다. 바로 산업 전반에 불고 있는 친환경 열풍이다. 친환경 열풍이 미술관에도 접목돼 ‘에코 뮤지엄’ 트렌드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무더운 날씨에 발품을 팔아가며 다양한 뮤지엄들을 보면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경각심을 느낀 최 교수는 국내 미술관들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어 뮤지엄 관련 책을 내기로 마음먹었다. 총 세권으로 잇따라 낼 계획이다.
“2004년부터 피부에 와 닿는 본격적인 한국형 박물관 ㆍ 미술관학 책을 내야겠다고 생각한 뒤 외국여행 때마다 뮤지엄을 조사했다. 지난 6년 동안 모은 자료를 보니까 서적이 몇 백 권에 사진자료만 6만장이다. 이번 여름방학 때만 7000장정도 찍었다.”


발품을 팔면서 현장에서 느낀 점도 빼놓을 수 없는 소득이다. 뮤지엄들이 엄청나게 다양한 성격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을 짚었다.
“우리는 소장품이 있어야 미술관이라고 하는데 소장품이 없어도 좋은 전시기획만으로도 좋은 미술관이 될 수 있다는 걸 배웠다. 또 외국에는 근대 미술관이 상당히 많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근대 미술을 다루는 미술관이 전무하다시피하다. 뮤지엄들이 살아남기 위한 전략을 얄미우리만큼 잘 쓰고 있는 것도 눈에 띄었다.”


뮤지엄은 비영리 영구교육단체다. 작품을 사고팔아 이익을 남길 수가 없다. 때문에 후원금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그러나 정부의 기금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뮤지엄 스스로 자구책을 끊임없이 강구해야한다.


“뮤지엄들이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굉장히 노력하고 있더라. 한 예로 뮤지엄에 갈 때마다 아트 숍에서 기념 연필을 하나씩 샀는데 모아 보니 한 50개 정도 됐다. 연필 한 자루에도 정성이 들어가 있어서 사고 싶게 만들더라. 4층으로 된 미술관이면 1개 층을 아트 숍으로 운영할 만큼 아트 상품 개발이 활발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트 상품 개발을 잘 안한다. 기부금의 경우도 놀라운 아이디어로 활발하게 유도하고 있었다. 영국에서 지인을 통해 멤버십카드를 가지고 테이트 모던 미술관을 갔는데 멤버십 룸을 들어갔더니 전망이 무척 좋았다. 전망이 좋은 장소는 멤버십 카드를 가진 사람에게만 공개한다. 억울하면 기부하라는 의미다. 또 멤버십 회원에게는 파티를 할 수 있도록 장소를 무료로 빌려준다. 내셔널갤러리 등은 기부자를 위한 방이 따로 있어서 남들이 보지 못한 작품을 먼저 보여준다. 기부자를 위한 야간개장 등의 아이디어도 있었다. 우리나라가 배워야할 점이다.”

최 교수는 “물론 우리나라 사립미술관들이 처해 있는 어려움이 있겠지만 네트워크를 통해 자립도를 높이는 시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책개발을 어렵게 생각할 게 아니라 각 지역의 뮤지엄들이 네트워크를 만들면 손쉬워진다. 예를 들어 뮤지엄 관장이나 학예사들이 해외 뮤지엄을 탐방하러 나갔다 온다. 그러나 갔다 오면 그걸로 끝이다. 다녀온 이야기를 타 미술관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글을 쓴다든지, 하는 사례가 없다. 정보를 공유하고 정책을 제안하고 해마다 애뉴얼 리포트를 만들면 작은 아이디어들이 모여 큰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또 한 미술관이 살아남기는 어려워도 몇 개의 미술관이 뭉치면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다. 한 미술관이 한 개의 연필을 만들려면 돈이 많이 들지만 80개의 미술관이 모이면 개발비를 대폭 아낄 수 있다. 바로 네트워크의 힘이다.”



최 교수는 또 각 미술관들이 사람들의 발길을 유도하는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개발해야 한다는 사실도 강조했다. 미술관에 사람들이 가지 않는 이유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없기 때문이란다. 이 다양한 프로그램을 미술관이 통째로 책임지려고 하지 말고 작가나 비평가, 놀이전문가, 연극인, 미술치료사 등 연관분야 전문가와 함께 연계해서 기획하면 한결 수월하다는 노하우도 일깨워준다.
“프랑스에는 ‘박물관의 친구들’이라는 제도가 있다. 박물관을 후원하는 서포터스 제도다. 이처럼 뮤지엄 스스로 노력해서 우군들을 많이 만들어나가야 한다.”


어려운 조건 속에서 고군분투하며 미술관을 잘 운영해나가고 있는 국내 사립미술관들에 대해서 칭찬의 말도 아끼지 않는다.
“미술관은 문화의 주유소다. 사람이 적은 면 단위에서 미술관을 하는 관장님들은 문화적인 독립운동 정도의 의지를 갖고 있는 분들이다. 사명감도 있고 국가의 문화를 생각하는 정신력이 크다. 그 것이 바로 국가를 지탱하는 힘이라고 믿는다. 그 중에서 손꼽을 수 있는 사립미술관은 세계적인 전시를 많이 여는 토탈미술관과 상큼한 기획으로 유명한 사비나미술관, 지역에서도 수준급 전시를 터트리는 시안미술관과 함께 코리아나미술관, 무등현대미술관 등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며 박수를 아끼고 싶지 않을 정도다.”


최 교수는 그러나 미술을 보급하는데 큰 역할을 하면서도 사회적으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국내 사립미술관들의 현실에 대해서 안타까운 마음도 덧붙였다.
“미술관들이 너무 수줍고 순수해서 자기가 하고 있는 걸 남에게 잘 알리질 못한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분위기다. 그러면 안 된다. 자기 미술관을 적극 홍보해야 한다. 해외 미술관 관장들은 아주 자신감 있게 자기 미술관을 홍보한다.”


남들이 종교가 뭐냐고 물어보면 “미술관 ㆍ 박물관교”라고 대답한다는 최 교수. 그만큼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일 게다. 그런 만큼 최 교수는 미술계의 발전, 문화의 발전을 위해 앞으로도 꾸준히 몸과 마음을 바칠 계획이다.


“학자 입장에서 대학에 있다는 건 혜택을 받은 일이기 때문에 미술관에 조금이라도 힘이 되고 미술관이 대안을 마련하는데 힘이 된다면 기꺼이 심부름꾼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미술관을 운영하는 분들은 더 말할 나위가 없지만, 외롭게 이 분야의 학문을 연구한다는 것 또한 고독하고 또 고독해서 지치고 고립될 때가 많다. 가장 큰 문제는 엄청난 재원이 소요되는 현장답사나 자료 확보의 어려움이다. 해외답사는 일반 연구와는 비교하기 어려운 치밀한 준비와 재원이 필요하다. 언어만 해도 전 세계 7개 언어를 지원받아야 하고 무거운 카메라를 메고 세계를 누벼야 한다. 2년 전 단번에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고 싶을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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