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명록
내용
지난 주말 아내와 창원 시내 팔룡산을 다녀왔네. 연말이라 바쁜 일정 때문에 멀리는 못 가고 근교 산이라도 올랐던 거지.
산마루에 잠시 쉬면서 간식을 먹으려는데 아내가 떡을 한 조각 떼어 ‘고수레’ 하며 숲속으로 던지는 거야. 참 아무렇지도 않은 행동인데 갑자기 별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더만.
‘고수레’, 천지신명에게 감사하고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뭇 생명에게 먼저 음식을 배려하는 보시와 사랑의 정신이 담긴 주술적 행위지. 근데 그게 오늘날 나만 중요하고 나만 편하면 된다는 식의 팍팍해진 우리들의 일상과 막 뒤섞여 서글퍼지는 거야.
며칠 전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시내에 가다 보니 창원시청 앞 광장의 사랑의 온도탑이 눈에 띄었어. 근데 연말이 코앞인데도 목표치에 40%밖에 오르지 못했더라구. 크리스마스 트리 불빛은 화려한데 절반도 미치지 못한 온도탑이 상대적으로 왜 그리 어둡고 썰렁해 보이는지.
경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내놓은 자료를 보니까 작년 이맘때보다는 조금 나은 편이라고 하더라고. 하지만 목표액 절반도 안 되는 데다, 작년에 전국 17개 시도 지회 중 경남지역 모금액이 꼴찌였기 때문에 작년보다는 조금 나아졌다고 해도 안타까운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어.
어떤 이들은 요즘을 두고 이렇게 얘기를 하더라고. 서로 조롱하는 무장된 말들로 소통하면서 내가 나를 속이고 모두가 모두를 속이는 공범의 시대, 의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상한 역설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하지만 나는 이 사회적 갈등을 일종의 성장통으로 여기고 싶어. 그래서 차라리 불확실한 시대, 혼돈의 시대라는 표현이 더 깊이 와 닿아.
또 한편으로는 사랑할 줄 모르는 불감증, 감사할 줄 모르는 불감의 시대인 탓도 있을 거라 생각해.
감사한 마음을 가지면 겸손해지고 다른 이들의 삶이 보이곤 하는데 우리들은 차안대를 끼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리며 어렵다 힘들다고만 하잖아. 우리를 그런 경주마들로 만드는 우리 사회도 문제가 있지만, 어찌 보면 그 선택도 우리가 했던 건 아닐까 해.
결과에만 집착하면 과정과 근원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지 않던가. 세상사 모두 우연한 결과처럼 보이지만 모두 그럴만한 이유를 품고 있지. 따져 거슬러 올라가 보면 모두 내가 선택한 길인데 결과만 두고 책임을 전가시켜 흥분하고 분노하고 있지나 않나 생각해 보게 돼. 병의 원인을 알아내고 약을 처방하듯이 눈여겨보거나 귀 기울여 근원을 찾으면 해법도 보이겠지.
두려움을 설렘으로 바꾸는 힘은 도전정신에 있다고 했어. 그리고 부조리에 대한 분노야말로 우리를 성장시키는 동력이라고 나는 믿어. 또 진정한 사랑은 외로움과 불안 끝에 맺힌다고 했어.
가슴을 맞대면 서로의 온기가 들고, 서로 등을 기대면 튼튼한 울타리가 될 거라는 걸 나는 믿어. 큰 아픔을 겪고 나면 세상살이가 진중해지듯이 오늘의 성패를 바탕으로 내일은 좀 더 진화하겠지.
이별은 또 다른 인연을 위해 잠시 자리를 비켜주는 일일 뿐이라고 나 그렇게 자기 위로를 하고 싶어. 함께 지낸 삼백예순날 결코 내 사랑이 되지 못한 그대, 굿바이 무술.
산마루에 잠시 쉬면서 간식을 먹으려는데 아내가 떡을 한 조각 떼어 ‘고수레’ 하며 숲속으로 던지는 거야. 참 아무렇지도 않은 행동인데 갑자기 별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더만.
‘고수레’, 천지신명에게 감사하고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뭇 생명에게 먼저 음식을 배려하는 보시와 사랑의 정신이 담긴 주술적 행위지. 근데 그게 오늘날 나만 중요하고 나만 편하면 된다는 식의 팍팍해진 우리들의 일상과 막 뒤섞여 서글퍼지는 거야.
며칠 전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시내에 가다 보니 창원시청 앞 광장의 사랑의 온도탑이 눈에 띄었어. 근데 연말이 코앞인데도 목표치에 40%밖에 오르지 못했더라구. 크리스마스 트리 불빛은 화려한데 절반도 미치지 못한 온도탑이 상대적으로 왜 그리 어둡고 썰렁해 보이는지.
경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내놓은 자료를 보니까 작년 이맘때보다는 조금 나은 편이라고 하더라고. 하지만 목표액 절반도 안 되는 데다, 작년에 전국 17개 시도 지회 중 경남지역 모금액이 꼴찌였기 때문에 작년보다는 조금 나아졌다고 해도 안타까운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어.
어떤 이들은 요즘을 두고 이렇게 얘기를 하더라고. 서로 조롱하는 무장된 말들로 소통하면서 내가 나를 속이고 모두가 모두를 속이는 공범의 시대, 의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상한 역설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하지만 나는 이 사회적 갈등을 일종의 성장통으로 여기고 싶어. 그래서 차라리 불확실한 시대, 혼돈의 시대라는 표현이 더 깊이 와 닿아.
또 한편으로는 사랑할 줄 모르는 불감증, 감사할 줄 모르는 불감의 시대인 탓도 있을 거라 생각해.
감사한 마음을 가지면 겸손해지고 다른 이들의 삶이 보이곤 하는데 우리들은 차안대를 끼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리며 어렵다 힘들다고만 하잖아. 우리를 그런 경주마들로 만드는 우리 사회도 문제가 있지만, 어찌 보면 그 선택도 우리가 했던 건 아닐까 해.
결과에만 집착하면 과정과 근원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지 않던가. 세상사 모두 우연한 결과처럼 보이지만 모두 그럴만한 이유를 품고 있지. 따져 거슬러 올라가 보면 모두 내가 선택한 길인데 결과만 두고 책임을 전가시켜 흥분하고 분노하고 있지나 않나 생각해 보게 돼. 병의 원인을 알아내고 약을 처방하듯이 눈여겨보거나 귀 기울여 근원을 찾으면 해법도 보이겠지.
두려움을 설렘으로 바꾸는 힘은 도전정신에 있다고 했어. 그리고 부조리에 대한 분노야말로 우리를 성장시키는 동력이라고 나는 믿어. 또 진정한 사랑은 외로움과 불안 끝에 맺힌다고 했어.
가슴을 맞대면 서로의 온기가 들고, 서로 등을 기대면 튼튼한 울타리가 될 거라는 걸 나는 믿어. 큰 아픔을 겪고 나면 세상살이가 진중해지듯이 오늘의 성패를 바탕으로 내일은 좀 더 진화하겠지.
이별은 또 다른 인연을 위해 잠시 자리를 비켜주는 일일 뿐이라고 나 그렇게 자기 위로를 하고 싶어. 함께 지낸 삼백예순날 결코 내 사랑이 되지 못한 그대, 굿바이 무술.
김일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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