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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경 기자와 함께하는 미술산책] 최행숙 ‘VITALITY’展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2.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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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1275
내용

[김유경 기자와 함께하는 미술산책] 최행숙 ‘VITALITY’展

고뇌에 찬 ‘5초의 붓놀림’

기사입력 : 2012-05-22  

 

최행숙 作 ‘vitality’

멀리서 봤을 땐 넘실대는 파도라 생각했고 가까이 갔을 땐 여인의 흑단 같은 머리카락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크고 뭉툭한 검은 덩어리를 어떻게 저 가녀린 여작가가 그릴 수 있었을까. 슬쩍 작가를 떠보았습니다. “미세한 붓으로 하나하나 덧칠하셨죠?” 이런, 수줍게 웃던 그녀의 눈매에 일순간 매섭게 날이 섭니다.

‘모노크롬’(monochrome)이라는 말을 아십니까? 한 가지 색만 사용해 그린 그림이라는 뜻을 지닌 모노크롬. 지역에서 모노크롬 작업을 하는 작가는 그리 많지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창원 the큰병원 8층 숲갤러리에서 29일까지 열리고 있는 최행숙 작가의 ‘VITALITY’전은 모노크롬이라는 작업방식이 가진 조형성을 느낄 수 있는 드문 전시입니다.

실제로 최 작가와 비슷한 시기에 모노크롬에 도전했던 많은 작가들이 다시 색조의 세계로 돌아간 반면, 최 작가는 4년째 묵묵히 한길을 가고 있습니다. 최 작가는 색채에 매료돼 서양화를 전공한 후 15년 동안 회화작업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색에 대해 한계를 느꼈고, 아이러니하게도 ‘블랙’에 주목하게 되었는데요. 특히 블랙이 가진 정제미와 모든 색을 포괄하는 흡입력에 매료됐다고 합니다.

‘VITALITY’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번 전시의 핵심은 그림 한 점 한 점에서 느껴지는 ‘선의 생명력’에 있는데요. 한마디로 그녀의 그림은 캔버스 위에서 소용돌이치고 간 기운의 궤적입니다. 실제로 그녀는 ‘선의 생명력을 빼면 내 작품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단언합니다. 한마디로 그녀는 동양서화가 가진 힘찬 기운과 여백의 미를 표현하는 데 혼신의 힘을 쏟고 있는 것입니다. 서양화 재료로 동양화풍을 그리는 생소한 작업방식에 대해 ‘이미 예술에는 장르라는 것이 무너지지 않았느냐’고 최 작가는 반문합니다.


이제 막 모노크롬에 발을 들여놓을 시기, 최 작가는 덕수궁 근처의 한 화방에서 20㎝짜리 일자붓을 보고 어떤 영감을 얻게 됩니다. 그날 이후로 일자붓 3개를 못과 철사로 덧대어 현재 사용하고 있는 60㎝짜리 대형붓을 만들었습니다. 그 붓을 검은 아크릴에 적신 후 온몸을 던져 일필휘지로 작품을 마감하는 것이 그녀의 작업과정입니다. 최 작가는 ‘붓이 너무 커 대걸레를 빨듯 호스를 이용해 씻어내야 한다’며 천진난만하게 웃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웃음 뒤에는 엄청난 고뇌가 숨어 있습니다. 최 작가의 작품은 며칠, 몇 달의 기나긴 사유 끝에 폭발된 ‘5초의 미학’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붓에 묻은 아크릴이 말라버리는 5초 안에 작품을 완성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짧은 순간 그녀를 감싸는 폭발적인 힘에서 작품이 잉태되는 것입니다. 한번 쓱 휘두른 붓놀림 같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나긴 내면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지요. 이를 통해 관람객들은 여과되지 않은 힘찬 생동을 느낄 수 있으며, 그것이 바로 최 작가가 의도한 바이기도 합니다.

최 작가는 앞으로 100호 이상의 대작만을 제작할 계획이라는 포부를 밝혔는데요. 자신의 철학을 담기에 100호 미만은 그 공간이 너무 좁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해마다 꾸준하게 개인전을 열며 자신만의 확고한 작품세계를 펼쳐보이고 있는 최행숙 작가. 그녀의 다음 작품들도 기대됩니다.

김유경기자 bora@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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