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전시소식
머리가 터질 듯한 고통이자, 그만둘 수 없는 숙명이며 신성한 밥벌이다! ‘창작은 당신에게 무엇인가?’ 물었을 때 뭇 작가들에게서 돌아온 대답입니다. 하지만 한국화가 김경현은 스스로의 작업을 ‘운동’이라 말합니다. 들여다보고 있자면 담담한 평온이 먹물 퍼지듯 찾아오는 그림을, 정작 작가는 ‘운동하듯’ 그린다니요. 그의 초대전이 열리고 있는 창원 Artspool삼진미술관과 신월동 작업실에서 김 작가를 만났습니다.
그는 창원대에서 논개와 유관순 국가표준영정을 그린 윤여환 교수에게서 그림을 배웠습니다. 현재 충남대에 재직 중인 윤 교수는 당시 서양화를 전공하려던 김 작가를 한국화로 전향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제 그림은 문인화에 가까운 한국화입니다. 한국화는 원근감과 사실감이 살아있는 묘사력을 기본기로 합니다. 그 점을 높이 사셨던 것 같아요.” 문인화는 선비나 사대부들이 여흥으로 자신들의 심중을 그린 그림을 말합니다. 즉, 풍경을 마음이라는 필터에 한 번 걸러서 만들어진 관념적인 이미지를 그렸다고 할 수 있는데요. 따라서 세세한 묘사는 생략되고 간략한 붓질이 풍경의 실루엣을 형성합니다. 이에 반해 한국화는 같은 수묵화 장르임에도 문인화에 비해 실제를 바탕으로 한 묘사를 중시합니다.
그의 이런 뛰어난 묘사력이 빛나는 소재가 바로 1986년부터 그려온 병아리와 닭입니다. 그는 요란하게 두리번대고 푸드덕거리는 병아리와 닭의 섬세한 동세를 포착하기 위해 움직임을 스케치하고 사진을 찍어 면밀히 관찰했습니다. 또한 보이지 않는 근육과 뼈의 구조도 꿰뚫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붓 끝에 실어 일필로 내뿜었습니다. 하지만 1년 동안 매일같이 병아리와 닭을 그려도 그가 원하는 보송보송한 털의 질감은 표현되지 않았고, 고심 끝에 그는 윤여환 교수를 찾아갑니다. “딱 한마디 하셨어요, 소재와 재료를 일치시키라고. 곧바로 광목천을 구해 그려보았지요. 광목은 실의 꼬임마다 자잘한 털이 있는데, 이 털이 먹을 흡수하면서 부드러운 느낌을 주지요.” 이런 노력 덕에 그는 닭과 병아리를 소재로 그린 ‘그 어느 날의 대화’로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특선으로 입상합니다. 2009년부터는 언덕에 홀로 우뚝 서 있는 소나무를 주로 그렸습니다. 하지만 근래에는 두 그루 이상의 무리지어 자란 소나무를 그립니다. 31일까지 열리는 이번 개인전에서는 약 6m짜리 광목천에 꽉 들어찬 거대한 소나무 군락 작품을 선보였는데요. “소나무는 마치 삶의 버팀목인 어머니처럼 느껴졌어요. 그런데 작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그때부터 쓸쓸하지 않게 여럿이 무리를 지은 소나무를 그렸습니다.” 소나무를 뒤덮고 있는 몽환적인 하늘에는 아교와 물을 배합한 용액을 사용했습니다. 용액을 먹 위에 떨어뜨리면, 아교 성분이 먹을 바깥으로 밀어내며 밤 하늘에 펼쳐진 오로라와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마지막으로, 어떤 연유로 작업을 ‘운동’이라 표현했는지 되물었는데요. 그는 ‘호흡을 조절하고 힘의 역학을 이해하는 것이 먹을 쓰는데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흐트러짐 없이 붓 전체를 밀고 내려가 정확하게 마무리 짓는 것, 오른손을 쓸 때 자연스레 왼손이 뒤로 가며 신체의 균형을 잡는 것. 그는 무릇 진정한 한국화가라면 이 이치를 알아야 붓촉이 머금은 진한 농묵과 중간지점의 중묵, 가장 나중에 발현되는 연한 담묵 모두를 자유자재로 쓸 수 있다고 역설합니다.
김유경 기자 bora@knnews.co.kr
출처:경남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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