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전시소식
서예가 한메 조현판 씨가 크기, 모양새, 글씨 형태에 따라 다양한 낙관을 들어보이고 있다.
서예, 도자기, 한국화 등 대부분의 예술작품에는 ‘낙관’이 들어간다.
글로 쓰는 낙관, 도장으로 찍는 낙관이 있고, 도장 낙관은 크기, 모양새, 글씨 형태에 따라 다양하다.
왼쪽과 오른쪽에 찍는 낙관, 한 개 찍는 낙관, 여러 개 찍는 낙관 등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법칙도 존재한다.
서예가 한메 조현판(曺鉉判·61·창원시 마산합포구 한메서예연구원 원장) 씨가 최근 낙관에 얽힌 자료를 모아 의미 있고 재미 있는 책을 펴냈다.
‘낙관과 서예 문인화-낙관법과 그림 읽기’라는 책이다. 이 책은 조 씨가 지난 10여 년간 모아온 낙관과 관련한 한국, 중국, 일본 등의 참고자료 113종을 모아 체계적으로 집대성했다.
서력(書歷)이 긴 서예인이라면 한번 해 보고 싶은 작업이지만 누구도 선뜻 나서지 못한 ‘대업’을 끝낸 조 선생을 최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서예교본 발행하는 등 연구하는 서예가
서력 50년을 넘긴 조 씨는 현재까지 5권의 책을 냈다. 창작활동과 문하생 지도에도 바쁜데, 어느새 5권의 책을 집필하다니. 틈틈이 연구하는 그의 집념을 엿볼 수 있다.
학원 과외가 금지되고 예능교습만 가능했던 1985~1988년에는 서예의 대중화를 위해 ‘서예기법 강좌’라는 서예가이드를 경남신문 지면으로 4년간 연재했다. 당시 이 강좌는 한글 서예 입문자들의 지침서가 됐다.
이후 2005년 ‘쉬운 한글서예’라는 책을 만들었는데, ‘서예기법 강좌’의 참고자료 등을 첨가해 보완하면서 분량을 늘렸다.
2007년에는 ‘명언명구 365’라는 책을 펴냈는데, 일반인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이 책은 동양고전, 서양고전 등에 나오는 명언을 모아 일반인이 교훈이나 가훈으로 활용하기 쉽도록 엮었다.
또 같은 해 ‘조국강산’이라는 책자에 노산 이은상 선생의 시 72수를 고체(古體)로 써서 발표했는데, 당시 고체 서예의 교본이 나왔다는 평을 받았다.
지난해 12월에는 우리나라 시(詩) 서(書) 화(畵) 분야에 아주 의미있는 책을 내놨다. 바로 ‘낙관과 서예문인화- 낙관법과 그림 읽기’라는 책이다.
자료가 풍부했던 옛날과 달리 시대가 바뀔수록 정리가 안 돼 귀중한 자료들이 산실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 조 씨가 서예인·일반인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도록 일목요연하게 자료를 정리했다. 그래서 그는 이 책이 가장 만들기 힘들었고, 애착이 간다고 말했다.
◆낙관에 숨어 있는 선조들 지혜 찾아낸 서예가
조 씨는 “낙관에 대한 자료가 흩어져 있고, 찾기 힘들어 10년이라는 오랜 준비기간이 필요했다”면서 “낙관을 많이 쓰는 서예인으로서 젊은 시절부터 언젠가 한 번은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에 틈틈이 요점별로 정리한 것을 이제서야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게 돼 뿌듯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이 공유해야 문화가 전승된다고 밝힌 그는 낙관을 사용하는 예술인 중 전국에서 처음으로 자신이 이 분야를 정리한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도대체 낙관이 무엇입니까?
△낙관(落款)은 작품의 완성과정을 밝히는 뜻이지만 오늘날에는 작가가 자기의 작품임을 밝히는 뜻으로 서화(書畵)에 필자가 자필의 증거로 자신의 이름이나 아호 등을 쓴 서명과 인장을 찍는 전체를 말합니다.
-낙관이 왜 중요합니까?
△인감증명서가 사람을, 토지증명서가 땅의 주인을 정확하게 증명하듯이 낙관은 작품의 주인을 말하는 증거자료여서 중요한 거죠.(허허)
-‘낙관과 서예문인화-낙관법과 그림 읽기’라는 책은 누가 읽으면 좋은가요?
△서화예술인은 물론, 예술에 관심 있는 일반인도 유익하도록 그림의 의미와 뜻을 알 수 있도록 했어요. 서화의 뜻을 알면 감상을 더 깊게 할 수 있죠. 예술인들에게는 낙관 찍는법, 장법(章法·문장에 관한 규범), 낙관을 쓸 때 문장 구성의 원리, 선인들의 낙관법 처리를 더듬어볼 수 있는 자료집인 거죠. 예술인들이 자칫 낙관을 잘못 쓰거나 찍는 오류를 예방할 수 있죠.
◆한글의 아름다움 만방에 알리는 서예가
조 씨는 원래 한글과 한문서예에 정통한 예술인이다. 하지만 서예계에서는 한글 서예가로 더 높이 산다.
할아버지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붓과 먹을 가까이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그의 글솜씨를 알아본 교사들로부터 늘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의 서체는 전체적으로 힘이 있고 깔끔하다. 단아하지만 웅건한 맛을 풍기는 그의 서체는 온화하지만 하나의 뜻을 세우면 반드시 관철해 내는 그의 성품을 꼭 닮았다. 붓을 들어 행해온 오랜 적공(積功)도 그의 서체 속에 녹아 있어 가히 서력의 높이를 가늠케 한다.
그가 한글 서예에 심취해 온 것은 한글서예가 한문 서예와는 다른 독특한 색깔의 장법이 있기 때문. 한문은 글의 중심 맞추기를 주로 하지만 한글은 중심 맞추기가 아닌 우측 맞추기로 구성되는 특이한 구조로 인해 한글만이 가지는 섬세한 예술미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한글을 예술작품으로 승화해 세계인들에게 자랑하는 것 또한 이 땅에 살고 있는 서예인들의 책무라고 강조하면서 죽을 때까지 한글 서체의 예술화 작업을 게을리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그는 한글 서예가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서예가 한 사람의 노력보다는 전 서예인들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글 서예만 공부하는 것도 좋지만 한글·한문의 고전 자료를 두루 써보고 장점을 연구하면서 좋은 점을 취합해 새로운 방향으로 연구하는 노력이 있어야만 좋은 한글서예가 후대에 전승된다”고 그는 밝혔다.
취재 말미에 조 씨는 21세기에 맞는 한글 서예교본 종합판 책자를 만들어 수년 내 공개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귀띔했다.
글= 조윤제 기자·사진= 김승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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