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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 호동이 트로피 진열대가 내 보물이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1.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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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1600
내용


그를 만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개그맨 강호동 씨의 아버지라면 호화저택에서 남다른 노년생활을 보내고 있을 줄 알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그냥 평범한 동네사람이었다. 붉은색 티셔츠에 옛 마산시의 영어문양이 박힌 모자를 반쯤 눌러쓰고 있는 그는 영락없는 동네 할아버지였다.

"내가 이래 봬도 강호동이 아부지야, 우하하하." 처음에는 귀를 의심했다. 그러나 듣고 보니 눈매와 입모양이 비슷했다. 무엇보다도 호탕한 성격이 강호동 씨와 똑같았다.
강 씨는 자신의 과거부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너그들은 모르겠지만 우리는 한국이 가난할 때 나고 자랐어, 사람들 거진 다가 헐벗고 굶주렸지. 우리 때 비하면 요즘 거지들도 호강하는 거야"라며 "앞으로 좋은 세상 많이 보것다"며 웃었다.

강 씨는 진주 이반성면에서 태어나 부모 슬하에서 농사를 짓다가 1972년 37살 되던 해에 마산으로 왔다. 한국 현대사에서 상공업 발전의 중추적 역할을 했던 한일합섬이 마산에 자리를 잡아가던 무렵이었다. 그는 처음에 사촌동생의 도움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그 동생이 (주)넥센과 KNN의 강병중 회장이다.

"내가 도움 없이 클 수가 있었겠나, 다 도와줬기 때문에 그런 거지."

처음에 오동동 아케이드에서 소고기 장사를 시작했다. "내가 마산 와서 소고기 장사로 30억을 벌었어." "한일합섬, 현대중공업, 인천제철에 내 고기를 납품했지." "한일합섬 직원들 모두 내 고기를 먹고 일했지, 암." 강 씨는 어느덧 옛 생각에 잠긴 채 말을 잇지 못했다.

강 씨는 "마산출신의 한일합섬 김한수 회장이 고향사람을 굉장히 아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쟁업체가 납품권을 얻기 위해 수작을 부릴 때도 김 회장이 "처음 계약을 맺은 업체와 의리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고 말하며 자신의 업체를 지켜 줬다고 한다.

이후 강 씨는 15년간의 고기장사를 끝냈다. 그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면 '칼칼히 손씻고' 다른 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고기장사로 번 돈으로 오동동에 5층짜리 건물을 짓고 삼진여관이라는 간판을 달았다. 이곳저곳에 땅도 샀다.

"당시에는 방이 없어서 못 팔 정도였는데 지금은 하루에 방 하나도 근근이 팔릴 정도"라며 아쉬워했다. 엊그저께 강 씨는 삼진여관을 다른 사람에게 세 놓아줬다. 남은 돈으로는 2남 3녀의 자식들을 공부시키고 재산을 나눠줬다.

강 씨는 현재 막내아들인 개그맨 강호동(42) 씨가 사서 보낸 검정색 밴 차량을 타고 다닌다. 운전은 첫째 아들인 강호용(44) 씨가 맡아서 하고 차량에 드는 경비 일체는 강호동 씨가 지급한다.

"호동이가 일 때문에 부산에 올 때는 있는데, 마산에는 잘 안 와. 한 번 오면 호동이가 용돈을 듬뿍 주고 가."

강 씨는 호동 씨가 천하장사 다섯 번, 백두장사 일곱 번을 하고 얻은 황소 트로피가 놓인 진열대를 가장 큰 보물로 생각한다. "자네가 와서 보면 깜짝 놀랄 거야. 그 정도로 잘 꾸며 놨단 말이야."

강 씨는 막내아들이 개그맨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한다. 그러면서 "우리 호동이가 가족 모두의 자랑거리다"고 했다. 평소에는 자식자랑은 잘 안 하지만 오늘은 특별히 이야기를 한다고 했다.

"지금은 돈 욕심도 없고 이렇게 친구들과 모여서 노는 게 낙"이라는 강 씨의 표정이 편안하다. 대성한 아들을 키운 훌륭한 아버지이자 평범한 이웃인 강태중 씨는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남겼다. "한국사람 모두가 잘살았으면 좋겠어. 서로서로 돕고 살면 안 될 것도 없어."

 

[경남도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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