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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기 들여다보면 천년 전 사람들과 대화하는 듯"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1.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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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0
조회수
1598
내용

"토기 들여다보면 천년 전 사람들과 대화하는 듯"

12년 만에 전시회 연 '토기 화가' 박덕규 화백

 

19일 경남도립미술관에서 열린 '2011 하반기 기업과 예술의 만남 결연식'에서 박덕규(사진·76) 화백을 처음 봤다. 깐깐해보였다. 날카로운 눈매와 오똑한 콧날, 야무지게 다문 입술. 인터뷰가 쉽지 않겠구나, 짐작했다.

다음날 진주시 내동면 삼계리. 같은 곳을 빙빙 돌고 나서야 '박덕규 미술관'을 만날 수 있었다. 인터뷰 시간에 늦을까 봐 뛰어온 탓에 숨을 헐떡이는 모습을 본 그는 "용케 잘 찾아왔네. 숨 좀 돌려. 근데 인터뷰할 게 뭐가 있다고 이곳까지 찾아왔어. 우선 유물관부터 보여주지"라며 이내 발걸음을 옮겼다.

박 화백은 1957년 진주사범학교를 졸업, 학교미술 교육현장에서 몸담아오다가 퇴직한 이후 13년 전부터 폐교 미술관을 손수 운영해 오고 있다. 유물관은 그의 초등학교 성적표와 상장, 물감, 붓, 연필 등을 비롯해 젊은 시절 작품, 선사·조선 토기 및 자기 등을 볼 수 있다. 놀랐다. 그는 수집광 성향을 띄고 있었다.

   
 

"20대부터 고고학에 관심이 많았지. 김해·합천·함안 등 발굴현장에 직접 가볼 정도였으니. 여기 봐. 토기의 깨어진 조각들도 다 유물이야. 유물. 날짜랑 장소까지 다 표시해 놨어."

 

그는 36년 전부터 가야시대와 삼국시대의 토기를 화폭에 담아냈다. 토기는 그릇의 시초이자 서민들의 온갖 고뇌와 번민, 땀과 한숨이 물과 불, 흙과 어우러져 있다. 토기를 돋보기로 관찰하면 도공들의 지문도 나타난다.

"토기 연구를 많이 했지. 천 년의 시공을 넘어 그 사람들과 대화를 하는 것 같아. 토기 내면의 세계를 끄집어내고 싶었지. 실제 토기의 무늬, 형태, 질감에 현대적 감각을 더한 것이 내 작품의 특징이야."

교실 창틀 56개를 뜯어내고 벽돌을 쌓아 올린 전시실로 옮겼다. 2개의 전시실은 그의 작품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짐작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총 3000여 점이 있어.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듯 모든 작품이 다 소중하지. 그런 작품을 어떻게 팔아? 하루도 빠짐없이 그림을 그렸지만 아직 명작을 만들어내진 못했어."

박 화백은 한 점의 작품도 팔지 않았다. 그래서 '이상한 화가'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는 성격이 강직하고 굉장히 꼼꼼했다. 그림을 시작한 날짜와 완성한 날짜 등을 캔버스에 일일이 적는가 하면 드로잉 한 연습장도 가벼이 여기지 않고 일일이 모아뒀다.

마지막으로 그의 작업실을 구경했다. "아무에게나 쉽게 보여주지 않는 곳이야. 캔버스 프레임을 직접 만들어. 매일 문을 닫고 이곳에서 그림을 그리지." 문을 열자 아크릴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많은 작품이 꽉 들어차 있었다. 붓을 잡게 된 이유가 궁금했다.

   
 
  박덕규 작 <토기의 환상>  

"5살 때 일본으로 건너가 학교를 다녔지. 일본인 야마모토(山本) 선생님께서 '그림에 소질이 있다'며 칭찬을 해줬지. 그땐 칭찬 듣는 게 좋았어.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잖아. 교육 현장에 있을 때도 늘 그 점을 중히 여겼지."

그는 인터뷰 내내 그림에는 작가의 혼이 담겨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만큼 그는 온 힘을 다해 그림을 그렸다. 총 3000여 점의 작품들은 고스란히 사회에 기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인터뷰 전, 겉보기엔 냉정하고 차가울 것 같았다. 하지만, 박 화백은 한없이 정 많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커피를 손수 타주기도 했으며 다음 날 잘 도착했느냐며 전화도 해줬다. 1999년 열일 곱 번째 전시 이후 12년 만에 경남도립미술관에서 그의 작품을 만나 볼 수 있다. 지난 9월 8일부터 지역작가 조명전 '민족혼으로 빚어낸 토기의 환상-박덕규 전'이 열리고 있다.

11월 27일까지. 문의는 055-211-0325. 

 

경남도민일보 - 김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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