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시 용호동 문화의 거리 2차 조성사업이 마무리 단계다. 보행권과 문화공간을 확보해 상권 활성화를 꾀하기 위한 것으로 총 22억 5000만 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건축물 미술작품 제도(옛 건축물미술장식제도)'에 따라 곳곳에 설치됐던 미술작품이 공사 과정에서 홀대받거나 사라지고 있다.
'건축물 미술작품 제도'는 원래 권장사항이었다. 그러다 1995년 의무사항으로 바뀌었고, 지난해 11월 '문화예술진흥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건축주가 미술작품을 설치하거나 문화예술진흥기금을 출연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 됐다. 출연된 기금은 지역 공공미술 사업 활성화에 사용된다.
지난 13·14일 용호동에서 마주한 미술작품들은 왕따 중 왕따였다. 누군가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당해도 납치를 당해도 알지 못하는, 한 마디로 무방비로 노출된 상태였다. 지난해 3월 황무현(조각가) 마산대 교수는 〈경남도민일보〉 기고를 통해 개발 와중에 방치되거나 사라진 미술작품이 많다며 체계적 관리의 필요성을 제기한 바 있다. 하지만 공사만 진전됐고 실제로 바뀐 것은 없었다.
설치된 미술작품은 공연 포스터가 붙어 있거나 대걸레가 걸려 있었고, 심지어 쓰레기 속에 파묻혀 있기도 했다. 작품인지 아닌지 헷갈릴 정도로 시각 공해를 유발하는 '애물단지'였고 그야말로 형식적 구색 갖추기에 불과한 '문패 조각'이었다.
용호동 문화의 거리 2차 조성사업 중 새로운 조형물이 들어서자 기존 작품은 자취를 감췄다./김민지 기자 |
창원시는 건축주에 미술품 설치를 강제하긴 했지만 유지관리에는 '나 몰라라' 하고 있다. 시 건축경관과 측은 "새로운 조형물을 설치하고자 기존에 설치됐던 작품들은 따로 보관해놓았다. 공사가 끝나면 건물 뒤쪽에 설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말과 달리 미술품은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공사현장에서 만난 한 건축주는 "작품이 어디로 갔는지 나도 모른다"고 했다.
관리 주체도 모호하고 관련 조례도 유명무실한 상태였다. 시 문화예술과 관계자는 "미술품 관리 등과 관련해 어떠한 통보도 받지 못했다. 미술장식품 심의위원회의 심의도 없었다"고 말했다. 창원시 '문화예술 공간 및 미술장식품의 설치 조례' 제13조에 따르면 건축물의 소유자 또는 관리자는 설치가 완료된 미술품을 원 상태로 유지관리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미술품은 영구보존을 원칙으로 하며, 여건이나 상황의 변동으로 철거, 위치변경, 교환, 대체 등이 불가피한 경우에는 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다.
작품에 대걸레를 걸쳐 둔 모습./김민지 기자 |
건축물 미술품 관리가 상대적으로 잘 이루어지는 지역은 부산과 대구이다. 부산시는 지난해 전문가 21명을 투입해 지역 건축물 미술품 1098점에 대한 사후관리 실태 전수조사를 전국 최초로 했다. 그 결과 보존 상태가 양호한 것은 714점, 관리 상태가 양호한 것은 647점으로 나타났다. 설치했다고 신고한 장소에 미술품이 없는 경우도 43건에 이르렀다.
이는 도심 흉물로 전락한 미술품에 대해 시가 앞장서 관리개선을 유도하겠다는 의지였다. 부산시 '문화예술진흥 조례'에 따르면 미술작품을 설치한 건축주 또는 관리책임자는 선량한 관리의무를 다하고 작품의 원상보존에 노력해야 한다. 나아가 원상 변경이 필요한 경우 미술작품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야 하며, 시장은 미술작품의 관리대장 작성, 매년 1회 이상 유지관리 실태 현장 확인을 통해 지속적인 사후관리를 해나가야 한다고 적시돼 있다.
쓰레기와 폐기물 속에 파묻혀 조각품인지 아닌지 분간하기 어렵다. /김민지 기자 |
대구시는 지난 2010년 대구스타디움과 종합유통단지, 문예회관, 대구미술광장 등에 세워진 각종 조형물의 제작자와 작품명, 제작연도, 작품 소개를 담은 '어반갤러리 가이드맵 1호'를 제작·배포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문화예술진흥법 시행령' 개정으로 기존 '미술장식'은 '공공미술'의 개념으로 바뀌었고, 문화예술진흥기금제도가 도입돼 건축주의 의무 이행이 다양화됐다. 경남도는 이에 도와 시군으로 이원화돼 있던 건축물 미술품 심의를 도로 일원화하고, 미술품 설치금액 산정방식, 사후관리 등을 규정한 도 문화예술진흥 조례개정안을 마련한다고 밝혔다.
과연 거리의 '왕따'가 된 건축물 미술품이 시민과 함께 호흡하는 친구로 돌아올 수 있을까. 지자체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