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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서예, 현대적 예술로 승화할 수 있는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2.07.30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1239
내용

한국 손동준 作


중국 이승홍 作


중국 증상 作


한국 김종원 作


한국 구지회 作

김종원(왼쪽에서 두 번째) 문자문명연구회장이 지난 8~10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한·중 수교 20주년 기념 문자문명 베이징전에서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지난 8일부터 10일까지, 중국 베이징에서는 매우 뜻깊은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바로 한·중 수교 20주년 기념 문자문명 베이징전이었는데요.

문자문명전은 창원 다호리에서 출토된 붓을 화두로 문자의 문명사적, 미학적 역할과 미래를 모색하며 지역 서예가들을 중심으로 경남메세나협회의 후원을 받아 2009년부터 열려온 전시회입니다.

이 전시를 서예의 본고장인 중국의 문화부 직속 서예술연구기관 중국서법원에서 초청했는데, 이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이규형 주중한국대사와 왕문장(王文章) 중국 문화부 부부장 등 고위급 간부를 비롯해 100여 명의 사람들이 전시장에 몰려 성황을 이루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번 전시회에서는 서예라는 정형화된 틀을 깨는 재미있는 작품들을 대거 만날 수 있었는데요. 서예가 현대미술에서 어떤 위치를 점하게 될 것인지, 동아시아 서예의 미래를 짐작해 볼 수 있는 참신한 탐색전이었습니다.

▲눈을 즐겁게 하는 서예

왼쪽에 있는 작품을 찬찬히 살펴볼까요? 무엇을 표현한 것 같나요? 그림인 것도 같고 글자인 것도 같다고 느꼈다면 제대로 감상한 것이 맞습니다.

이 작품은 서예가 손동준의 문자문명전 출품작입니다. 손 작가는 캔버스에 유화로 이 작품을 제작했다고 하는데요. 재료부터가 매우 파격적입니다. ‘무슨 글자를 쓴 것이냐’ 물었더니 ‘읽을 수 없다. 문자가 아니다’라는 기상천외한 대답이 돌아옵니다. ‘그런데 서예작품이 될 수 있냐’고 되묻자 ‘그것이 바로 문자문명전이 열리는 이유’라는 알 듯 말 듯한 대답을 합니다.

문자문명전을 기획한 문자문명연구회 김종원 회장은 ‘사회가 디지털화될수록 문자는 의미를 전달하는 부호의 기능만이 강조되고 있다. 따라서 현대의 서예는 의미 전달보다 문자 본연의 정체성인 상형(象形)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철학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즉 서예작품을 보고 즉각적으로 느끼는 아름다움에서 의미를 추출하도록 만들자는 것인데요. 서양인들이 한자를 보고 무슨 뜻인지는 알 수 없지만 ‘보기 좋다’고 느낀 후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하는 감상법을 유추해 본다면 문자문명전이 추구하는 바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서예라는 독특한 예술 장르

서예는 한 작품을 통해 글자의 모양을 보고 그 뜻을 파악하는 두 가지 감상이 가능한 독특한 예술입니다. 또 왕희지나 김생, 김정희 등 일가를 이룬 옛 서예가들의 글씨를 그대로 베껴도 어느 누구도 ‘표절’이라며 시비를 걸지 않는 유일한 예술 장르이기도 합니다. 오히려 더 잘 모사할수록 각광을 받기도 하지요.

이런 서예의 방향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보자는 것이 문자문명전에 참여한 양국작가가 가진 공통된 철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낙서를 한 것 같은 서예, 색을 가미해 회화처럼 보이는 서예, 문자를 확대하고 비틀어 놓은 서예 등 정형화된 틀에서 탈피해 살아 움직이는 서예술을 지향하는 것이 ‘서예가 동아시아를 넘어 세계 미술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돌파구’라고 믿는 작가들이 바로 이들입니다.

▲중국 서예계를 주도하는 유행서풍

이번 전시를 적극적으로 유치한 사람은 중국서법원 부원장인 증상(曾翔) 교수인데요. 그는 ‘유행서풍’(流行書風)이라는, 현대 중국서단을 이끌고 있는 리더그룹의 수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증상을 비롯해 왕용, 이강, 소암 등 문자문명전에 참여한 유행서풍 작가들은 작품 한 점에 2000~3000만원을 호가하는 인기작가들이라고 합니다.

증상 교수는 작년 가을 별 기대 없이 창원 성산아트홀을 찾았다가 문자문명전의 취지와 방향, 출품작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하는데요. 문자문명전이 지향하고 있는 방향과 중국 유행서풍이 추구하는 서예술이 가진 공통점을 발견하고 즉석에서 초청을 제의했다고 합니다.

김진곤 주중한국대사관 문화원장은 “이번 전시처럼 중국 국가기관이 먼저 교류전을 제의한 적은 거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문자문명전은 양국의 문자예술의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특별한 교류전이다. 특히 이번 해는 한·중 수교 20주년이라 그 뜻이 더욱 깊다”고 말했습니다.

▲다양한 서풍, 다양한 수요자

사실 베이징과 상하이에 포진한 현대 중국 서예가들의 유행서풍은 2차세계대전 이후 일본 서단에 유행한 ‘전위서도’(前衛書道)라는 아방가르드풍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전위서도는 테시마(手島), 모리다(森田) 등의 서예가들에 의해 번진 서법으로 문자의 한 부분만 크게 쓰거나 먹의 농담을 이용해 문자의 조형미를 극대화킨 서풍인데요. 이 서풍은 패망 후 일본사회에 팽배했던 허무주의를 내포하고 있었고,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잭슨 폴록, 마크 토비 등 추상표현주의 작가들에게 영향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 시기가 지나고 현재 일본 서단은 다시 전통서예가 주도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시대와 사회에 따라 전통적 서예와 정형화를 탈피하려는 서예는 평화롭게 공존하며 다양한 수요층을 충족시키고 있습니다. 문자문명전 역시 파격적인 작품과 단정한 전통 서예작품을 폭넓게 포괄하고 있음은 물론입니다. 이번 전시와 같은 과감한 시도와 치열한 탐색을 통해 ‘서예는 고루하다’는 편견을 깨고 서예가 우리의 생활 깊숙이 스며드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김유경기자 bora@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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