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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국제시장> 흥행에 힘입어 남해군 독일마을과 파독전시관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이 귀국 후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삼은 남해 독일마을과 파독전시관을 찾는 관광객이 <국제시장>의 영향으로 급격하게 늘었기 때문이다.
남해군은 파독전시관의 유료 관람객이 1주일 평균 1500여 명 선이었으나 지난달 17일 영화가 개봉한 이후 2~4배 정도 늘었다고 밝혔다. 독일마을을 방문하는 관광객 역시 눈에 띄게 늘었다.
이렇게 새롭게 조명받고 있는 독일마을의 주민이며 파독전시관 해설사로 있는 파독 간호사 출신 류길자(69) 씨를 만났다.
"영화를 보고 독일에서 고생했던 그때가 생각났다. 독일 병원에서 일하면서 한 3년 정도는 향수병 때문에 퇴근하면 매일 밤마다 울었다. 부모·형제가 보고 싶을 때는 함께 간 동료 간호사들과 함께 노래도 부르고 이런저런 얘기 하면서 향수병을 달랬다. 그런 기억들이 잊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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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마을의 주민이며 파독전시관 해설사로 있는 파독 간호사 출신 류길자(69) 씨. /허귀용 기자 |
1966년 간호사로 머나먼 이국땅인 독일을 밟았던 류 씨. 얼마전 요즘 한창 뜨는 영화 <국제시장>을 봤다는 그는 21살 꽃다운 나이에 독일로 함께 건너간 동료 간호사와 울고 웃으며 서로 어루만졌던 그때가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남해군 권유로 독일마을 파독전시관에서 해설사로 일하는 그는 최근 영화 덕분에 관람객이 많이 찾고 있는데, 이들이 "고생을 많이 하셨다. 영웅같다. 영화보다 더 실감난다. 살아 있는 전시관이다"라며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같아 뿌듯하다고 말했다.
전남 순천이 고향인 그는 지난 2010년 제2고향으로 여기며 50년 가까이 뿌리를 내렸던 독일 생활을 모두 정리하고 남해 독일마을에 정착했다. 백발의 노인이 돼서야 수십 년간 가슴속에 응어리졌던 한을 내려놓았다.
간호사 시절 자신이 돌보던 환자였던 현지인과 결혼했는데, 류 씨가 한국에 정착한 이후 서로 일 년에 한두 번 독일과 한국을 오가는 생활에 만족하며 생활하고 있다.
한국보다 독일 생활이 더 길다 보니 지금은 독일 문화와 음식이 더 익숙해졌다. 하지만 독일 땅을 처음으로 밟았던 젊은 시절에는 모든 것이 낯설었고, 특히 음식이 맞지 않아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독일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처음에는 고생이 많았다. 한국에서 늘 먹었던 김치가 가장 먹고 싶었지만 구할 길이 없었는데, 먼저 왔던 광부들이 김치 만드는 법을 가르쳐 줘서 겨우 김치를 만들어 먹을 수 있었지. 한국에서 먹었던 김치는 아니고 독일 음식 중에 양배추를 절인 게 있었다. 여기에 한국에서 가져온 고춧가루를 뿌려서 만든 김치였지만 변변치 않아도 너무 맛있었다."
그와 한국인 간호사들은 익숙하지 않은 독일 생활이 무척 힘들었지만 한국인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 근면 성실하게 일했고, 또 친절하게 현지 동료와 환자들을 대했다.
말이 통하지 않았지만 눈치코치로 열심히 일했다. 그래서일까, 한국인 간호사들에게는 '코리안 엔젤'이라는 애칭이 붙을 정도로 현지인들로부터 인정을 받았고 간호사로서 순탄한 생활을 했다.
젊은 시절 단지 결혼 비용을 벌려고 낯선 땅 독일을 선택한 그는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에 주름진 얼굴로 고국 땅에 안겼지만 그 시절 동료 간호사와 함께했던 애환은 여전히 가슴 속에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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