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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마을벽화 열풍, '화장'인가 '위장'인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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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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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1199
내용

지난달 30일 오후 송순호 창원시의원 페이스북. 조선 후기 화가 신윤복의 '단오풍정'을 담은 벽화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 송 의원 지역구인 마산회원구 내서읍 광려천 옹벽에 그려진 벽화였다. 그는 "벽화를 그린다고 고생을 많이 했을 텐데 내가 보기엔 주변 환경과 어울리지 않아 생뚱맞다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사실 이곳은 시 예산 5000만 원을 들여 새로운 벽화를 준비 중인 지역 일부다. 옹벽의 시작점이자 많은 시민이 찾는 공간이기도 하다.

송 의원과 시는 고민에 빠졌다. 지난해 6월 경남도와 시 예산을 투입해 그린 단오풍정을 살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내버려두자니 새 그림과 부조화를 피할 수 없고, 그렇다고 없애자니 예산 낭비 논란이 걸리는 것이다.

전국 곳곳이 '벽화 열풍'이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벽화마을'을 검색하면 서울·부산·대구·전주 등 셀 수 없이 많은 지역이 등장한다. 경남에도 잘 알려진 통영 동피랑마을, 마산 가고파 꼬부랑길을 비롯해 크고 작은 벽화가 없는 시·군이 없다. 각 지자체는 물론, 기업체와 문화예술단체, 봉사단체 등이 경쟁적으로(?) 나서 마을을 형형색색 물들인 탓이다.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광려천 옹벽에 그려진 벽화.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문제는 앞서 광려천 단오풍정 경우처럼 주위 환경 또는 주민과 조화를 이루지 못해 안 하느니만 못한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산지역 한 미술인은 "벽화마을이라고 가보면 오직 '예쁘게 꾸미는 것' 외에 아무런 문제의식도 느낄 수 없다. 해당 지역·공간과 사람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려고 했는지 의문이다"라면서 "통영 동피랑마을과 부산 감천 문화마을이 뜬 것은 사실 벽화보다 그곳에 바다가 있기 때문이다. 무작정 아무 데나 벽화마을을 조성한다고 사람이 몰릴 리 없다. 그 공간에 벽화를 왜 그려야 하는지, 혹은 왜 그리지 말아야 하는지, 그린다면 무엇을 그려야 하는지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마산합포구 성호동 가고파 꼬부랑길 벽화. 그림 내용과 다른 꼬부랑길 벽화 안내판은 주최 측에 의해 4일 오전 제거됐다. /고동우 기자

사후 관리도 심각한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지난 2013년 새누리당 김희정 의원의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강원 철원, 인천 부평, 경북 안동, 경기 양평 등 곳곳의 벽화마을에서 그림이 지워지거나 색이 바래고, 벽면 자체가 손상된 사례가 확인되었다. 일부 조형물은 환경 미화는커녕 '흉물'로 전락한 상태였다. 당시 문화체육관광부가 전국 57곳에서 '마을미술프로젝트사업'을 진행하면서 전체 예산 48억 원 중 보수 비용을 3%밖에 책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산합포구 성호동 가고파 꼬부랑길 벽화. 그림 내용과 다른 꼬부랑길 벽화 안내판은 주최 측에 의해 4일 오전 제거됐다. /고동우 기자

경남도 징조가 심상치 않다. 지난 3일 오전 마산합포구 성호동·추산동에 위치한 가고파 꼬부랑길을 찾았더니 엉뚱한 그림에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 '행복한 눈물', 앤디 워홀의 '마릴린 먼로' 안내판이 달려 있었다. 2013년 이 마을을 조성한 경은사랑나눔재단 측은 "다른 그림과 분위기가 안 맞아 지난해 11월 교체했다. 팻말은 신속히 바꾸도록 하겠다"고 해명했다. 재단 측은 4일 오전 문제의 안내판을 제거했다고 알려왔으나 약 두 달 동안 잘못된 그림 설명이 방치돼 있던 셈이다.

통영 동피랑마을은 관광객이 몰리면서 주민 사생활 침해 논란을 겪고 있다. 쓰레기 무단 투기, 밤낮없는 소음을 못 참은 한 주민이 벽화에 페인트를 뿌리는 일까지 있었다. 푸른통영21추진협의회 측은 안내문 설치와 주민 대상 창업 교육 등 다양한 대책을 동원 중이다.

환경 개선 또는 미화. 마을 가꾸기라는 이름으로 펼쳐지고 있는 벽화 사업. 김현석 시민과대안연구소 연구위원 말처럼, 우리는 그런 '구호'를 앞세워 빈곤을 감추고, 낡은 것을 감추고, 사람들을 숨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얄팍한 붓질, 색칠 몇 번으로.

김 연구위원은 <시사인천>에 쓴 칼럼에서 "예술가에게 도시의 벽은 메시지를 담기 위한 캔버스이지 덧칠해서 감춰야 할 흉물이 아니다. 마을 벽화가 단순히 그림 연습을 넘어 예술이 접목된 하나의 문화 운동으로 자리 잡으려면 무엇을 표현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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