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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창동예술촌의 현재와 미래 (2) 철의 도시 되살린 가오슝 보얼예술특구
빈 공간에 예술 채우니 ‘낡은 도시’가 깨어났다
기사입력 : 2017-11-14 22:00:00
타이완 가오슝 보얼예술특구 내 최초로 전시가 열린 공간인 P2창고.
타이완 남부에 위치한 항구도시 가오슝(高雄)은 원래 ‘철의 도시’였다. 일본의 식민지배 시절, 일본의 동남아 식민지 확장을 위한 거점 항구였던 가오슝은 1970년대 대형 조선소와 제철소 등이 들어서며 가파르게 성장했다. 하지만 중공업의 성장세가 주춤해지자 물동량이 감소하면서 항구의 부두 물류 창고는 쓰임을 잃고 방치되기 시작했다. 활력을 잃었던 철의 도시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은 것이 문화공간인 ‘보얼예술특구(駁二藝術特區, THE PIER-2 ART CENTER)’다.
◆버려졌던 창고, 예술공간이 되다= 보얼예술특구는 가오슝시가 가오슝 항구 근처의 버려진 물류 창고 지구를 개조해 만든 문화공간이다.
보얼예술특구의 역사는 지난 2000년 대만의 국경절 축하 불꽃놀이 장소로 가오슝 부두가 선정된 것에서 출발한다. 항구에 10여년간 방치돼 있던 물류창고는 불꽃놀이 후 민간에 개방됐고 2001년 타이완의 젊은 예술가들이 자발적으로 이곳에서 전시를 하기 시작하면서 예술활동의 거점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가오슝시는 이 일대를 도시의 새로운 동력원으로 만들기 위해 2006년 본격적으로 항구 일대 물류 창고들을 활용한 문화특구 조성 사업에 나섰다. 시는 민간기업 소유이던 창고를 임대해 문화공간으로 만들었다. 가장 먼저 완성된 다용 지구(大勇區, Dayong area)를 시작으로 2012년 펑라이 지구(蓬萊區. Penglai area), 2014년 다이 지구(大義區, Dayi area)가 문을 열었다. 현재 보얼예술특구는 총 3개 지구, 25개의 물류창고에 전시장, 공연장을 비롯해 영화관, 예술창작공간, 각종 상점 등이 들어선 대단위 문화지구이다. 연간 방문객은 400만명이 넘는다. 특구 조성 후 주변에는 호텔 등 각종 편의 시설이 들어섰고 현재도 활발히 유지되고 있다.
◆역사와 문화를 그대로 간직한 공간= 보얼예술특구의 가장 큰 특징은 지역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존한 문화공간이라는 점이다. 가오슝시는 물류창고의 외관은 그대로 둔 채 내부만 리모델링했다. 특구 내 모든 창고는 녹슬거나 갈라진 건축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외관은 전시가 있을 때마다 새로운 그림이 입혀진다. 보얼(駁二·PIER-2)이라는 이름도 가장 먼저 개방됐던 P2창고에서 그대로 따온 것이다.
다용 지구 입구에 위치한 보얼예술특구의 랜드마크인 대형 조형물은 가오슝시의 역사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조형물은 허리춤에 연장을 찬 공업인과 그물을 든 어부의 뒷모습인데 가오슝시가 바닷가에 위치한 항구도시이자 공업도시임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 조형물은 여러 예술가들에 의해 리메이크된 형태로 특구 곳곳에 전시되고 있다.
펑라이 지구의 창고에는 철도박물관을 조성했다. 창고가 일제시대 만들어졌던 가오슝 최초의 기차역이 있었던 곳임을 기념하는 공간이다. 지구 내에는 철길을 깔아 관광객들이 이용할 수 있는 미니 기차를 운영하고 있다. 펑라이 지구에 있는 드넓은 잔디밭은 철길이 있던 공간을 활용한 것이다. 다이 지구에 있는 역사관 주스창쿠(舊事倉庫)에서는 일제 강점기 시절 항구의 출발부터 원래 사탕공장이었던 창고의 모습 등 특구의 역사를 영상과 사진, 모형으로 감상할 수 있다.
시설뿐만 아니라 프로그램도 역사성이 반영돼 있다. 보얼예술특구는 2006년부터 2년을 주기로 국제철강조각예술제, 국제컨테이너예술제를 열고 있다. 철과 컨테이너 모두 가오슝시의 산업을 대표하는 테마들이다.
애니메이션 전시관 내부.
◆뚜렷한 정체성= 보얼예술특구가 표방하는 것은 창의적이고 젊은 감각의 현대미술이다. 처음 P2창고에 젊은 작가들이 전시를 시작하면서 형성됐던 성격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모든 전시와 프로그램은 이 콘셉트로 꾸며진다. 우메이시(吳梅希) 보얼예술특구 전시 팀장은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동시대 미술을 보여준다는 것이 우리의 콘셉트다. 변화무쌍하다는 것이 이곳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변화를 추구하는 곳답게 보얼예술특구는 연중 20회 이상의 기획전시가 열린다. 격년제의 예술제뿐만 아니라 가오슝디자인페스티벌, 아트가오슝(아트페어), 캐릭터페스티벌 등 매년 열리는 행사가 있고, 각 전시실에서도 수주~수개월 단위로 전시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린다. 연중 볼거리가 끊이지 않는 셈이다.
우 팀장은 “전시도 사람들이 계속 찾아올 수 있도록 관람객의 니즈 파악에 주력하고 있다”며 “최근 입주작가 작품전은 페이스북을 통해 시민들의 참여를 받아 인터렉티브형 전시로 구성했다. 작년에는 대만사람들이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고 관심이 많은 점에 착안해 애니메이션 축제를 열었는데 반응이 좋아 창고 중 1곳을 애니메이션 상설전시관으로 개관했다”고 말했다.
야외에 설치된 철제조각.
◆체계적인 지원과 관리= 보얼예술특구는 가오슝시에서 직영하고 있다. 하지만 특구의 운영과 관리는 시 문화국 산하에 독립적인 전담팀인 ‘보얼특구센터’에서 운영하고 있다. 센터에는 40여명이 근무하고 있으며 시 공무원과 외부 기획자가 함께 일하는 구조다. 보얼예술특구는 현재 총 8명의 메인디렉터(팀장급)를 두고 있다.
보얼예술특구가 지금의 정체성과 성격을 가지게 된 데는 가오슝시의 노력이 크다. 시는 특구 내 전시장, 공연장 등은 직접 관리하고 상업시설은 민간에 임대하고 있는데 임대시설을 선정하는 데 매우 엄격한 편이다. 운영 계획부터 매장 내부 인테리어 등 모든 부분에서 특구와 잘 어울리는지를 따져 입점을 결정한다. 신청을 받기도 하지만 성격에 맞는 곳을 찾거나 섭외하는 데도 적극적이다.
다이 지구에 있는 레지던시 공간은 작가들의 만족도가 높다. 예술인들이 입주해 창작활동을 하는 레지던시 공간은 총 8곳으로 매년 국적이나 장르에 제한 없이 신청을 받아 약 3~4개월 단위로 운영한다. 선정된 작가에게는 왕복 항공권과 숙박을 비롯해 작품재료비를 지원하고, 창작촌 내 관리센터에는 직원이 상주하며 작가들의 불편함을 해결해주고 있다.
타이완 입주작가인 중런제(鐘仁杰·33)씨는 “창작 여건이 좋아 작품활동에 무리가 없다. 다양한 국적의 작가들이 선정돼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우 팀장은 “관광지다 보니 공간이 노출되는 점이 있다. 때문에 교류와 소통의 장소라는 점을 작가들에게 미리 공지한다”며 “개방적인 성향의 작가들로 입주시키기 때문에 이와 관련한 불편은 별로 없는 편”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김세정 기자 sjkim@knnews.co.kr
다용 지구 대형조형물을 리메이크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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