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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뉴시스] 정경규 기자 = 경남 진주박물관은 국보인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의 이전 복원을 완료하고 그 동안의 경과와 복원전시를 전후해 이뤄진 종합적인 연구결과를 담은 '국보 제105로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 보고서를 발간했다고 6일 밝혔다.
이 보고서는 문헌자료, 조선총독부 박물관 문서, 사진, 3차원(3D) 스캔 이미지, 정밀 실측 도면 등 범학리 석탑 관련 자료를 집대성했다.
보고서는 사진 및 실측도 등 이미지 자료와 상세정보를 담은 'Ⅰ.산청 범학리 삼층석탑', 산청에 세워져 있던 시기부터 국립진주박물관에 전시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Ⅱ.석탑이 지나온 역사', 석탑의 양식 및 부조상, 암질특성에 관한 연구 결과를 담은 'Ⅲ. 논고'로 구성돼 있다.
산청 범학리 절터와 석탑이 있던 곳은 둔철산 자락인 산청군 산청읍 범학리 617번지로 추정된다. 통일신라시대 사찰은 15세기 후반까지 기록에 보이다가 이후 폐사지가 됐으며, 범학리 석탑도 이곳에 허물어져 있었다고 한다.
바로 이 때문에 범학리 석탑은 한국 근현대사와 영욕을 함께한 대표적인 문화유산이 됐다. 일제강점기에 많은 우리 문화재가 해외로 유출되거나 제 자리(고향)를 떠나게 되었는데, 범학리 석탑도 그 같은 운명이 되었다.
범학리 석탑은 1941년 1월 일본인 골동품상 오쿠 지스케에 의해 대구로 반출돼 제면공장 구내 빈터에 보관돼 있다가, 조선총독부에 압수돼 이듬해 서울로 옮겨졌다.
범학리 석탑의 수난은 광복 후에도 끝나지 않았다. 1946년 미군 공병대의 도움으로 경복궁 안에 세워진 범학리 석탑은 한국전쟁 당시 폭격에서 살아남았으나, 1994년 경복궁 복원정비 사업이 추진되면서 다시 해체돼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됐다.
2005년 국립중앙박물관이 용산에 새 청사를 마련해 이전한 뒤에도 복원이 지연되자 다수의 문화재 전문가들이 경남 서부지역을 대표하는 국보 석조문화재를 볼 수 없게 된 상황을 안타깝게 여겼다.
이에 국립진주박물관은 범학리 석탑의 진주 이관을 요청했고, 국립중앙박물관이 이전을 결정했다. 그리해 2017년 2월 고향인 경남으로 돌아와, 2018년 11월 27일 본관 오른쪽 야외전시장에 범학리 석탑이 복원 전시됐다.
진주박물관은 야외전시장에 복원 전시 하면서 역사, 미술사 및 과학 조사 등 다각적인 종합 연구를 실시했다. 전시 이후에도 상세 자료 조사 및 검토, 유사 석탑 현장조사, 분야별 연구 등을 좀 더 심도 있게 진행했다.
그 결과, 그동안 2층 기단에 3층 탑신을 갖춘 통일신라 9세기 석탑으로만 알려져 왔던 범학리 석탑에 대한 다양한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진주박물관 관계자는 "보고서를 통해 새롭게 밝혀진 이번 연구 성과가 앞으로 통일신라 석탑 연구 뿐만 아니라 역사, 미술사, 건축사, 보존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jkgyu@newsis.com
[진주=뉴시스] 진주박물관 야외전시장내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 |
[진주=뉴시스] 정경규 기자 = 경남 진주박물관은 국보인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의 이전 복원을 완료하고 그 동안의 경과와 복원전시를 전후해 이뤄진 종합적인 연구결과를 담은 '국보 제105로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 보고서를 발간했다고 6일 밝혔다.
이 보고서는 문헌자료, 조선총독부 박물관 문서, 사진, 3차원(3D) 스캔 이미지, 정밀 실측 도면 등 범학리 석탑 관련 자료를 집대성했다.
보고서는 사진 및 실측도 등 이미지 자료와 상세정보를 담은 'Ⅰ.산청 범학리 삼층석탑', 산청에 세워져 있던 시기부터 국립진주박물관에 전시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Ⅱ.석탑이 지나온 역사', 석탑의 양식 및 부조상, 암질특성에 관한 연구 결과를 담은 'Ⅲ. 논고'로 구성돼 있다.
산청 범학리 절터와 석탑이 있던 곳은 둔철산 자락인 산청군 산청읍 범학리 617번지로 추정된다. 통일신라시대 사찰은 15세기 후반까지 기록에 보이다가 이후 폐사지가 됐으며, 범학리 석탑도 이곳에 허물어져 있었다고 한다.
바로 이 때문에 범학리 석탑은 한국 근현대사와 영욕을 함께한 대표적인 문화유산이 됐다. 일제강점기에 많은 우리 문화재가 해외로 유출되거나 제 자리(고향)를 떠나게 되었는데, 범학리 석탑도 그 같은 운명이 되었다.
범학리 석탑은 1941년 1월 일본인 골동품상 오쿠 지스케에 의해 대구로 반출돼 제면공장 구내 빈터에 보관돼 있다가, 조선총독부에 압수돼 이듬해 서울로 옮겨졌다.
범학리 석탑의 수난은 광복 후에도 끝나지 않았다. 1946년 미군 공병대의 도움으로 경복궁 안에 세워진 범학리 석탑은 한국전쟁 당시 폭격에서 살아남았으나, 1994년 경복궁 복원정비 사업이 추진되면서 다시 해체돼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됐다.
2005년 국립중앙박물관이 용산에 새 청사를 마련해 이전한 뒤에도 복원이 지연되자 다수의 문화재 전문가들이 경남 서부지역을 대표하는 국보 석조문화재를 볼 수 없게 된 상황을 안타깝게 여겼다.
이에 국립진주박물관은 범학리 석탑의 진주 이관을 요청했고, 국립중앙박물관이 이전을 결정했다. 그리해 2017년 2월 고향인 경남으로 돌아와, 2018년 11월 27일 본관 오른쪽 야외전시장에 범학리 석탑이 복원 전시됐다.
진주박물관은 야외전시장에 복원 전시 하면서 역사, 미술사 및 과학 조사 등 다각적인 종합 연구를 실시했다. 전시 이후에도 상세 자료 조사 및 검토, 유사 석탑 현장조사, 분야별 연구 등을 좀 더 심도 있게 진행했다.
그 결과, 그동안 2층 기단에 3층 탑신을 갖춘 통일신라 9세기 석탑으로만 알려져 왔던 범학리 석탑에 대한 다양한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진주박물관 관계자는 "보고서를 통해 새롭게 밝혀진 이번 연구 성과가 앞으로 통일신라 석탑 연구 뿐만 아니라 역사, 미술사, 건축사, 보존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jkgyu@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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