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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in]경남문화재단 신희재 문화사업팀장
"실력 열정 성실… '심봤다' 하겠죠?"
-경남도민일보-
지난 23일 경남문화재단이 출범식을 열고 시동을 걸었다. 대표이사 적격성 논쟁이 결과적으로 문화재단 탄생을 알리는 노이즈 마케팅으로 홍보 효과를 거두었다는 일각의 시선이 뜻하는 바는 문화예술인들의 특별한 관심이다.
그 관심의 초점은 좋든 싫든 장차 도내 문화 권력기관으로 문화예술행사의 중추적인 역할을 할 것이란 전망 때문이다. 관 주도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문화예술사업이 재단을 통해 현실화될 것이란 것이다. 이에 맞물려 최근 공개채용을 통해 선발된 문화사업팀의 인력구성에 대한 궁금증도 커졌다.
한마디로 문화사업을 지휘할 문화재단 팀장에 대한 여러 예술인의 물음이 취재의 주요 동기가 되었다. 상근으로는 도청직원 3명을 포함해 직원 6명으로 시작한 문화재단의 사무실에는 책상과 컴퓨터만 덩그러니 있는 유령회사(?)를 방불케 했다. 닳아서 흰 속살을 드러낸 와이셔츠가 인상적인 문화사업 팀장을 만나봤다.
중학교 합주부 하면서 인연
이름 신희재. 스스로 해석한 그의 이름은 '재상의 자리를 삼갈 것'이다. 그의 말처럼 "평생 꼬붕(부하)을 할 팔자"라는 말에서 그가 어떤 자세로 자리에 임하고 있는지 엿보게 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이름을 잘못 해석하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재상을 뜻하는 재(宰)가 아닌 일을 뜻하는 재(縡)다. 다시 풀이하면 '기쁜 일을 삼가라'라는 문구가 나온다. 의역을 한다면 '궂은일에 나서 일하라'는 말로 해석 가능하다.
실제 문화사업팀장의 일은 예술단체를 다독이는 역할이 많을 것으로 예상한다. 올해 첫 재단 사업인 경남도문예진흥기금 지원사업에서도 신 팀장은 탈락한 단체의 항의(?)방문에 인간적으로 위로해주는 일로 시작했다. 그 또한 음악인으로 기금 지원사업에 떨어져 본 경험이 많기 때문이다. 그 스스로 "세 치 혀가 가장 큰 도구"라고 설명했다. '예술은 사람 속에서 있어야 한다'는 그의 예술론에 따라 인간적으로 신뢰받는 사람이 그가 추구하는 목표란다. 그는 사자성어 '수처작주(隨處作主 이르는 곳마다 주인이 되라)'란 말을 자주 썼다.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다.
문화예술기획만 19년 근무
신 팀장은 마산·창원 시립합창단 단원, 경남오페라단 사무국장, 창원 시립예술단 단무장을 거쳐 최근까지 경남문화예술회관 공연전시팀장으로 문화예술기획에 모두 19년간 근무했다.
그가 예술과 인연을 맺은 것은 중학교 때 리코더 합주부를 하면서다.
"대학서 성악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음악사회학을 공부했습니다. 1990년 경남이 음악의 불모지에 가까운 시절 고 강영중 창원대 교수님과 함께 경남 오페라단을 탄생시켜 총무, 사무국장직을 맡으며 예술행정 일을 시작했네요. 99년 이원수 선생의 동시에 곡을 붙인 청소년 합창곡집과 음반을 만든 일은 전국 합창단의 주문쇄도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또 "창원소년소녀합창단을 이끌면서 다양한 문화를 접촉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끼게 되었습니다. 특히 해외공연을 통해 단원들의 실력이나 마음가짐을 다잡는 데 성공했습니다. 앞으로의 문화재단 사업도 예술가들이 다양한 문화를 접촉하는데 지원할 예정입니다"라고 소신을 밝혔다.
그가 현재 경남예술계에 던지는 활성화 방안은 좁쌀론이다. "예술은 좁쌀을 땅에 뿌려 키워서 돌보아 풍년에 상을 차려야 하는데 현재 예술인들은 배가 고파 설익은 좁쌀을 주워 먹기 바쁜 현실입니다. 바꿔봐야죠."
그는 스스로 "지역 문화예술인이 나를 보고 '심봤다'고 외칠 날이 올 때까지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신드바드'가 지역예술인과 함께 어떤 섬에 도달할지 궁금해진다.
여경모 기자 babo@idomin.com
"실력 열정 성실… '심봤다' 하겠죠?"
-경남도민일보-
지난 23일 경남문화재단이 출범식을 열고 시동을 걸었다. 대표이사 적격성 논쟁이 결과적으로 문화재단 탄생을 알리는 노이즈 마케팅으로 홍보 효과를 거두었다는 일각의 시선이 뜻하는 바는 문화예술인들의 특별한 관심이다.
그 관심의 초점은 좋든 싫든 장차 도내 문화 권력기관으로 문화예술행사의 중추적인 역할을 할 것이란 전망 때문이다. 관 주도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문화예술사업이 재단을 통해 현실화될 것이란 것이다. 이에 맞물려 최근 공개채용을 통해 선발된 문화사업팀의 인력구성에 대한 궁금증도 커졌다.
한마디로 문화사업을 지휘할 문화재단 팀장에 대한 여러 예술인의 물음이 취재의 주요 동기가 되었다. 상근으로는 도청직원 3명을 포함해 직원 6명으로 시작한 문화재단의 사무실에는 책상과 컴퓨터만 덩그러니 있는 유령회사(?)를 방불케 했다. 닳아서 흰 속살을 드러낸 와이셔츠가 인상적인 문화사업 팀장을 만나봤다.
중학교 합주부 하면서 인연
이름 신희재. 스스로 해석한 그의 이름은 '재상의 자리를 삼갈 것'이다. 그의 말처럼 "평생 꼬붕(부하)을 할 팔자"라는 말에서 그가 어떤 자세로 자리에 임하고 있는지 엿보게 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이름을 잘못 해석하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재상을 뜻하는 재(宰)가 아닌 일을 뜻하는 재(縡)다. 다시 풀이하면 '기쁜 일을 삼가라'라는 문구가 나온다. 의역을 한다면 '궂은일에 나서 일하라'는 말로 해석 가능하다.
실제 문화사업팀장의 일은 예술단체를 다독이는 역할이 많을 것으로 예상한다. 올해 첫 재단 사업인 경남도문예진흥기금 지원사업에서도 신 팀장은 탈락한 단체의 항의(?)방문에 인간적으로 위로해주는 일로 시작했다. 그 또한 음악인으로 기금 지원사업에 떨어져 본 경험이 많기 때문이다. 그 스스로 "세 치 혀가 가장 큰 도구"라고 설명했다. '예술은 사람 속에서 있어야 한다'는 그의 예술론에 따라 인간적으로 신뢰받는 사람이 그가 추구하는 목표란다. 그는 사자성어 '수처작주(隨處作主 이르는 곳마다 주인이 되라)'란 말을 자주 썼다.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다.
문화예술기획만 19년 근무
신 팀장은 마산·창원 시립합창단 단원, 경남오페라단 사무국장, 창원 시립예술단 단무장을 거쳐 최근까지 경남문화예술회관 공연전시팀장으로 문화예술기획에 모두 19년간 근무했다.
그가 예술과 인연을 맺은 것은 중학교 때 리코더 합주부를 하면서다.
"대학서 성악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음악사회학을 공부했습니다. 1990년 경남이 음악의 불모지에 가까운 시절 고 강영중 창원대 교수님과 함께 경남 오페라단을 탄생시켜 총무, 사무국장직을 맡으며 예술행정 일을 시작했네요. 99년 이원수 선생의 동시에 곡을 붙인 청소년 합창곡집과 음반을 만든 일은 전국 합창단의 주문쇄도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또 "창원소년소녀합창단을 이끌면서 다양한 문화를 접촉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끼게 되었습니다. 특히 해외공연을 통해 단원들의 실력이나 마음가짐을 다잡는 데 성공했습니다. 앞으로의 문화재단 사업도 예술가들이 다양한 문화를 접촉하는데 지원할 예정입니다"라고 소신을 밝혔다.
그가 현재 경남예술계에 던지는 활성화 방안은 좁쌀론이다. "예술은 좁쌀을 땅에 뿌려 키워서 돌보아 풍년에 상을 차려야 하는데 현재 예술인들은 배가 고파 설익은 좁쌀을 주워 먹기 바쁜 현실입니다. 바꿔봐야죠."
그는 스스로 "지역 문화예술인이 나를 보고 '심봤다'고 외칠 날이 올 때까지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신드바드'가 지역예술인과 함께 어떤 섬에 도달할지 궁금해진다.
여경모 기자 babo@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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