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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 가닥 명주실, 세계 속 한국 민속 예술 빛내다

작성자
김철수
작성일
2010.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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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0
조회수
1661
내용
한 가닥 명주실, 세계 속 한국 민속 예술 빛내다
매듭장인 이당(怡當) 황순자 선생의 매듭인생 30년

-서울문화투데이-

어느 정도 남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은 누군가를 가르치긴 쉬워도 또 다른 배움을 위해 노력하기 어렵다. 또한, 우리의 전통을 고수하는 사람은 그대로의 가치만 인정할 뿐, 상품화에 대해선 거부감을 내비친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을 모두 통달한 이가 있다. 바로 매듭장인 이당(怡當) 황순자 선생(한국매듭공예연합회 회장, 60)이다. 고도의 집중력과 섬세하고 세밀한 손재주가 필수인 매듭 장인의 길을 30여 년간이나 묵묵히 걸어 온 황순자 선생. 단아한 매듭작품들이 여기저기 걸려있는 관산동 그의 집은 마치 전통공예 공방에 들어온 것 같았다.

경남 진주가 고향인 황순자 선생의 집은 종손집안이었다. 때문에 집 안 제사만 일 년에 열 몇 번 이었고, 항상 손님들로 북적였다. 그 탓에 황 선생은 어릴 때부터 손수 염색하고 다듬이질하는 법 등을 손재주가 뛰어났던 그의 어머니로부터 배우게 됐다.

이러한 어머니 밑에서 자란 영향인지 그는 초등학교 때 털실을 얻어 주머니 등을 짰을 정도로 손재주가 좋았다. 그러던 그는 자신의 꿈을 위해 서울로 올라와 간호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된다.

“당시 서독으로 간호사들을 많이 파견했을 때였죠. 제 주변에 친구들도 많이 갔었죠”

그러나 아버지의 반대로 서독행이 좌절된 황 선생은 공무원 시험을 공부, 우체국 임시직으로 일하게 된다. 그러다가 당시 취미에 불과했던 수놓는 일이 자신의 천직으로 바뀌게 되는 일이 생긴다.

“학교 다닐 때부터 취미로 뜨개질을 많이 했어요. 정말 좋아했고요. 재료를 샀던 청계천의 실 가게 선생님이 가르쳐주시기도 하면서 실력도 많이 늘었죠. 그러다가 하루는 제가 매듭을 너무 잘하니까 고 김주현 선생님을 소개시켜주셨어요”

김주현 명장(2003년 별세, 전 사단법인대한민국명장회회장)에게 매듭을 배우게 된 그는 1984년 한국, 대만, 일본이 함께하는 한국매듭공예 연합회의 창단멤버가 되면서 본격적인 매듭의 세계에 빠지게 된다.

이후 황 선생은 여러 선생님들에게 매듭에 관해 계속해서 가르침을 받으며 배움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러한 노력 탓에 현재 덕수궁에 있는 큰 북 옆 매듭을 비롯한 유수한 작품들을 만들어냈다. 더불어 자수대학 2년을 졸업하고 배화여대 CEO 과정까지 수료한 그는 현재 서울산업대 최고 전문가 과정을 다니고 있다.

“전 뭔가를 배우는 게 참 좋아요. 지금도 공부욕심이 계속 생겨요”

황 선생은 이렇게 배운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만 갖고 있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자신의 경험과 함께 접목시켜 “다른 이들에게 매듭을 가르치는 것이 재미있다”고 한다. 여름이면 서울, 청주, 부산 등 여기저기 특강을 위해 바쁜 그는 고향인 진주에서 1월부터 연구반을 만들어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작년에 진주에서 개인전(2009년 10월 6일~9일, 경남 진주 채송아트홀)을 하고 보니까 매듭을 어깨너머로 배운 학생들이 많은 거예요. 그러다보니 좀 더 체계적으로 좋은 것들을 배우고 싶어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가르쳐야 겠다고 마음먹었죠”

“매듭을 하면서 계속해서 배우는 것이 재밌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전날은 준비하면서 재미있다”는 그는 진정으로 매듭을 사랑하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그가 우리나라 매듭의 최고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우리나라 매듭인구 늘리고파

“앉아서 매듭을 하고 있으면 마음이 정화되면서 정신통일이 돼 하나의 수행이자 공부가 된다”는 황순자 선생에게 우리나라 매듭의 매력에 대해 묻자 “외국이 실 여러 가닥으로 만들어내는 것과 달리 아무리 복잡한 작품이라도 단 한 가닥으로 만들어낸다”는 것을 꼽으며 전통 매듭의 공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옛날에는 끈목(여러 올의 실을 꼬거나 짜서 만든 끈으로, 노리개 ·유소(流蘇) 등 한국매듭을 맺는 주재료)장인, 염색장인 등이 다 따로 있어서 분업으로 진행됐죠. 지금에 와서는 한 사람이 다 하게 됐지만요”

황 선생은 문득 “무형문화재 김희진 선생님께 감사드린다”며 말을 이어갔다.

“그분만큼 매듭에 관해 많은 공부를 하시는 분이 없어요. 지금 있는 끈목틀도 김희진 선생님이 복원하신 거예요. 제가 처음에 매듭 배울 땐 항아리 위에다 올려놓고 했었죠. 솔직히 전 책임감보단 그저 만드는 게 좋아서 시작한 날라리일 뿐이에요(웃음)”

현재 한국매듭공예연합회 4대 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한국매듭공예연합회가 국가지원을 받으며 역사박물관에서 전시할 수 있을 정도로 인정받은 단체가 됐다”며 “정회원 22명이 서로 가족처럼 지내며 그 어느 단체보다 끈끈한 정으로 맺어졌다”며 작은 소망하나를 이야기 했다.

“올해는 정회원을 30명 정도로 늘려보고 싶어요. 매듭을 좋아하는 누구나 다 가능하죠”

전통과 실용, 두 마리 토끼를 잡다

명실 공히 매듭 명장으로 인정받고 있는 황순자 선생 역시 우리나라 전통 보전을 위해 외길 인생을 걸어오면서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힘든 점은 작품을 탄생시키기 위해 부자재를 구하는 일이었다고 한다. 그랬던 그가 이제는 협회회원, 제자들, 지인들을이 부자재들을 구하기 쉽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제가 부자재를 많이 만드는 편이죠. 옥션에 가서 비싸게 사서 직접 찍어내거나 명장분들께 다량으로 사서 나눠서 쓰기도 하고요.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매듭하기가 쉬워지면 자연스럽게 매듭인구도 늘어나는 거죠”

또 하나 공통으로 겪는 문제 중 하나가 재정적 문제였다. 문화재나 장인이면 누구나 겪는 공통적인 문제 중 하나이다. 많은 이들이 이 때문에 그만두기도 한다. 한때 형편이 너무 어려웠던 황 선생은 고 김주현 명장을 회상하며 말을 이어갔다.

“김주현 선생님이 항상 하시던 말씀이 ‘작품생활을 오래 하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이 한국적인 매듭을 가지고 관광상품을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외국에 나갔다 올 때마다 샘플들을 사오면서 연구한 끝에 ‘신혼방’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었어요. 매듭, 자수 등 모든 분야를 접목시켰죠. 처음엔 어려웠지만 지금은 관광공사 등 대형업체와 계약해서 잘 나가고 있죠”

1년에 두 번 있는 한국매듭공예인협회 회원전 때마다 실용성 있는 작품을 내놓아 기업들의 러브콜까지 받았다는 그는 “너무 전통만 고집해선 안된다”고 말한다.

“전통을 밑바닥에 깔되 거기에 현대에 맞는 작품을 해서 발전시켜야 되요. 그래야 쓰임새도 더 많아지고 관심을 얻게 되죠. 일본 같은 경우만 봐도 우리나라처럼 벽에 거는 용도로만 하지 않고 다 생활용품으로 만들어요”





저가, 중저가, 고가 제품들을 다양하게 선보이며 우리나라 매듭의 아름다움으로 세계를 감동시키고 있는 황 선생에게는 한 가지 철칙이 있다. 바로 국산 재료만 쓰는 것이다.

“한국적인 것을 해야 하기 때문에 아주 작은 골무, 열쇠고리라도 부자재는 100프로 다 국산만 써요”

최근 싼 중국 수입산 때문에 끈목 공장들이 다 문을 닫고 현재 ‘신혼방’ 제품들의 재료를 생산하는 공장 단 두 개만 남아있다고 한다. 그는 우리나라 제품을 써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년에 한 번씩 부자재 공장, 관광상품 회사 등의 임원들을 다 모아놓고 얘기해요. ‘나중에 중국 사람한테 무릎 꿇고 달라고 하기 전에 단가가 10, 20원 더 나가도 국산부자재 써달라’고 말이죠”

그녀의 애국심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최근 프랑스 박람회(2010년 4월 29일~5월 13일)에 참가해 영어와 불어로 ‘독도는 우리땅’이 새겨진 핸드폰 줄을 현지인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남들은 독도광고도 하고 하는데 그 정도는 해야죠. 저는 이런 게 너무 재미있어서 하는 것 뿐이에요”

매듭 문화 공간 마련의 꿈에 다가서다

내년 개인전 준비와 함께 2012년 일본에서 열리는 ‘동아 매듭 3국(한국, 대만, 일본)전’을 위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황 선생은 올 8월 20일게 고향인 진주에 매듭연구소 개관까지 앞두고 있다. 3층 규모로 지어진 이 연구소는 그의 꿈을 위한 첫 단추이다.

“앞으로 전시회를 하다보면 매듭 작품들이 점점 많아지겠죠. 하나의 박물관처럼 이러한 작품들을 상설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진주를 시작으로 서울에 하나 만들고 싶어요. 사람들이 구경도 하고 배우기도 하면서 매듭을 좀 더 쉽게 접할 수 있게 된다면 한국의 매듭이 더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요?”

배움과 가르침, 전통의 보전과 관광상품의 개발을 통한 국위선양. 이 모든 것들을 하나의 즐거움으로 생각하고 있는 황순자 선생. 그가 바라는 매듭 문화 공간 마련의 꿈도 머지않아 하나의 아름다운 매듭으로 결실을 맺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인터뷰, 사진 박기훈 기자 press@s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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