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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박물관 (1) - 김철수(창원전문대 교수·대산미술관장)

작성자
허지현
작성일
2010.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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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1533
내용
전쟁과 박물관 1- 김철수(창원전문대 교수·대산박물관장)

<경남신문>

얼마 전 라디오 방송의 대담 프로에서 청소년 다섯 명에게 6·25를 아느냐고 물었더니 두 명만이 안다고 했는데 그 대답이 가관이었다.
한 명은 6·25가 우리나라와 일본의 전쟁이라고 했고, 다른 한 명은 경상도와 전라도의 싸움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아무리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가 전 국민의 85%라고 하지만 참으로 기막힌 현실이 아닐 수 없다. 6·25를 모르는 세대에게 국가 정통성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박물관의 유물과 미술품을 누가 어떻게 지켰냈을까를 질문한다면 과연 몇이나 답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6·25전쟁 3년 동안 망실된 유물 7109점을 제외하고 약 20만여 점이 그대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우리 민족의 역사와 정통성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무릅쓴 선조들과 박물관 직원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1950년 6월 26일 월요일, 불안감 속에서 출근한 당시 경복궁 국립박물관 김재원 관장과 직원들은 신변불안에 잠 못 이루면서도 피란을 떠나지 않고 유물을 지켜냈다.

이후 서울이 함락되자 북한국가물질문화연구원 소속의 김용태가 우리의 유물을 북으로 약탈하고자 했을 때도 온갖 작전을 펴서 3일간 겨우 9점을 포장하는 시늉을 하며 시간을 끌었다.

뿐만 아니라 국립박물관 직원들은 목숨을 걸고 1950년 12월 6일 미군정청 문화담당 유진 크네지의 도움을 받아 주요 유물들을 비밀리에 군용 열차편에 실어 부산 등으로 옮겼다.

열대여섯 명의 박물관 직원들이 수제비로 끼니를 연명하며 4일을 소요한 끝에, 간신히 부산관제청과 부산대박물관 그리고 미 공보원 지하실에 보관할 수 있었다.

금관을 비롯한 국보급 금붙이 보물들은 이승만 대통령의 특별지시로 샌프란시스코와 하와이 호놀룰루 박물관 등으로 분산되었다가 미국 8개 도시에서 순회 전시된 후 1957년에야 귀환할 수 있었다.

이렇게 우여곡절을 겪으며 선조들이 지켜낸 문화유산이기에 더욱 귀중하고, 큰 의미를 지니는 것이 아니겠는가. 박물관·미술관들은 우리 문화 유산에 대한 수많은 사연과 그에 얽힌 정신을 전달하는 데 더욱 매진해야 할 것이다.

김철수(창원전문대 교수·대산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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