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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작가와 떠나는 경남산책 (64) 박서영 시인이 찾은 창녕 남지 개비리 옛길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3.09.25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1289
내용
낙동강 벼랑 낀 옛길 따라
그리운 추억들 나를 좇고…

 

 



개비리길 아래 벼랑

 
개비리 옛길
 
 
낙동강에서 바라본 개비리 옛길
 
 
창아지 나루터
 
 


곤충의 울음이라도 듣고 옛이야기라도 하나 줍고 싶은 소슬하고 적막한 가을이다. 며칠 전 술자리에서 소설 쓰는 남자가 쓰르라미는 초가을 저녁 힘없이 우는 곤충들을 통틀어 말하는 거라고 했다. 한여름 세차게 울고 난 곤충들이 힘없이 우는 소리들은 왠지 쓸쓸하다. 쓰르라미는 원래 쓰릅매미를 말한다. 그러나 나는 그 소설가의 설명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 쓰르라미는 쓰름쓰름… 시름시름… 울 것만 같다.

여름날, 여성소설가는 지네에 물린 자신의 어깨를 보여줬다. 지네의 수많은 발이 바람처럼 자신의 머리카락을 마구 흔들어대는 느낌이 들었단다. 그녀의 얼굴은 분홍색으로 달아올라 있었다. 누가 얼음찜질이라도 하라고 했지만 어쩌면 그녀는 조금 이상한 그 감정을 지속하고 싶어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 선명하고 빨간 두 개의 이빨 자국이 한동안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깊은 불구덩이 같은 이빨자국이 점점 서늘해져서 끝내는 쓸쓸한 감정을 불러올 때까지가 바로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고개 아니겠는가. 지네에 물린 여름날을 지나, 쓰르라미 이야기가 술안주로 올라오는 가을이다. 모든 순간은 추억이 된다. 추억이 된 것들에게 ‘옛’이 붙는다. 옛길, 옛집, 옛사랑, 옛이야기… 당신이여, 또 어떤 추억에 ‘옛’을 붙여 보겠는가.

창녕 남지 개비리길은 낙동강 벼랑을 낀 옛길이다. 이 길에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전해진다. 옛날 영아지 마을에서 키우던 개가 남지 용산마을로 팔려가 헤어진 여자 친구를 만나러 자주 다녔다. 개가 다니던 산에 작은 길이 생겼는데 사람들이 그걸 알고 개가 처음 낸 길이라 하여 개비리길이라 불렀다. 비리는 벼랑 혹은 절벽의 토박이말이다. 창녕에는 5개의 개비리길이 있다고 한다. 이방면 덤말리 개비리길, 등림 개비리길, 유어면 이이목 개비리길, 남지 개비리길, 부곡면 임해진 개비리길이 그것이다. 임해진 개비리길 인근 노리마을에는 이야기에 전해지는 개의 기념 비석이 새겨져 있다.

낙동강 억새전망대가 있는 용산마을을 시작으로 천천히 걸었다. 오솔길이 끊어졌다가 이어지기를 반복한다. 얼마쯤 갔을까. 캄캄한 대밭 속에서 폐가 한 채를 만났다. 차라리 폭삭 무너져 내렸으면 좋았을 것을, 저 집은 누구를 기다린다고 저리 천천히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것일까. 기다리는 사람이 아직 오지 않았나. 예전엔 ‘회락정’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다고 한다. 대밭을 벗어났지만 등이 오싹하다. 벼랑 위에 넓은 바위가 있어 잠시 앉아 강을 바라보았다. 햇살에 물의 등이 빛난다. 물고기들도 궁금해 할까. 저 빛이 무얼까, 누굴까. 멀리서 보니 눈부시네. 더 가까이 다가가 볼까. 튀어 오르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을까.

대밭을 지나 다시 길을 걷다가 도보순례자들과 마주쳤다. 구미에서 시작하여 9일째 걷고 있는 중이란다. 한 여학생이 “뱀 없어요?”라며 묻는다. 나는 앞에 가던 사람이 다 쫓아버려서 없을 거라고 대답해 주었다. 순례의 제목은 ‘아름다운 도전’이다. 몇몇 여학생의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 있다. 반바지 차림의 여학생은 다리가 퉁퉁 부어 있다. 그들을 한참 지나서 단체의 무리에서 이탈한 여학생을 만났다. 온몸이 땀에 젖은 채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천천히 걷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음악이 들리지 않을 때까지 잠시 서 있었다. 창아지 나루터가 보여 강가로 내려갔다. 빈 배 두 척이 묶여 있다. 강가에 내려가 올려다보는 벼랑은 포기해야 할 어떤 순간처럼 아스라하다. 타고 올라갈 엄두를 낼 수 없는, 그렇다고 저 위에서 뛰어내릴 수도 없는 시절이 있었다. 인생의 휴식처럼 이쯤에서 잠시 쉬었다가 되돌아가야 한다. 남지 개비리길은 왕복 3.6㎞. 낙동강 1300리 가운데 가장 호젓하고 아름답다. 나루터는 이 옛길의 끝이며 돌아가야 할 반환점이기도 하다. 길을 되돌아오다가 용산정수장 앞에서 쉬고 있는 도보순례자들을 다시 만났다. 다들 지쳐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있다. 저 학생들에게 도보순례는 치유의 한 과정일지도 모른다. 두려움을 치유하고 평화를 얻기까지 얼마나 힘든 훈련이 필요할까. 바람이 나무를 흔들어대고 물결은 쓰름쓰름 울면서 흘러간다. 어디선가 또 풀벌레가 운다.

“옛집으로 가는 길을 가르쳐주세요. 쉿쉿. 찌르르 찌르르….”

“무덤 속의 그 긴 시간으로 말이니?”

나의 옛집! 어린 시절 마루에 앉으면 공동묘지가 보였다. 상여를 메고 산길을 올라와 죽음의 마지막 절차를 진행시키는 모습. 벌초를 하러 오는 사람들과 성묘를 오는 사람들. 명절 뒤끝의 무덤 주위엔 새들이 많이 날아다녔다. 제를 지낸 후의 음식들은 새들이 물고 날아갔다. 이청준 원작소설을 영화한 임권택 감독의 ‘축제’가 아직도 내 최고의 영화로 기억되는 건 아마도 고향에 대한 기억 때문이리라.



“엄마, 사람들은 나이를 먹으면 키가 커진다고 했는데 할머니는 나이가 드실수록 왜 더 작아지시는 거야?”
“응 그건 말이다. 할머니가 나이를 너에게 나눠주고 그 나이와 함께 키까지 나눠주시기 때문이지…. 그리고 지혜도 함께 나눠주시고 나면 하얀 나비로 우리 곁을 떠나시게 된단다.”- 영화 ‘축제’에서



어느 시골 상가의 모습을 담은 ‘축제’의 한 장면 장면들은 내가 어린 시절 본 풍경이다. 지나간 순간들은 ‘옛’이라는 그리움의 글자 하나를 붙이고 나를 따라다닌다. 어쩌랴. 나는 어쩔 수 없는 촌년이다. 나는 ‘촌년’이라는 말이 좋다.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란 탓에 주술이나 미신, 전설 등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런 것들은 어김없이 사랑을 품고 있다. 누가 아플 때, 누가 결혼을 할 때, 누가 죽을 때 시골사람들은 어김없이 기도를 한다. 집에서 키우던 개가 죽거나 소가 새끼를 낳을 때도 기도를 한다. 나무에게도 빌고, 달을 보면서도 빌고, 부엌에 물 한 그릇 떠놓고도 빈다. 나는 점집에 가본 적 없지만, 어딘가 인간이 닿을 수 없는 세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남지철교에 서서 보니 벼랑 아래 물살이 세차다. 강물이 세찬 곳이 바로 의령에서 흘러오는 대천과 남강이 낙동강에 드는 합강지역이다. 옛사람들은 이 지역을 기음강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기음강에 서면 바람이 ‘뱅’돈다고 하신 어른이 생각난다. 정말이다. 바람이 뱅그르르르 돈다. 소용돌이다. 깊이를 알 수 없고 방향을 알 수 없는 물살은 사람을 홀린다. 임진란 곽재우 장군과 의병들이 육지에서 승리를 거둔 전투의 역사적 현장이며 6·25전쟁의 낙동강 최후 방어선이었던 곳이다. 순간마다 그 소용돌이를 잠시 지나왔던가. 돌아보면 전쟁이나 혁명이나 고통이 세상을 단련시켰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물을 잠재워야 할 이곳에서 제를 지냈다고 한다. 신령스럽다. 물이 있는 곳의 풍경은 불길하지만 아름답다. 이웃으로 팔려간 여자 친구를 찾아다녔다는 개의 이야기와 나무에 텅 빈 채 남아 있는 오목눈이의 옛집. 남지 개비리길은 아픈 사람을 위해 누군가 숨겨놓은 길 같다. 강을 바라보며 벼랑길을 천천히 걷다 보면 빠르게 뛰던 심장의 맥박이 잦아들고 평온해진다. 호젓한 숲길을 걷고 나니 ‘옛’이라는 글자가 왜 이리 다정하고 유정하게 느껴지냐. 추억들이여. 너무 꼭꼭 숨어버리지는 말아라. 사라지지도 말아라.

글·사진= 박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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