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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손몽주 작가는 대구미술관의 '와이 아티스트 프로젝트' 전시에 참여한 박정현 작가와 표절 논란으로 홍역을 치렀다. 마침내 지난달 30일 대구지방법원은 손몽주 작가가 제기한 '미술저작물 전시금지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였고, 박 작가의 작품은 철거될 위기에 놓였다.
미술은 음악·어문 등과 달리 '어디까지가 표절인가'라는 범위와 기준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 저작권 침해로 소송까지 가는 사례도 적고 판례도 모호하다. 그래서 표절 논란이 있을 때마다 결국 양심의 문제로 귀결된다.
미술저작권 분야 전문가인 김형진(한국과학기술원 겸직교수)의 저서 <미술법>과 변호사 최동배·김별다비 씨의 논문 '현대미술 장르에서 표절이 저작권 침해가 되기 위한 요건에 관한 연구' 등을 참고해 미술 분야 표절 사례와 주요 논란 지점을 알아왔다.
대구미술관에 전시된 박정현 작가의 'disturbing'. /대구미술관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에 전시된 손몽주 작가의 '확장. 파장. 연장'.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표절 사례 =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가 펴낸 <저작권표준용어집>에 따르면, 표절은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의 저작물 전부나 일부를 그대로 또는 그 형태나 내용에 다소 변경을 가하여 자신의 것으로 제공 또는 제시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표절은 사기행위의 일종이며 저작권의 보호를 받는 저작물은 저작권 침해가 된다. 저작권 침해는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그 저작물을 복제, 배포, 공연 등의 행위를 하는 것이다.
미술 분야에서 표절 대상은 △작품 전체 △색채나 구성 등 부분 △표현 기법 및 아이디어나 이미지 등을 들 수 있다.
표절 논란이 일었던 작품을 살펴보자.
1965년 국전에서 입선한 정규봉 사진작가의 '관혁'과 1970년 제19회 국전 대통령상을 받은 김형근의 '과녁'이 대표적이다. 표절 논란이 있었지만 "반드시 아이디어의 차용이라 할 수 없고,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다"는 애매한 평가를 남겼다.
1984년 잡지 <레이디경향>에 발표된 서경택 경향신문 기자의 '지하철의 보통사람들'과 같은 해 제7회 중앙미술대전 양화부문 대상작인 홍창룡의 '전철정류소'도 예로 들 수 있다.
그해 표절 논란으로 시끄러워지자 심사위원장은 "사진을 보고 그린 그림이 대상을 받았으니 오히려 그 사진기자는 영광으로 알아야 한다"는 어이없는(?) 발언을 해 사진계에서 강력히 반발했다.
1985년 제3회 한국미술제 대상 수상작인 채진태의 '욕녀'는 1973년 관광전문 월간지 <관우>에 실린 임범택의 '누드'를 표절해 수상이 취소됐고, 1991년 제10회 대한민국 미술대전 서양화부문 대상작인 조원강의 '또다른 꿈'도 표절 여부를 놓고 평론가끼리 날 선 공방이 오갔다.
◇풍자와 차용은 문제가 될까 = 표절을 둘러싼 논쟁에서 끊임없이 제기되는 문제는 '풍자(패러디)'와 '차용(인용)'이다.
풍자는 원작이나 제3의 대상을 새롭게 보이기 위해 널리 알려진 원작의 어구, 영상, 음악 등을 흉내 내거나 고의로 과장, 왜곡해 표현한 것이다.
대표적인 풍자 작품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풍자한 마르셀 뒤샹의 'L.H.O.O.Q'를 들 수 있다.
풍자는 △특정한 원저작물을 그대로가 아닌 풍자적으로 익살스럽게 바꿨을 때 △원저작물이 공표되고 가급적 널리 알려진 것일 때 △원저작물의 창작성과는 다른 독자적인 창작성을 지녔을 때 등의 요건을 갖췄을 때 저작권 문제가 없다고 볼 수 있다.
원작을 변형 또는 각색한 풍자와 달리 차용은 이미 알려진 작품의 전부 또는 일부를 빌려다 쓴다.
마르셀 뒤샹은 변기나 자전거 바퀴처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을 가져다 작품으로 발표했다. 파블로 피카소나 조르주 브라크도 신문
기사, 벽지, 담뱃갑 등 다양한 이미지를 자신의 작품에 이용했다.
사진작가 쉐리 레빈, 탐 포사이드, 제프쿤스 등 차용미술가는 "기존의 작품들을 전혀 새로운 각도에서 보게 하기 때문에 표절이 아니라 새로운 작품이다"라고 주장한다.
현재 차용미술과 관련된 대부분의 분쟁은 '합의'로 끝을 맺고 있다. 대체로 법원은 차용미술가에게 다른 사람의 작품을 사용하려면 원작자에게 비용을 지급하고 정식으로 라이선스를 받으라고 권고하고 있다.
◇표절 입증 매우 어려워 = 미술계는 표절 논란이 일면 미온적인 태도
로 일관했다. 문제가 되면 좋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표절과 저작권 침해의 경계선도 모호하다. 과거와 달리 현대미술은 '표현'보다는 '아이디어와 개념, 사고'가 우선시되고, 장르를 넘나드는 실험적인 작품이 쏟아져나오고 있는 탓이다.
저작권 침해로 소송을 제기하려면 원고는 △저작권의 소유 △피고의 권한 없는 복제를 반드시 입증해야 한다.
피고의 권한 없는 복제는 원고가 보고 베꼈다는 '직접 증거'(목격자의 증언, 복제의 시인)를 제시하거나, 직접 증거가 없다면 저작물의 '접근·의거'(주관적 요건)와 '실질적 유사성'(객관적 요건)이라는 기준을 충족해야 인정받을 수 있다.
요약하면 미술 분야는 일부 기준이 있긴 하나 개개인들이 표절을 객관적으로 입증하기가 매우 어렵고, 정확한 판단을 내릴 만한 전문적인 심의기구나 사법기관도 없는 상태이다.
예술가들 스스로 양심을 지키고 독창성을 추구하려는 노력을 다한다면 문제 자체가 없겠으나 이상적인 이야기일 따름이고, 불미스러운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선 실질적인 법적·제도적 장치가 시급히 마련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표절, 더 이상 작가 양심에만 맡길 순 없다
http://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446524 - 경남도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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