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화진흥법, 예산 없으면 있으나마나"

직장인 ㄱ 씨가 시 쓰는 모임을 결성했다. ㄱ 씨는 무료로 24시간 개방하는 문화놀이터를 찾아 창작 열정을 불태웠다.

대학생 ㄴ 씨는 지역문화 전문가를 준비하고 있다. 정부와 경남도가 지정한 양성기관에서 교육을 받았다.

경남도는 생활문화 실태조사를 했다. 누구나 경남도 홈페이지에서 도내 18개 시·군 생활문화예술 동아리와 문화공간을 검색할 수 있다.

오는 29일 '지역문화진흥법'이 시행되면 나타날 변화다. 지역문화진흥법은 지역민이 누릴 생활문화를 법적으로 규정했다. 지역 간 문화격차 해소와 지역별 고유문화 발전이 목적이다. 무엇보다 누구나 어디서든 쉽게 생활문화를 누리는 것이 목표다.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은 법 시행에 발맞춰 보다 내실 있는 지역문화 진흥을 고민하는 세미나를 지난 18일 경남발전연구원 1층 세미나실에서 열었다. 진흥원 개원 1주년을 기념한 자리이기도 했다.

핵심은 공간과 예산, 실태조사로 모아졌다.

배대화 경남대 국문학과 교수가 사회를 맡은 가운데, 주제 발표자로 나선 이춘아 한밭문화마당 대표는 법 7조 2항(주민 문화예술단체 또는 동호회 활동을 위한 공간 확보)을 중점적으로 설명했다.

이 대표는 "지역민들에게 지역문화진흥법은 생활문화다. 우리에게 생활문화는 주민자치센터가 여는 교육 프로그램과 평생학습시설로 친숙해져 있다. 하지만 이곳은 시민이 참여하는 공간이지 무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주민들은 아침마다 빈 학원이나 사무실을 찾아야 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경남의 생활문화가 활성화하려면 생활문화 공간을 확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미 전주시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전주시민놀이터'를 만들어 24시간 주민에게 개방하고 있다.

김명희 창원문인협회 부회장도 공간을 강조했다. 김 부회장은 "25년 전 시를 쓰려고 모임을 결성했지만 장소가 없어 웅변학원에 신세를 졌다. 소규모 문화 활동 장소를 구하지 못해 불편을 겪는 주민을 자주 목격한다"고 전했다.

문제는 예산이다. 조광호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차석전문원은 "생활문화를 지원할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공간을 확보하고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 하지만 재정 마련 방법은 나와 있지 않다. 법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홍상우 경상대 러시아학과 교수도 가장 중요한 재원 확보 방안을 언급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윤정일 디지노마드 대표는 정부가 예산 지원을 중단해 위기에 놓인 지역문화산업 클러스터 조성 사업을 예로 들며 우려를 표했다.

한상우 경남발전연구원 연구위원은 "사업 계획과 예산 확보 대책은 구체적인 실태 파악에서 시작해야 한다"며 "전문인력양성과 지자체 문화재정 확대, 지역문화예술교육 활성화를 위한 기초자료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달 말 지역문화진흥법·시행령이 효력을 발휘하면 경남도와 18개 시·군은 지역문화 진흥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조사 연구를 시작해야 한다.

세미나 참석자들은 지자체가 정부와 지역민을 연결하는 지역문화 정책전달 체계를 어떻게 만드냐에 따라 생활문화가 달라질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