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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문화의 향기] (4) 진주 조이북슈퍼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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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0
조회수
362
내용

진주 망경동 골목은 얼핏보면 평범한 동네같다. 하지만 찬찬히 둘러보면 보석 같은 공간이 숨어 있다. 주택가에 자리 잡은 조이북슈퍼는 이름만 들으면 잡화점인가 싶지만, 문을 열면 놀라고 만다. 30권 남짓한 독립출판물들이 반겨주고 있는 것. 상호는 원래 주택을 개조한 슈퍼가 있던 자리기도 했지만, 동네슈퍼에서 과자를 사듯 부담없이 책을 볼 수 있는 공간이고픈 주인의 바람이 담겼다.

조이북슈퍼는 2018년 11월 진주에 가장 먼저 들어섰다. 당시 전국적으로 독립서점 붐이 일던 시기였지만, 지방에서는 접하기 쉽지 않았다. 이를 눈여겨본 김신영 대표가 고향 진주에 독립서점을 열었다. 대학생 때부터 독립출판물을 좋아한 영향도 컸다.

진주시 망경동에 위치한 독립서점 ‘조이북슈퍼’
진주시 망경동에 위치한 독립서점 ‘조이북슈퍼’.

조이북슈퍼를 방문하는 이들 대부분은 20~30대 젊은 층이다. 간혹 부모님 세대들이 찾아와 관심을 갖기도 한단다. 표면적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독립서점을 좋아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는 걸 실감하고 있다고. 독립출판물을 제공하는 공간이 서울이나 수도권에 비해 지방이 적었던 것뿐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조이북슈퍼에서 판매되고 있는 독립출판물.
조이북슈퍼에서 판매되고 있는 독립출판물.

“손님들이 왔을 때 ‘여기 있는 책이 맘이 든다’거나 ‘저랑 너무 맞는 책인 것 같다’고 이야기해주실 때가 감사해요. 항상 걱정하는 부분을 공감해주시니까요. 에세이, 소설, 시…. 어떤 장르가 됐던 책 속엔 글을 쓴 사람의 마음이 담겨 있잖아요. 우리와 비슷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공감할 수 있는 게 가장 중요하죠.”

조이북슈퍼는 친근한 이름 뒤에 특별한 의미가 숨어 있다.

“책방 이름에 조이(joy)는 ‘조금 이상한’과 ‘즐거움’의 중의적인 표현이에요. 즐거움과 편안함을 다 담을 수 있는 단어라 생각해요. 평소 ‘평범’, ‘정상’ 이런 것들이 주는 부담감이 있었어요. 개인적으로 ‘이상하다’는 표현이 주는 편안함이 좋아요.”

김신영 대표가 출판물을 소개하고 있다.
김신영 대표가 출판물을 소개하고 있다.

그래서 ‘조이사 2호’라는 별칭도 가지고 있다. 조이사는 ‘조금 이상한 사람’을 줄인 단어다. 명함에도 ‘김신영’과 ‘조이사 2호’ 두 이름이 나란히 새겨져 있다. 간혹 손님들이 조이사 1호의 정체를 물어보기도 한단다. 조이사 1호는 언니다. 그녀는 둘째라서 2호라 붙였다. 동생은 조이사 3호로 불린다. 태어난 순서만 따진 건 아니다. 자신뿐만 아니라 언니와 동생도 ‘조금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고픈 소심한 전략이 담겨 있단다.

책을 입고하는 기준은 ‘좋아하는 마음’이 1순위다. 독립출판물 하나하나 허투루 진열하지 않았다. 출판물에 부착된 손 메모는 책을 고르게 된 나름의 고민이 묻어난다. 손님들이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도록, 와닿았던 문장을 연필로 슥슥 그은 흔적이 있는 샘플용 책도 올려 놓았다. 주인장의 취향을 구경하는 건 덤이다.

독립출판물에 붙여져 있는 책 소개 손 메모.
독립출판물에 붙여져 있는 책 소개 손 메모.

‘누군가에게 추천할 책을 고민하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행위다. 여행지에서 그 사람을 생각하며 엽서를 쓰는 것과 같다. 오랫동안 책을 멀리한 사람도 먼 곳에서 보내주는 엽서를 무시할 수는 없다. 그렇게 뜻하지 않은 곳에서 보낸 한 권이 요즘은 책을 안 읽는다는 그 삶을 다시 한번 독서라는 즐거움으로 이끌 수 있을지 모른다. -하바 요시타카 ‘책 따위 안 읽어도 좋지만’-’

조이북슈퍼의 서가는 하바 요시타카의 글을 연상시킨다. 책에 대한 강박을 없애주기에 충분하달까.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집과 그림책 위주이지만, 책을 선별하는 과정은 가볍지 않다.

“처음 가게를 오픈했을 때부터 입고하는 책들은 다 읽어보고 결정했어요. 덕질의 마음일 수 있는데, 책을 읽고 너무 좋아서 알리고 싶고 같이 읽고 싶은 마음으로 책을 소개해요. 그러다보니 서가엔 자연스럽게 취향이나 관심사가 많이 담기게 되더라고요. 작가들의 마음을 따라갈 수는 없지만, 여기 있는 책 모두 우리 애정이 담겨 있어요. 심심할 때 유튜브하고 게임하는 것처럼 책 읽기를 바라는 마음이기 때문에, 책방에서 소개하는 책들은 주로 부담없이 재미있고 편하게 잘 읽히는 책들이라 생각합니다.”

김 대표 언니의 일러스트.
김 대표 언니의 일러스트.

책장 옆 벽면엔 일러스트가 지그재그 걸려 있다. 조이사 1호, 언니의 작품이다. 언니가 일러스트와 캘리그라피에 관심이 많다 보니, 자연스레 이와 관련된 작품들도 이 공간을 차지했다. 입고한 작품들이 우연하게도 진주 출신이거나 진주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이었다. 엽서, 포스터, 폰케이스, 마스킹 테이프 등 굿즈로 판매되고 있다. 동심을 깨우는 아기자기한 장난감들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아날로그 감성이 스민 레코드판도 보인다.

진주 출신 작가들과 만든 굿즈.
진주 출신 작가들과 만든 굿즈.
진주 출신 작가들과 만든 포스터·엽서.
진주 출신 작가들과 만든 포스터·엽서.

김 대표는 고향에 자리 잡으면서 진주에 대한 애착이 돋아났다. 고향을 소개할 때 좀 더 다양하고 친근한 진주를 보여주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 그래서 언니와 진주의 풍경들을 찍기 시작했다. 애정의 결과물이 진양호, 촉석루 등을 담은 엽서집(Letters From Jinju) 두 권으로 탄생했다. 현재 독립출판물을 소개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진주 공중파 라디오에 출연해 책을 소개하고 있고, 봄이 오면 독서모임 ‘책상회’도 준비 중이다.

책방은 거창한 이유를 가지고 차린 건 아니다. 그저 책이 너무 좋아서다. 조이북슈퍼가 ‘심심하니까 책 한 번 읽어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올 수 있는 책방’이 되길 꿈꾼다. 코로나로 인해 운영 위기도 있었지만, 어려움을 버틸 수 있는 힘도 이 공간에서 나온다고. 오랫동안 즐겁게 책방을 꾸려나가길 바라고 있다. 올해는 책 권수도 40권으로 늘릴 계획이다. 이보다 더 늘릴 생각은 없단다. 처음부터 읽고 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지 않는 선에서 책을 알리겠다는 원칙을 세웠다.

책방지기 조이사 2호에게 인생 책은 무엇일까.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사실 인생책은 없어요. 그냥 그때마다 마음에 꽂히는 책이 다 달라요. 좋은 책, 나쁜 책이 있는 게 아니라 시기마다 나에게 맞는 책, 필요한 책이 있다고 생각해요. 작년에 ‘와 이건 인생책이야’ 하면서 읽었지만, 지금은 그만큼 좋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저 그 순간, 나에게 맞는 책이면 그 책이 최고가 아닐까요.”

진주 망경동에 오면 슈퍼에 들르듯, 조이북슈퍼에 들러 보자. 뜻하지 않은 곳에서 마음이 열리게 될 테니.

글= 주재옥 기자 jjo5480@knnews.co.kr

사진= 성승건 기자 mk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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