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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전시소식

제목

피땀으로 만들고 붙인 닥종이 '자연'을 말하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10.21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218
내용
피땀으로 만들고 붙인 닥종이 '자연'을 말하네

한지 포개어 표면 입체감 표현
종이 뒤에 먹 넣고 두드려 작업
독창적 제작방식 국외서도 주목

수년 전부터 창원시 성산아트홀 전시실과 마산현대미술관 등 지역 전시공간에서 종종 눈에 띄는 작품이 있었다. 어찌 보면 단색화 같기도 하고 또 어찌 보면 거친 벽을 떼어다 붙여놓은 듯도 했다. 한 달 보름 전 마산현대미술관에서 '크레아트회전'이 열렸는데, 그때 다시 낯익은 이 작품을 만났다. 작품 안내를 해주던 정동근 크레아트회장이 작가와 작품에 대해 설명해줬다. "김학일 작가는 한지를 이용해 자신만의 독특한 작업을 하는데, 외국에서도 선호하는 작품입니다."

그러다가 몇 주 후 남소연 연아트오브갤러리 대표에게 소개할 만한 작가를 추천해 달라고 했더니, 맨 먼저 꼽은 이가 역시 한국화가인 김학일 작가였다. 다른 사람을 통해 연거푸 이름을 접하게 되니 그의 작품세계가 궁금했다.

3주 전 그의 작업실로 찾아갔다. 창원시 성산구 상남동에 있는 건물 5층 작업실은 꽤 넓었다. 작업실과 사무실, 전시실 3개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전시실에서 만난 김 작가는 "전시실이라기보다 그냥 완성된 작품 중 몇 개 걸어놓는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고대 암각화 같은 느낌을 주는 작품도 걸려 있고 벽에 여러 모양의 작은 구멍이 뚫린 것 같은 작품도 보인다. 어떤 작품은 하얀 시멘트벽에 선과 구멍이 일정 정도 간격을 두고 배열한 듯 배치돼 모스부호같이 느껴졌다. 최근에 작업한 것으로 보이는 작품들은 길쭉한 면과 선·점이 조화롭게 배열된 특징을 보였다.

▲ 김학일 작가가 지난달 27일 오후 창원시 성산구 상남동 작업실에서 작품 '자연-감(自然-感)'을 설명하고 있다.  /김은주 인턴기자 kej@idomin.com
▲ 김학일 작가가 지난달 27일 오후 창원시 성산구 상남동 작업실에서 작품 '자연-감(自然-感)'을 설명하고 있다. /김은주 인턴기자 kej@idomin.com

작품 이름이 따로 붙여진 게 없어서 물어보았더니 제목은 모두 '자연-감'이라고 한다. 한지와 먹을 주 재료로 사용하면서 색을 최대한 자제해 형상화한 작품들은 모두 자연의 모습을 담고 있기 때문이란다.

그가 쓰는 한지는 문인화나 서예 등에 쓰이는 한지가 아니다. 닥나무 껍질을 말려 곱게 갈아놓은 닥종이다. 그의 작업대 위에는 제법 두꺼운 닥종이가 펼쳐져 있었다. 크기도 가로 세로 사람 키를 훨씬 넘는 규모다.

이런 걸 어떻게 구하는지 궁금했다. "한지 공장에 주문을 하죠. 예전에는 말려놓은 것을 사서 믹서로 직접 갈아서 작업했는데, 그러다 보니 시간도 오래 걸리고 작업 공정도 많아 요즘은 그냥 곱게 갈아 달라, 거칠게 갈아 달라, 때로는 표백을 하지 말고 보내달라고 요청해요. 한 번 주문할 때 30㎏ 단위로 하는데 대작은 작품 하나에 30㎏ 모두 소진하기도 해요."

그의 작업은 복잡한 공정으로 이루어진다. 일단 주문한 닥나무 껍질 가루를 물과 전용 풀을 활용해 죽으로 만든다. 그것을 원하는 크기로 작업대에 납작하게 펼쳐 종이를 만드는데 물을 빼고 선풍기를 돌려 말리는 과정이 꽤 오래 걸린다. 그렇게 같은 크기의 종이 두 장을 뜬다. 그 다음엔 두 장을 배접해 입체감을 내는 작업을 한다.

"이걸로 마티에르 효과를 내는데 어떤 부분은 두껍게 하고 또 어떤 부분은 적게 넣어 얇게 하죠. 작품 표면에 있는 틈도 처음에는 계획적으로 구상하고 나중에 두들긴다든지 해서 자연스럽게 틈의 형상이 나오게 해요. 먹은 앞에서 칠하는 것이 아니라 종이 뒤쪽에서 먹을 넣고 두드려 반대쪽 표면에 먹이 드러나도록 합니다. 그러면 먹이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되죠."

이러한 작업 방식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도 김 작가만의 독창적인 것이라고 자부했다. 어떻게 이런 방식을 창안하게 됐을까.

"대학에서 한국화를 전공했는데 처음에는 평범한 작업을 했어요. 20년 전 쯤부터 남들이 하지 않는 작업을 해보자 싶어 닥종이를 원료로 작업하기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닥종이 질감이 도드라져 마음에 드는 거예요. 이 작업을 계속하다 보니 두 장을 붙여 입체감을 살리는 방법도 고안하게 된 거고요."

▲ 김 작가가 작품 주재료인 한지를 보여주며 작업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김은주 인턴기자
▲ 김 작가가 작품 주재료인 한지를 보여주며 작업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김은주 인턴기자

품이 적지 않게 드는 작업이다. "당연히 힘이 들죠. 이 작업하면서 허리 디스크도 걸리고 그랬어요. 종일 작업대에 엎드려 두드리는데 안 힘들 수가 없죠. 지난해에는 대작 위주로 전시했는데, 마산현대미술관 전시 때는 수술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몸이 안 좋았어요. 작업대에서 뜰 수 있는 종이의 최대 크기가 500호 정도 되는데 이음새 없이 한 장으로 작업해야 할 때는 종이를 다루기 쉽지 않아요."

이러한 한지는 습기에 치명적일 테니 보관에도 신경을 많이 써야 할 것 같다. 여름에 습기가 차면 종이가 축 처지기도 하고 겨울에 건조하면 종이가 뒤집어지기도 한다고. 그래서 판에 붙였을 때 평평함을 유지하게 하는 게 중요하단다.

"작업을 다 했는데 마음에 안 들면 찢어버리기도 해요. 색이 너무 연하게 나왔다든지, 반대로 너무 진하게 나왔을 때는 어쩔 수 없죠."

그는 힘들어도 한지 작업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한지 작업은 노동이 많이 들어가더라도 재미가 있어요. 다양하게 표현할 수도 있고요. 작품에 색을 넣은 것은 2~3년 되는데 생동감을 주기 위해서였어요. 구체적인 무엇을 형상화하기보다 조형성을 위주로 작업해요. 때로는 나란한 대나무 숲을 느끼기도 하겠고 때로는 우주의 행성을 느끼기도 할 거예요. 대부분 질서정연하게 표현하고 조금씩 자유분방함을 보탭니다."

지역 미술계에서는 잘나가는 작가라고 소문이 났지만 작품만으로 생활은 쉽지 않다고 한다. 학원을 운영하며 창원대 강의를 나가고 있는 그는 팔기 위한 작품을 그리고 싶은 생각은 여전히 없다고.

"상업화랑에 맞는 그림을 그리자면 작가의 정체성이 없어지니 그런 건 생각도 안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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