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전시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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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미술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앤디 워홀. 그는 1960년대 미국 대중들에게 익숙한 캠벨 수프 깡통이나 마릴린 먼로, 재키 케네디를 그린 실험적인 회화를 선보이며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는데요. 그가 현대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 될 수 있었던 이면에는 ‘목적성과 장식성이 강한 그림’ 즉, ‘디자인’이라는 분야에 종사한 경력이 숨어 있습니다. 워홀은 대학 졸업 후 신발 광고를 만드는 광고 디자이너로 활약하다 돌연 회화시장에 뛰어들었는데요. 과연 그의 작품의 어디서부터 디자인이고 어디까지가 순수회화인지, 이를 명확하게 구분해 낼 기준점은 무엇일까요?
사실 디자인과 미술은 엄연히 다른 세계로 구분지어져 왔습니다. 하지만 대상을 강박적으로 반복한 워홀의 회화에서 마치 디자인 도면을 보는 듯한 느낌을 포착할 수 있듯, 21세기로 넘어오면서 이 두 분야의 경계는 점점 허물어져가고 있습니다. 쿠사마 야요이는 루이비통 사(社) 백에, 낸시 랭은 (주)쌈지 지갑에 자신의 작품을 그려넣는 등 디자이너가 주로 하던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 일시적으로 특정 기업 상품의 디자인을 도맡아 하는 협업) 작업에 미술작가들이 심심찮게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입니다. 이렇듯 디자인성을 띤 회화, 회화성을 띤 디자인이 한데 섞이며 새로운 개념의 통합을 이뤄내고 있는데요. 이런 조류에 창원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최성규 작가가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최 작가는 홍익대 미대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80년부터 지구레코드사(社)에 입사해 레코드 커버를 디자인했습니다. 조용필, 신중현, 송골매 등 당시 내로라하는 가수들의 앨범 커버를 디자인했던 그는 능력을 인정받아 KBS가요대상 레코드 재킷 부문에서 2년 연속으로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그 후 승승장구하던 레코드도 CD와 카세트 테이프가 성행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그는 광고대행사에서 일하다 1989년 경남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교수로 부임합니다. 최 작가는 지난 30여 년 동안 꾸준히 ‘한국’이라는 주제와 한글, 기와, 태극 등을 소재로 일러스트 작업을 해왔는데요. 그가 색동과 산을 소재로 2년을 꼬박 투자해 개인전 ‘색동山’을 준비했습니다. ‘색동山’은 서울 인사동 가나아트스페이스에서 12일부터 17일까지 열린 후 창원으로 내려올 계획인데요. 그는 한국의 대표적 문양인 ‘색동’에 한국인의 정서와 닮은 둥글고 유려한 ‘산’을 조합시켰습니다. 천을 이용해 산의 능선과 골짜기 모양을 만들고, 그것을 사진으로 찍은 후 디지털 작업으로 본을 떠 밑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색채를 입히는 과정이 주요 작업입니다. 캔버스 위에 밑그림을 얹어 마스킹 기법으로 도안이 가리지 않는 부분만 채색해 골짜기와 능선, 산의 높낮이와 음영을 표현했습니다. 에폭시를 혼합해 눈이 내린 산의 모습을, 도자를 오브제로 이용해 산 아래에 오밀조밀 모여 있는 마을을 형상화했는데요. 그의 작품 면면은 마치 그래픽 작업을 한 깔끔한 디자인인 듯하면서도 서양화풍이며, 서양화풍이면서도 마치 동양화를 보고 있는 듯 편안한 느낌을 풍깁니다.
최 작가는 “디자인도, 순수회화도 각각 한계가 있다. 디자인적인 사고, 순수회화적인 사고를 함께 받아들일 때 진일보한 예술이 탄생할 것이다”고 말했는데요. 워홀이 전통적인 회화개념과 일상생활을 통합해 팝 아트를 탄생시켰다는 점을 인지한다면, 디자이너도 미술작가도 흘려듣지 말아야 할 일침인 듯 보입니다.
김유경 기자 bora@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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