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전시소식
정진혜(48) 화가의 툭 치면 쓰러질 듯 가냘픈 몸, 어딘가 슬퍼 보이는 눈빛, 귀를 기울이게 하는 작은 목소리는 예민하고도 슬픈 듯한 인상을 주었다.
15번째 개인전 제목은 '쓸쓸하고 높고 푸르른'. 팸플릿 중간마다 작가가 직접 적은 글귀는 '슬픔도 미학이 된다'고 말을 건넨다.
지난 3일 진주 경남문화예술회관 제1전시실. 개인전 여는 행사를 3시간 남짓 앞둔 정 작가는 70개 작품을 손수 걸고 작품 제목을 쓰고 있었다.
한두 개는 까맣게 잊어버릴 법한데도 막힘없이 제목을 써내려 갔다.
작가는 "저는 어떻게 그림을 완성할 것인지 에스키스(밑그림)를 글로 쓴다. 글과 제목을 먼저 쓰고 그것을 그림으로 그린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미술작품 못지않게 글과 제목을 소중히 여긴다.
3일 진주 경남문화예술회관에서 경남도민일보와 인터뷰 중인 정진혜(왼쪽) 화가.
정진혜 하면 '슬픔을 그린다', '검은색을 좋아한다', '자신의 내면 세계를 작품에 반영한다'는 평이 많다. 작가는 이에 대해 "이상하게도 어렸을 때부터 슬픔이 아름다웠다"면서 "대부분 사람은 슬픔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빨리 걷어내려고 한다. 슬픔의 색은 결코 어둡지 않다. 찬란함을 통해 우리는 슬픔을 느끼기도 한다. 그것이 곧 카타르시스다"라고 말했다.
'꽃'을 좋아해 꽃을 그리는 그녀는 꽃으로 사람의 삶을 이야기한다. 꽃이 피고 지는 것처럼 인생 또한 그러하리라. 인생의 여러 감정 중 슬픔을 그림으로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슬픔을 나눈다.
떨어지는 꽃(落花), 앙상한 줄기, 홀로 외로이 핀 꽃이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이유다. "슬픔은 슬픔으로 치유되고 아픔은 아픔이 달래준다. 슬픔은 헤아릴 수 있고 아픔은 나눌 수 있을 때 보석처럼 가치롭다"고 그녀는 말했다.
작가는 밤에 피었다가 아침이 되면 눈을 감는 달맞이꽃을 좋아했다. 10여 년 전 창원 동읍 주남저수지에서 밤길을 헤매었을 때, 환하게 핀 달맞이꽃을 보고 길을 찾았던 경험 덕분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아침에 피었다가 밤이 되면 눈을 감는 '수련'을 그린다. 달맞이꽃과는 정반대다. 검은색도 많이 걷혔다.
정진혜 화가는 "그림이라고 해서 왜 항상 행복하고 희망적이어야 하는가"라고 반문하면서 "슬픔도 아름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정 화가 뒤편으로 작품 '어린 영혼의 바다'가 보인다. /김구연 기자
지난 2011년 유방암 선고를 받았던 그녀는 건강이 회복되면서 이전보다 조금 더 밝아진 느낌으로 슬픔을 표현하고 있다.
혹자는 "우울한 그림, 슬픈 그림 그만 그리고 시장에 팔릴 만한 그림을 그려라"고 말한다. 작가는 "갈등을 했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하지만 시집 <노동의 새벽>(1984)으로 유명한 박노해 시인의 사진전을 보고 마음을 되잡았다. 티베트, 인도, 라오스, 인도네시아 등 분쟁과 빈곤 지역에서 촬영한 사진들이다.
"사람들은 슬픈 책, 슬픈 영화를 보면서 삶을 정화한다. 그림이라고 해서 왜 항상 행복하고 긍정적이고 희망적이어야 하는가"고 반문하면서 "슬픔도 아름다울 수 있다"고 그녀는 말했다.
경남문예회관 전시는 오는 9일까지다. 이어 11일부터 17일까지 서울 종로구 가나인사아트센터 1층에서 정진혜 작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우울하고 슬픈 것도 얼마든지 아름답다
http://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448752 - 경남도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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