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시민문화공간 흑백'(창원시 진해구 백구로 57)으로 바뀌었지만 아직도 그곳은 진해 흑백다방으로 통한다.

진해 흑백다방은 1955년 처음 문을 열었다. 화가 유택렬(1924~1999)이 운영했으며 음악가, 화가, 연극인, 문인 등 예술가의 사랑방이었다. 일본식 목조가옥으로 1층은 흑백다방, 2층은 화실이었다.

지금은 유택렬의 둘째 딸이자 피아니스트 유경아 씨가 2011년부터 시민문화공간 흑백으로 간판을 바꾸고 매주 토요일 음악회와 연주회를 열고 있다.

지난달 21일 창원상공회의소 1층 챔버갤러리에서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이 흘러나왔다. 유택렬의 전시 오프닝에서 유경아 씨는 "당일까지 연주할 곡목을 선택하지 못하다가 창원으로 향하는 길에 결정했다"면서 "월광 소나타를 연습하거나 연주할 때 유독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다"고 설명했다.

  
 유택렬 작 '단청에서'(1988년 작). /챔버갤러리 

오는 27일까지 챔버갤러리는 유택렬 특별전을 연다. 챔버갤러리는 2009년 문을 연 이후 처음으로 미술품에 대해 보험 가입을 할 정도로 이번 전시에 신경을 많이 썼다. 유택렬의 작품 10여 점이 전시된다.

유택렬은 경남 추상미술 1세대다. 전통적인 토속신앙 세계를 특유의 미의식으로 재구성한 화가다. 1950년대 후반에서 1960년대 중반에 제작된 추상화들은 당시에도 상당히 실험적인 화풍에 속했다.

1924년 함경남도 북청에서 태어난 유택렬은 1·4후퇴 때 월남해 1954년부터 1999년 생을 마감할 때까지 진해에서 살았다. 1955년부터 진해중·고등학교, 진해여중·고등학교, 충무중학교 등에서 미술교사로 근무했다.

그의 제자로는 현재 경남도립미술관 야외광장에서 전시 중인 박석원 조각가를 비롯해 이수창 남광석유판매㈜ 대표이사, 김해동 창원대 미술학과 교수, 조송식 조선대 미학과 교수 등을 꼽을 수 있다.

유택렬은 1957년 33살 때 진해 태양다방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당시에는 6·25 전쟁의 상처를 담은 작품이 주를 이뤘다.

1960년대는 어두움에서 벗어나 밝은 분위기를 담았다. 1970년대부터는 한자나 문자를 이용한 작품과 부적, 골동품을 모티브로 한 작품을 선보인다.

  
 유택렬 작 '자화상'(1975년 작). /챔버갤러리 

미술평론가인 김미윤 경남문학관 관장은 "추사 김정희가 북청으로 귀양왔을 때 그의 고조부 유 진사와 맺었던 각별한 교분으로 추사 육필이 집안 대대로 전해져왔다. 유택렬은 자연스레 추사체를 접하면서 성장했고 글자가 갖고 있는 조형적 회화성에 깊이 빠졌던 것으로 여겨진다"고 설명했다.

유택렬의 어머니는 그가 몸이 아플 때 약국을 찾기보다는 주술의 힘을 빌리려 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 접한 추사의 육필과 샤머니즘적 민간신앙에 대한 깊은 관심이 작품으로 표현된 것이다.

이후 유택렬은 흑백의 단선적인 색에서 점차 한국의 전통적인 선과 색채를 연구해 부적·단청·떡살·민화 등에서 자신만의 소재와 특유의 색감을 발견해낸다.

지난 2005년 경남도립미술관은 유족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 총 600여 점 중 유화·먹그림·드로잉 등 160여 점을 선정해 1950년대부터 1999년까지 시기별로 구분해 전시한 바 있다.

올해는 유택렬 추모 15주기로 다양한 행사가 열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