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전시소식
이번 테마전시는 국립대구박물관이 한국 전통 공예를 주제로 기획하고 있는 연속 전시의 첫 번째 주제입니다.
화려하게 멋을 낸 조선시대 궁중 복식을 통해 한복에 표현한 금박의 문양과 기술을 소개하고, 금박 공예의 전통과 계승 과정을 살펴보는데 주안점을 두었습니다. 전시품은 국립고궁박물관과 국립무형유산원에서 출품한 궁중 한복과 금박을 붙이는 데 사용한 문양판 등 모두 ?22점입니다. 이 중 국가무형문화재 명예보유자의 작품 4점은 전시 후반 일정에 교체로 전시할 예정입니다.
주요 전시품은 영친왕비 당의와 치마입니다. 영친왕 일가족의 복식은 조선 왕실의 마지막 장인들이 남긴 작품으로, 당대 최고의 솜씨와 정성이 담긴 궁중 복식의 정수로 평가받는다. 문화재청은 영친왕 일가족의 복식이 조선 왕실의 복식사와 의장의례에 중요한 자료적 가치가 있음을 인정하여 국가지정문화재(중요민속자료 제265호)로 지정하였습니다.
영친왕비 당의唐衣는 궁중에서 평상시에 소례복小禮服으로 입는 옷입니다. 옥색의 도류불수문단桃榴佛手文緞으로 지은 겹당의이며, 당의의 앞과 뒤 그리고 깃에는 "수壽”와 "복福” 두 글자를 부금付金하였습니다. 궁중에서 사용하는 도류불수문桃榴佛手文은 복숭아·석류·불수감(부처의 손을 닮았다는 불수감나무)무늬가 함께 어우러져 있는 것으로, 각 과실의 꽃과 잎을 화려하게 표현한 것이 특징입니다.
대란치마는 조선 왕실과 대한제국 황실 여성이 적의翟衣나 원삼圓衫 등으로 예복 차림을 할 때 하의下衣로 갖추어 입는 옷입니다. 치마를 장식하기 위한 스란단이 치마의 아래쪽에 2단으로 부착되어 있습니다. 스란단에는 한 쌍의 봉황이 보주寶珠를 중심으로 서로 마주보고 있으며 여백에는 구름이 가득한 운봉문雲鳳文(구름과 봉황무늬)을 부금하였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옷에 금가루를 사용한 것은 삼국시대부터입니다. 금박공예는 고려시대에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6두품과 5두품 여인의 바지에 금니金泥 사용을 금지했다는 기록이 있고(잡지2 색복),『고려사高麗史』에는 문종 26년(1072)에 사신 편으로 송에 보낸 물건 목록 중 어의御衣와 황계삼黃?衫 등을 금박 장식한 붉은 비단 겹보에 싸서 봉했다는 기록이 전합니다(세가 권8). 조선시대에는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악학궤범樂學軌範』등 여러 기록에 금박일을 하는 업무(금박장, 도다익장, 부금장, 금장, 니금장 등)가 더욱 세세하게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우리 옷을 장식한 금박 공예는 오랫동안 신분과 부귀를 나타내는 상징물이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화려한 궁중 복식으로 전승되었고 금박 공예는 근대에 들어 기계로 금박을 만들고 복식 유행의 흐름이 바뀌면서 금박장의 역할은 줄어들어 부금장付金匠(금을 입히는 장인)을 중심으로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전시에서는 국가무형문화재 명예보유자의 작품도 함께 전시하여 금박공예의 현대적 전승과정도 엿볼 수 있습니다. 현재는 옷을 장식하는 금박 공예의 전통이 명맥을 잇는 정도이지만, 금박 공예가 갖는 역사적 의의는 실로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전시가 우리 한복 금박공예의 기술과 전통 그리고 역사적 의의를 되새겨보는 자리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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