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전시소식
조선업 불황이 거제에 남긴 흔적은 뭘까. 멈춰버린 공장들과 불 꺼진 유흥가, 일과 건강을 잃은 노동자와 가족들, 그리고 절망 한가운데서도 꿈틀대는 희망들. 이 모든 것들을 집약한 전시가 거제 한 유휴 조선소에 마련됐다.
거제 청년기업인 로컬디자인 섬도(대표 김은주)가 주최한 ‘첫번째 파도’ 전시다. 지난 14일 개막한 전시는 조선업 경기 쇠퇴에 따라 거제도에서 일어난 변화를 추적하고, 그 변화가 사람과 자연에 끼친 영향, 그로 인해 상처 받은 노동자 등 거제지역의 문화를 기록해 보여주기 위해 기획됐다.
전시장은 거제시 사등면에 위치한 청강개발 내 폐공장 2개 동이다. 녹슨 구조물, 깨진 유리창, 뒷벽을 뚫고 들이닥친 토사물까지 마치 거제의 현실을 암시하는 듯한 조선소 내부는 그 자체로 작품의 일부인 듯하다.
공장 입구는 낡은 외관과 대비되는 밝은 파란색 파도 물결의 대형 포스터가 내걸렸다. 전시의 주제이자 가치를 담은 ‘파도’는 이들이 거제의 시련을 잘 타고 넘어가고 싶은 미래, 즉 기회와 희망을 의미한다.
거제 로컬디자인 ‘섬도’가 기획한 전시 ‘첫번째 파도’. 전시장으로 거제시 사등면 청강개발 내 폐조선소 공장을 활용했다.
거제에서 채집한 조선소와 자연 소리로 가득 채워진 전시장은 거제의 어제와 오늘이 고루 섞여 있다. 1전시장의 한쪽 벽면은 거제 지역 중공업의 호황기 시절 경관을 담은 조춘만 작가의 대형 사진이 펼쳐져 있다. 그 옆으로 이영준 교수가 1982년부터 2002년까지 대우조선이 선박한 모든 선박들을 종류별 크기별로 정리해 한 장의 도표 ‘대우조선 30년’을 만날 수 있다.
아이브이에이에이아이유 씨티(IVAAIU City)는 ‘수렴의 파도’를 주제로 거제 조선소의 야간 조명을 연상시키는 대형 LED 작품을, 박재형 작가와 임희주 작가는 조선소 근처에서 수집한 산업 폐기물을 재료로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번 전시를 위해 ‘거제 한달 살기’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지역 작가 장건율씨는 ‘거제풍경’을 주제로 거제의 사라져 가는 난대 식물을 회화작품으로 선보인다.
2전시장 내 조선소 노동자들의 현실을 고발하는 영유아(박보은·윤혜령) 팀의 작품 ‘물음표’도 눈길을 끈다. 거제 조선소 노동자의 가족인 이들은 인력사무소라고 적힌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 조선소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유니폼을 배경으로 프로젝션 맵핑(Projection Mapping) 기술을 이용해 조선업의 구조적 문제와 하청 노동자들의 삶과 권리에 대해 질문한다.
이 밖에 안솔지 작가가 조선소 노동자들의 만성질병과 부상에 대해 기록한 ‘사그라들 리 없는 가락’, 거제 조선업 노동자의 심리치료와 상담을 진행한 ‘Art on Earth’팀의 상담 기록들, 식물인테리어팀 ‘수무’의 조경작품도 만날 수 있다.
예술가, 기계비평가, 심리 치료사 등 11개 전문가 팀이 거제도라는 도시를 각자의 해석으로 풀어낸 이 작품들은 관람객에게 지금 거제의 현실이 어떤지, 더 나은 거제를 위해 무엇을 꿈꿀 것인가를 묻는 듯하다.
섬도 김은주 대표는 “이 도시가 비어가고 있는 것을 목격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아서 산업에 종사했던 이들의 상처와 그로 인해 발생한 문화의 특수성, 시대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자 했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거대한 조선산업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개인의 이야기, 사회 현상을 깊이 들여다보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빚어내는 원동력을 생산해내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 이번 전시를 공동기획한 이영준 기계비평가는 비평문을 통해 이번 전시의 가치를 이렇게 정의했다.
“이 전시는 폐(廢)자에 반대하는 움직임이다. 산업의 경기가 한때 내리막을 탄다고 해서 거기 관련된 모든 것들을 죽은 것으로 쳐서는 안 된다는 작은 항의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전시에 참여작가들이 공통적으로 모색하는 것은 거제도에서 살아 있는 산업과 문화와 자연은 무엇일까 하는 것이다. 파도는 시련이기도 하고 기회이기도 하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는 말이 있듯이 파도를 잘 타면 다시 기회가 올 수도 있다. 다양한 매체와 작업방식으로 찾아낸 예술의 기회가 산업의 기회로 이어지길 바란다.” 전시는 30일까지다.
글·사진= 조고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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