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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시간 〈구멍가게, 오늘도 문 열었습니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12.09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363
내용
책 읽는 시간 〈구멍가게, 오늘도 문 열었습니다〉 (이미경 지음)
마을 어귀서 마주했네 내 마음 닮은 풍경

화가 꿈꾸다 주부로 지내게 된 작가
전국 작은 가게 20년간 펜으로 그려
책 출간·전시 이어 국외서도 주목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 담아"

통영에서 이미경 작가 책을 처음 만났다. 통영지역 출판사 '남해의 봄날'이 운영하는 '봄날의 책방'에서다. 빛바랜 듯한 파스텔톤 옥빛 슬레이트 지붕 위로 하얀 목련꽃이 활짝 핀 구멍가게 그림이 표지였다. 그림 제목은 '봄날 가게'. 소담한 동네책방과 어울리는 그림책이었다.

지난해 다시 찾은 책방에서 나란히 진열된 책 두 권을 다시 만났다.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2017)과 <구멍가게, 오늘도 문 열었습니다>(2020)였다. 표지를 장식한 구멍가게 그림이 여전히 따스하게 다가왔다. 손길이 머물렀으나 살까 말까 망설이다 돌아섰다. 그때의 아쉬움 때문일까. 이미경 작가가 창원에서 북 토크를 한다는 신문 광고에 눈길이 갔다. 코로나19로 힘겨운 동네책방을 찾아 독자들을 만난다는 내용이었다.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의 2021년 경남출판활성화 지원사업으로 마련된 자리였다.

▲ 이미경 작가가 그린 하동 강변슈퍼.
▲ 이미경 작가가 그린 하동 강변슈퍼.

이 작가는 충남 당진 오래된 미래(11월 18일), 부산 낭독서점시집(12월 3일)에 이어 지난 4일 창원 주책방을 찾았다. 최근 코로나 확산세로 사전 신청한 독자 10명 남짓만 동네책방에 모여 작가를 만났다. 20년 동안 전국의 사라져가는 구멍가게를 기록하며 '구멍가게 그림 작가'로 불리는 그의 책 이야기를 직접 듣는 시간이었다.

화가를 꿈꾸던 그는 이른 결혼으로 경력이 단절됐다. 육아에 전념하면서도 그림은 포기할 수 없었다. 도시를 벗어나고파 경기도 광주시 퇴촌으로 이사하고 나서도 그의 지친 몸과 마음은 회복되지 않았다. 논밭 길을 지나 아이들과 평소 자주 찾던 마을 어귀 구멍가게가 한날 달리 보였다. '처량한 아름다움'. 자신의 처지 같았다. 집안 한 모퉁이에 방치돼있던 잉크펜을 찾아내 끄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탄생한 첫 작품 '퇴촌 관음리 가게'(1998)는 스산해보였다.

"초기 그림이 조금 어둡고 쓸쓸하게 느껴졌다면, 최근 그림은 점점 화사해져요. 황폐했다가 나이가 들면서 더 여유로워지고 넓어진 제 마음이 투영된 것 같아요."

주부로 살면서 10년 동안 작업한 그림은 겨우 10점. 아이들 돌보고 집안일 하면서 좁은 공간에서 그나마 그릴 수 있는 펜화를 놓지 않았다. 그림을 그리면서 그동안 맛보지 못한 기쁨을 느꼈다. 블로그(leemk.com)에 올린 펜화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온라인에서 여기저기 떠돌았다. 이를 눈여겨본 출판사 기획자 제안으로 새로 작업한 그림을 보태 2007년 생애 첫 개인전을 열었다.

펜으로 색을 내는 게 쉽지 않았다. 붓칠하는 것만큼 원하는 색이 나올 때까지 펜으로 긋고 또 그었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림이 알려지면서 작업량도 늘었다. 2009년 유화로 바꿨더니 반응이 별로였다. 예정된 전시를 미루고 다시 펜화로 돌아왔다. "구멍가게는 펜화와 찰떡궁합"이라고 결론 내렸다.

2015년 한 출판사에서 책을 내고 싶다고 제의해왔다. 정은영 남해의 봄날 대표가 서울 전시회장까지 찾아왔고, 이 작가는 이듬해 봄 통영을 방문했다. 그림에 얽힌 사연을 막상 글로 풀어내는 일은 만만찮았다. 기왕이면 온전히 자신의 이름을 내건 책을 내겠다는 욕심이 났다. 2017년 출간한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은 19쇄까지 찍으며 지역 출판사의 효녀 노릇을 하고 있다. 구멍가게 펜화는 영국 BBC를 비롯해 많은 언론이 주목하며 전 세계 독자들을 사로잡았고, 프랑스·일본·대만에서도 출간됐다.

▲ 4일 창원 주책방에서 <구멍가게…>를 낸 이미경 작가가 북토크를 하고 있다.  /정봉화 기자
▲ 4일 창원 주책방에서 <구멍가게…>를 낸 이미경 작가가 북토크를 하고 있다. /정봉화 기자

지난해 펴낸 두 번째 책에는 2017년부터 3년간 그린 80점이 들어갔다. 두 권을 합치면 300여 점이 된다. 그가 그린 수많은 구멍가게 중 문을 닫은 곳도 많다. 그는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담아 다시 책을 낼 용기를 냈다고 한다. 아직 열려 있는 그림 속 구멍가게 주인들에게 책을 전달하고 싶어서다.

슬레이트 지붕, 평상, 빨간 우체통, 낡은 철문, 큰 나무들. 닮은꼴 다른 느낌의 구멍가게들은 작가의 상상이 더해져 그림 속에서 더욱 아름답게 존재한다. 왜 내 그림을 좋아할까 의아해하는 작가에게 지인은 "그림이 음악처럼 느껴진다"고 답했다. 그는 앞으로 '세계의 구멍가게'를 그릴 계획이다.

이 작가는 "되돌아보면 주부로 10년 동안 10점을 그린 게 가장 잘한 것 같다. 그림에 대한 끈을 놓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그는 "구멍가게들을 찾아다니며 한결같이 자신의 자리를 지켜온 가게 주인들과 이야기하면서 하루하루 잘 버티는 삶, 끈기있게 사는 법을 배웠다"며 "흔히 사람은 안 변한다고 하지만, 내성적이고 우울하던 성격이 긍정적으로 바뀌더라. 사람은 변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독자들에게 "누구나 마음속 구멍가게가 있다. 꿈이 작다고 생각 말고 키워나가길 바란다"고 전했다.

두 번째 책 그림의 시작과 끝은 경남에 있는 구멍가게들이다. 2018년 하동 강변슈퍼와 통영 연화슈퍼는 지금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아직 그대로 남아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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