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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도민춘추]봄이 오는 길목

작성자
박주백
작성일
2010.03.06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1425
내용
[도민춘추]봄이 오는 길목

-경남도민일보-

사람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가란 물음에 예술도 자주 거론된다. 한자문화권 오랜 전통은 '삶의 예술화'를 지향해 왔다. 이는 생존 아닌 생활, 노동과 놀이의 문제와도 통한다. 하고 싶은 일을 기쁘게 할 때는 일과 놀이가 하나이다. 그러나 매일 되풀이되는 직업으로서 일을 즐겁다 말할 수 있는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야말로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된 이들이야말로 행운아라 하겠다. 잘 아는 사실인데 우린 왜 이를 실현하지 못하는가. 용기 탓일까? 교육, 사회제도에 앞서 자신에게도 되물을 일이다. 선택은 인간에게만 허용된 자율의지이기에 우리는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 이는 목표만이 아닌 각자 자신에게 의무 영역은 아닌지.

흔히들 예술은 소수, 특권층의 전유물이라 한다. 첫 번째 이유는 이를 즐길 시간과 재력의 여유가 없어서라 답한다. 나아가 예술은 현실과 거리가 멀고 어렵다고 한다. 이는 어제오늘만의 질문이 아니다. 오늘날 각종 박물관과 미술관 및 전시관과 공연장 등 예술기관은 모두를 위한, 문턱 낮은 공간이어야 한다. 역사의 평가는 엄정한 것이어서 고전과 걸작은 이 검증을 통과한 것들이다. 화석 같은 단순한 존재의 흔적 아닌 여전히 살아 숨 쉬는 생명체이다. 극소수에 드는 향유자들은 때로는 예술 탄생의 배양토나 스폰서 역할을 담당한다. 성리학 중심 유교 국가인 조선시대 절에 봉안된 일급불화들은 왕실의 후원으로 조성됐다. 오늘날은 개인 독지가 외에 국가나, 기업의 문화재단 등이 이 몫을 담당한다.

현실과 거리 멀고 어렵다는 예술

위대한 예술은 많은 사람을 감동시키며 기쁨을 주지만 창작 주체인 예술가는 정작 평탄한 삶보다는 시련과 비운의 주인공들이 적지 않다. 시련과 고통은 위대한 예술 탄생의 배경이 되기도 한다. 생전에 큰 명성으로 부를 누린 예술가보다는 사후 다시 평가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이는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재가 다르지 않다. 영·정조 때 겸재 정선과 단원 김홍도 등 좋은 시절에 대예술가가 탄생했다.

그러나 조광조 개혁에 동참한 기묘 명현으로 지조 있는 문인화가인 양팽손과 고운, 제주 유배지서 남긴 명화 '세한도'의 존재는 호시절이 걸작 탄생의 절대 조건만은 아님을 알려준다. 서리 내리고 향을 뿜는 국화나 매화가 추위를 이기고 피어나듯, 수면 위 연꽃은 아름다우나 그가 뿌리박은 물밑은 그렇지 않음을 환기하게 된다. 우리가 예술을 우러르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몸담은 공간과 시간 즉 삶 그 자체가 아름답다고 고귀하다는 인식, 삶에 활기를 부여하기 때문은 아닌지.

예술기관은 문턱 낮은 공간돼야

과학 발전과는 아랑곳없이 최근 들어 폭설과 지진 등 자연재해의 발발이 잦다. 인류에 있어 시련과 도전이 역사라 하지만 어느 시대나 문제점을 안고 있으며 이를 풀어나감이 존재하는 자 모두에게 나름의 숙제이자, 행위로 일 그 자체가 아닌가 싶다. 길지 않은 설 연휴였으나 보름 이상 지속한 밴쿠버 동계올림픽의 열기로 그러지 않아도 짧은 2월 한 달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잦은 봄비로 대보름 만월은 가까스로 볼 수 있었다.




바야흐로 대지는 나날이 소생과 생명의 빛깔인 초록의 향연, 유채색으로 번져간다. 박물관 뜰 산수유 주위로 노란 안개가 일고, 홍매가 먼저 벙긋 꽃망울을 터트리더니 청매며 백매도 다투어 화판을 내민다. 새들의 울음소리가 나날이 높아가니 정녕 봄은 온 것이다. 대지에 펼치는 소생이란 위대한 예술을 앞에 둔 지금, 뼛속에 얼었던 어둠까지 풀려 눈엔 생기를, 가슴엔 사랑을 불붙기를 비는 박희진 시인의 '새봄의 기도'는 바로 우리들의 절실한 바람 그 자체다.

/이원복(국립광주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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