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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봄, 딱새- 김이삭(아동문학가)
-경남신문-
봄이 왔다. 봄은 어둡고 추운 겨울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 내게로 왔다. 그래서인지 올해의 봄은 더 반갑고 소중한 것 같다. 움츠렸던 내 마음에 새싹이 돋고 봄까치꽃같이 향기로운 꽃이 파앙 팡! 피어날 것 같다.
사월이 되었다. 곧 바다도 봄기운으로 출렁일 것이다. 며칠 전 진해에 사는 큰삼촌에게 전화를 했다.
“야야, 보래이. 딱새가 한 통에 십이만원이나 한데이. 야가 우리 집 밥줄이여, 암 밥줄이고 말고.” 어부인 삼촌의 목소리는 싱싱한 숭어처럼 팔딱인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 통에 만원밖에 하지 않았던 딱새 값이 열 배나 올랐다. 그 이유는 진해 벚꽃 축제의 영향 때문이기도 하지만, 바다에서 딱새를 찾기 힘들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딱새는 봄의 전령사이다. 그는 모래가 많은 혼합 갯벌에 주로 산다. 이것저것 다 잘 먹는 잡식성이다. 단단한 껍질은 성장하면서 탈피를 통해 껍데기를 벗는다. 원래 이름은 갯가재이다. 옅은 갈색이고 등에는 붉은 줄이 뻗어 있다. 머리 위에 크고 작은 두 쌍의 더듬이와 낫 모양의 다리가 한 쌍 있다. 주로 밤에 새우, 갯지렁이 따위를 잡아먹는다. 이들은 서로 신호를 보내기 위해 딱! 딱! 소리를 내는 특성이 있다.
딱새를 본 것은 내 나이 일곱 살 때이다. 할아버지가 거제도 앞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셨다. 할아버지는 봄철 바다에 나가면 항상 딱새를 가득 잡아오셨다. 봄날, 할아버지의 그물에는 도다리와 딱새가 많이 걸렸다. 할아버지는 그물을 한 올 한 올 벗겨 오그리고 있는 딱새를 물통에 던지셨다. 가끔 선창에서 그물을 접는 할아버지를 보면 구릿빛 얼굴에 봄꽃등이 켜지듯 환했다.
딱새는 도다리와 함께 우리 집 생계를 이어주는 보너스 같은 존재였다. 어릴 적 장난감이 흔하지 않았던 시절 신기한 놀잇감이었다. 움츠려 있는 딱새를 만지면 딱! 딱! 소리를 냈다. 나는 그 소리가 너무 신기해 계속 같은 장난을 되풀이하곤 했다.
혼자만의 놀이가 끝나면 가마솥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났다. 딱새가 익어가고 있었다. 마당 가득 딱새 냄새가 진동했다. 그 냄새를 따라 동네 들고양이들이 몰려들기도 했다. 어머니는 다 삶긴 딱새를 소쿠리 가득 퍼서 평상에 놓고 식구를 불렀다. 그런 저녁이면 온 가족이 함께 모여 딱새 먹기 작업에 들어갔다. 날카로운 머리 부분을 아빠가 떼어 주면 나는 속살을 잘 골라 먹었다. 그 맛도 좋지만 머리 부분 뾰족 침같이 솟은 딱새껍질을 손가락에 끼우고 친구들과 한참을 신나는 놀이에 빠지곤 했다.
삼월에서 오월까지가 딱새철이다. 이때 잡힌 딱새가 가장 맛이 좋다. 딱새를 잡기 위해 바다로 나가시던 할아버지 그리고 삼촌은 바다가 낳은 어부셨다.
이천 년 전 갈릴리 해변에도 어부들이 있었다. 그곳 해변을 지나가시던 예수님이 바다에 그물을 던지는 시몬과 안드레를 발견하시고 “나를 따라 오너라.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부르시니 그들이 따라갔고, 조금 더 가시다가 배에서 그물을 깁는 야고보와 요한을 보시고 곧 부르시니 그들도 주님을 따라 갔다.
짠 내음이 진동하는 바닷가, 나는 지금 갈릴리 바닷가에 서 있다. 널찍이 작은 배에서 그물을 깁는 한 무리가 보인다. 그들 속에 먼저 가신 할아버지가 보이고, 딱새를 가득 잡은 큰삼촌도 보인다.
하지만 그는 지쳐 있고, 허무해 보인다. 나는 그에게 숯불을 피워 떡과 생선을 구워준다. 지치고 굶주려 보이는 삼촌이 내게 손을 내민다. 나는 우리 집안에 보내어진 어부이다. 어둠의 바다 속에서 헤매는 가족, 친지를 한 사람 한 사람 거룩한 그물에 담아 성전으로 보낼 일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더 열심히 기도의 그물을 쳐야 하며, 눈물의 밭을 일구어야 한다. 그것이 나의 소명이다.
봄날, 딱! 딱! 딱! 서로에게 신호를 보내는 딱새처럼 나의 부르짖는 기도가 하늘에 상달되어지기를, 그토록 잡히지 않던 고기가 그물 가득 넘치기를 간절히 서원하는 아침이다.
김이삭(아동문학가)
-경남신문-
봄이 왔다. 봄은 어둡고 추운 겨울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 내게로 왔다. 그래서인지 올해의 봄은 더 반갑고 소중한 것 같다. 움츠렸던 내 마음에 새싹이 돋고 봄까치꽃같이 향기로운 꽃이 파앙 팡! 피어날 것 같다.
사월이 되었다. 곧 바다도 봄기운으로 출렁일 것이다. 며칠 전 진해에 사는 큰삼촌에게 전화를 했다.
“야야, 보래이. 딱새가 한 통에 십이만원이나 한데이. 야가 우리 집 밥줄이여, 암 밥줄이고 말고.” 어부인 삼촌의 목소리는 싱싱한 숭어처럼 팔딱인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 통에 만원밖에 하지 않았던 딱새 값이 열 배나 올랐다. 그 이유는 진해 벚꽃 축제의 영향 때문이기도 하지만, 바다에서 딱새를 찾기 힘들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딱새는 봄의 전령사이다. 그는 모래가 많은 혼합 갯벌에 주로 산다. 이것저것 다 잘 먹는 잡식성이다. 단단한 껍질은 성장하면서 탈피를 통해 껍데기를 벗는다. 원래 이름은 갯가재이다. 옅은 갈색이고 등에는 붉은 줄이 뻗어 있다. 머리 위에 크고 작은 두 쌍의 더듬이와 낫 모양의 다리가 한 쌍 있다. 주로 밤에 새우, 갯지렁이 따위를 잡아먹는다. 이들은 서로 신호를 보내기 위해 딱! 딱! 소리를 내는 특성이 있다.
딱새를 본 것은 내 나이 일곱 살 때이다. 할아버지가 거제도 앞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셨다. 할아버지는 봄철 바다에 나가면 항상 딱새를 가득 잡아오셨다. 봄날, 할아버지의 그물에는 도다리와 딱새가 많이 걸렸다. 할아버지는 그물을 한 올 한 올 벗겨 오그리고 있는 딱새를 물통에 던지셨다. 가끔 선창에서 그물을 접는 할아버지를 보면 구릿빛 얼굴에 봄꽃등이 켜지듯 환했다.
딱새는 도다리와 함께 우리 집 생계를 이어주는 보너스 같은 존재였다. 어릴 적 장난감이 흔하지 않았던 시절 신기한 놀잇감이었다. 움츠려 있는 딱새를 만지면 딱! 딱! 소리를 냈다. 나는 그 소리가 너무 신기해 계속 같은 장난을 되풀이하곤 했다.
혼자만의 놀이가 끝나면 가마솥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났다. 딱새가 익어가고 있었다. 마당 가득 딱새 냄새가 진동했다. 그 냄새를 따라 동네 들고양이들이 몰려들기도 했다. 어머니는 다 삶긴 딱새를 소쿠리 가득 퍼서 평상에 놓고 식구를 불렀다. 그런 저녁이면 온 가족이 함께 모여 딱새 먹기 작업에 들어갔다. 날카로운 머리 부분을 아빠가 떼어 주면 나는 속살을 잘 골라 먹었다. 그 맛도 좋지만 머리 부분 뾰족 침같이 솟은 딱새껍질을 손가락에 끼우고 친구들과 한참을 신나는 놀이에 빠지곤 했다.
삼월에서 오월까지가 딱새철이다. 이때 잡힌 딱새가 가장 맛이 좋다. 딱새를 잡기 위해 바다로 나가시던 할아버지 그리고 삼촌은 바다가 낳은 어부셨다.
이천 년 전 갈릴리 해변에도 어부들이 있었다. 그곳 해변을 지나가시던 예수님이 바다에 그물을 던지는 시몬과 안드레를 발견하시고 “나를 따라 오너라.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부르시니 그들이 따라갔고, 조금 더 가시다가 배에서 그물을 깁는 야고보와 요한을 보시고 곧 부르시니 그들도 주님을 따라 갔다.
짠 내음이 진동하는 바닷가, 나는 지금 갈릴리 바닷가에 서 있다. 널찍이 작은 배에서 그물을 깁는 한 무리가 보인다. 그들 속에 먼저 가신 할아버지가 보이고, 딱새를 가득 잡은 큰삼촌도 보인다.
하지만 그는 지쳐 있고, 허무해 보인다. 나는 그에게 숯불을 피워 떡과 생선을 구워준다. 지치고 굶주려 보이는 삼촌이 내게 손을 내민다. 나는 우리 집안에 보내어진 어부이다. 어둠의 바다 속에서 헤매는 가족, 친지를 한 사람 한 사람 거룩한 그물에 담아 성전으로 보낼 일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더 열심히 기도의 그물을 쳐야 하며, 눈물의 밭을 일구어야 한다. 그것이 나의 소명이다.
봄날, 딱! 딱! 딱! 서로에게 신호를 보내는 딱새처럼 나의 부르짖는 기도가 하늘에 상달되어지기를, 그토록 잡히지 않던 고기가 그물 가득 넘치기를 간절히 서원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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