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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타계한 전혁림 화백의 삶과 작품세계
<경남신문>
한국의 색·선·조형미 화폭에 담은 ‘색채의 마술사’
고향 통영 지키며 노년에도 끊임없는 창작활동 후배들에 귀감
90세가 넘도록 붓을 놓지 않았던 한국 최고령 화가인 故 전혁림(94) 화백은 통영이 낳은 위대한 작가다. 그는 식사시간, 수면시간 이외에는 작업으로 일관해 왔다.
전 화백은 서양화가이지만 우리 문화와 삶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화가가 되기 위해 한국의 마음, 문화, 풍습, 의식, 삶을 그리고자 노력했다. 고향 통영을 떠나지 않고 민족의 영혼과 기질과 특성을 파악하고 표현하는 데 있는 힘을 다 쏟았다. 한국의 색깔, 한국의 선, 한국의 조형미를 얻어내는 게 전 화백의 평생 작업의 목표였다.
도내 출신의 많은 거장들이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반해 전 화백은 고향 통영에서 통영의 바다와 항구, 산하를 캔버스에 옮기는데 소홀하지 않아 후배 화가들이 늘 존경하는 ‘색채의 마술사’였다.
전 화백을 위대한 작가라고 꼽는 이유 중의 또 하나는 노년에 더 광채를 발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대다수 작가들이 조로현상을 보이는 데 반해 전 화백은 70세 전후에 비로소 빛을 발하면서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전개했다.
노년에 그가 그린 작품을 본 미술평론가들은 그가 마치 청년의 기백과 열정으로 불을 뿜고 있는 듯했다고 기억할 정도이다. 전 화백의 별칭이 ‘아흔의 청춘’인 것은 노년의 빛나는 열정이 만들어낸 것이다.
전 화백의 추상화 속에는 전통 오방색을 위주로 하는 단청, 민화, 장구, 색동, 불상, 정물, 화조, 자수 등이 들어 있지만, 이를 한데 뭉쳐서 가장 한국적인 선과 색채를 빚어냈다. 가장 전통적인 소재로써 가장 현대적인 조형성을 창조해 낸 것이다. 오랜 탐구와 명상으로 한국미술과 역사와 전통을 통찰하면서 얻은 깨달음이며, 누구보다도 한국의 색과 선과 형태에 대해 오래 연구하면서 얻은 조형감각의 결과물이었다.
그래서 흥과 신바람이 흘러넘치는 전 화백의 한국적인 색채미학은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움과 큰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마산 동서화랑 송인식 관장은 “통영을 가장 사랑한 전 화백이 고향 품으로 돌아갔으니 그가 늘 그려왔던 통영항의 코발트 블루 바다 빛깔이 앞으로 더욱 선명한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며 전 화백을 떠나보내는 애틋한 마음을 전했다.
■ 고 전혁림 화백 걸어온 길
△1916. 1. 21 충무 출생
△1933 통영 수산전문학교 졸업
△1938 부산 미술전에 <신화적 해변> <누드> <월광> 출품
△1949 제1회 국전 입선
△1945 통영문화협회 창립동인 (김상옥, 김춘수, 유치환, 윤이상 등)
△1952 부산밀다원 제1회 개인전, 통영 호심다방에서 4인전 개최
△1969 서울국립공보관에서 제1회 회화, 도예개인전
△1980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기획한 <80 현대작가초대전> 출품
△1984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
△경남미술대전 심사위원
△충무시 문화상 수상
△1991 국립현대미술관 <90 신소장품전> 출품
△대한민국 문화훈장 수상
△2000 일맥 문화상 수상(부산 일맥문화단)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 2002:전혁림전> 개최
△2004 전혁림미수기념전(전혁림 미술관)
△2005 전혁림 신작전 ‘90, 아직은 젊다’(이영미술관)
△2010.4 ‘아버지와 아들 동행 53년’(서울 인사아트센터)
25일 타계한 전혁림 화백의 삶과 작품세계
<경남신문>
한국의 색·선·조형미 화폭에 담은 ‘색채의 마술사’
고향 통영 지키며 노년에도 끊임없는 창작활동 후배들에 귀감
90세가 넘도록 붓을 놓지 않았던 한국 최고령 화가인 故 전혁림(94) 화백은 통영이 낳은 위대한 작가다. 그는 식사시간, 수면시간 이외에는 작업으로 일관해 왔다.
전 화백은 서양화가이지만 우리 문화와 삶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화가가 되기 위해 한국의 마음, 문화, 풍습, 의식, 삶을 그리고자 노력했다. 고향 통영을 떠나지 않고 민족의 영혼과 기질과 특성을 파악하고 표현하는 데 있는 힘을 다 쏟았다. 한국의 색깔, 한국의 선, 한국의 조형미를 얻어내는 게 전 화백의 평생 작업의 목표였다.
도내 출신의 많은 거장들이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반해 전 화백은 고향 통영에서 통영의 바다와 항구, 산하를 캔버스에 옮기는데 소홀하지 않아 후배 화가들이 늘 존경하는 ‘색채의 마술사’였다.
전 화백을 위대한 작가라고 꼽는 이유 중의 또 하나는 노년에 더 광채를 발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대다수 작가들이 조로현상을 보이는 데 반해 전 화백은 70세 전후에 비로소 빛을 발하면서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전개했다.
노년에 그가 그린 작품을 본 미술평론가들은 그가 마치 청년의 기백과 열정으로 불을 뿜고 있는 듯했다고 기억할 정도이다. 전 화백의 별칭이 ‘아흔의 청춘’인 것은 노년의 빛나는 열정이 만들어낸 것이다.
전 화백의 추상화 속에는 전통 오방색을 위주로 하는 단청, 민화, 장구, 색동, 불상, 정물, 화조, 자수 등이 들어 있지만, 이를 한데 뭉쳐서 가장 한국적인 선과 색채를 빚어냈다. 가장 전통적인 소재로써 가장 현대적인 조형성을 창조해 낸 것이다. 오랜 탐구와 명상으로 한국미술과 역사와 전통을 통찰하면서 얻은 깨달음이며, 누구보다도 한국의 색과 선과 형태에 대해 오래 연구하면서 얻은 조형감각의 결과물이었다.
그래서 흥과 신바람이 흘러넘치는 전 화백의 한국적인 색채미학은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움과 큰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마산 동서화랑 송인식 관장은 “통영을 가장 사랑한 전 화백이 고향 품으로 돌아갔으니 그가 늘 그려왔던 통영항의 코발트 블루 바다 빛깔이 앞으로 더욱 선명한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며 전 화백을 떠나보내는 애틋한 마음을 전했다.
■ 고 전혁림 화백 걸어온 길
△1916. 1. 21 충무 출생
△1933 통영 수산전문학교 졸업
△1938 부산 미술전에 <신화적 해변> <누드> <월광> 출품
△1949 제1회 국전 입선
△1945 통영문화협회 창립동인 (김상옥, 김춘수, 유치환, 윤이상 등)
△1952 부산밀다원 제1회 개인전, 통영 호심다방에서 4인전 개최
△1969 서울국립공보관에서 제1회 회화, 도예개인전
△1980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기획한 <80 현대작가초대전> 출품
△1984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
△경남미술대전 심사위원
△충무시 문화상 수상
△1991 국립현대미술관 <90 신소장품전> 출품
△대한민국 문화훈장 수상
△2000 일맥 문화상 수상(부산 일맥문화단)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 2002:전혁림전> 개최
△2004 전혁림미수기념전(전혁림 미술관)
△2005 전혁림 신작전 ‘90, 아직은 젊다’(이영미술관)
△2010.4 ‘아버지와 아들 동행 53년’(서울 인사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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