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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대마도의 날과 이종무 장군- 이처기(광복회 회원)

작성자
김철수
작성일
2010.06.22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1563
내용
대마도의 날과 이종무 장군- 이처기(광복회 회원)

-경남신문-

일본은 과거 침탈을 반복하고 이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왜곡된 역사를 교과서에 싣는가 하면 엄연한 대한민국 영토인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일 수교가 이루어진 지 45년이 되어 한일 간 문화 교류와 민간외교가 잘 되는 듯하였지만 일본 시마네현에서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고 독도의 날을 제정하는가 하면 일본 교과서에도 왜곡된 사실을 수록하고 있음은 일본의 침략 근성이 그대로 자리하고 있음을 입증하게 된다.

돌아오는 6월 19일은 마산시의회가 대마도의 날을 선포하여 정한 지 5년이 되는 날이다.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 우리의 땅인 대마도를 회복하기 위해 대마도 고토회복 운동을 벌인다는 대마도의 날 조례안을 제정하고 대마도의 날을 선포했다.

대마도가 우리 땅이라는 역사를 살펴본다.

조선 세종은 1419년(세종1년) 6월에 이종무 장군을 삼군도체찰사로, 우박 이숙묘 황상을 중군절제사, 유습을 좌군도절제사, 박초 박실을 좌군절제사, 이지실을 우군도절제사, 김을화 이순몽을 우군절제사로 삼아 삼남의 병선 227척, 병사 1만7000을 주고 마산포를 출발하게 하여 대마도 정벌에 나섰다. 적선 129척을 빼앗고 적의 소굴 2000군데를 불태우고 적의 우두머리 200명을 목 베고 대마도를 정벌했다.

이에 대마도 도주 소 사다모리가 이듬해 윤 1월 조선의 번영을 자처하며 속주가 될 것을 요청했다. 이에 조정은 대마도를 경상도에 확실하게 예속시키고 도주에게 인신을 하사했다. 대마도 정벌 후 도주에게 보낸 교유문에서 대마도는 경상도의 계림에 예속되었던 바 본시 우리나라 땅이라는 것이 문적에 실려 있어 확실하게 상고할 수 있다.

다만 그 땅이 매우 작고 바다 가운데 있어 왕래함이 막혀 백성들이 살지 않았을 뿐이다. 이 같은 사실은 조선실록에 실려 있으며 성조 17년(1486) 왕명으로 편찬된 지리서인 ‘동국여지승람’도 대마도가 우리의 고토였다면서 동래부의 부속 도서로 취급했다.

동국여지승람의 이 내용은 조선시대 대마도 인식의 기본이라 해도 좋을 만큼 이후 지리적 및 외교 자료집에 그대로 계승되었다.

영조 36년(1765)에 제작된 여지도서와 순조 22년(1822)에 편찬된 경상도 읍지 등에는 대마도가 동래부 도서조에 수록되어 있다. 이러한 사실은 대마도가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나 우리의 땅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조선 세종조에 이종무 장군이 대마도 정벌을 위하여 마산포를 출발한 날이 6월 19일이다. 마산시는 ‘마산시 대마도의 날 조례’ 제2조에 대마도의 날을 마산포를 출발한 6월 19일로 정한다고 하고 있다. ‘대마도의 날 기념사업추진회’가 대마도 영토문제 강연회 등 관련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지역의 인물 대마도 정벌의 총사령관인 이종무 장군을 기리는 사업도(동상을 세우는 일이나 업적을 재조명하여 우리 지역의 학생 교과과정에 수록하는 일) 병행하여야 할것이다.

통합 창원시에 창원 마산 진해가 명칭을 새로 바꾼 구청이 들어선다지만 지역의 역사적 인물을 재조명하고 기리는 일은 계속 추진해 가야 할 것이다.

다가오는 6월 19일 마산시가 선포한 대마도의 날을 우리 시뿐 아니라 전국에서 같이 기리는 날이 되기를 기대한다.

이처기(광복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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