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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야만의 리더십을 경계하며
<경남도민일보>
"악법은 법이 아니고, 나의 사전엔 불가능은 있다. 생즉생 사즉사(生卽生 死卽死)이다." 제대로 익지 않은 열매 같은 자존의 가치관으로 이 우울과 패덕이 만연하는 시대를 힘겹게 살아가지만 요즘 같은 혼돈의 계절에는 옛사람들의 지혜를 빌려 세상을 본다.
교사가 아이들에게 좋아하는 사자성어 시험을 내자 '동방신기', '무한도전' 등을 적었다고 한다. 올해 취업준비생들과 구직자들은 고진감래(苦盡甘來)란 사자성어를 선호했다. 고진감래를 본래 뜻에 취업과 관련된 의미로 풀어보면 '백수생활을 마치고 멋진 직장인으로의 새로운 출발'을 뜻한단다. 한 취업 포털사이트 설문조사에서는 구직자들이 현재 자신의 상황을 고립무원(孤立無援)이라는 사자성어를 가장 많이 선택했다.
이 시대 지성의 산실, 대학의 교수들이 몇 해 전에 '올해의 사자성어'로 당동벌이(黨同伐異)를 선정했다는 신문 기사가 기억난다. '옳고 그름을 떠나 다른 집단을 무조건 배격한다'는 뜻이란다. 몇 년이 흘렀는데도 요즘 대한민국 사회를 보면 변한 게 없다. 보수와 진보의 대립, 집권당 내부 분열로 '국민을 위한 감동'은 없었던 지난 6월 지방선거 전후 가슴에 다가오던 단어다.
유행하는 사자성어 속에서도 우리나라 정치, 사회, 교육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지도자들은 시대상황을 통찰하고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 변혁의 시대에 어울리는 리더의 길이 보인다. 그런데 역사는 수레바퀴처럼 돌고 돌지만, 문명의 발달로 우주로 우주왕복선이 날아다니는 이런 시대에 말 달리며 칼싸움하던 시절의 케케묵은 리더십이 횡행하고 있다.
현대사회 리더십은 개인 카리스마 아닌 포용·인화로 타인 변화시키는 함께하는 힘
월드컵 16강 진출의 고비에서 축구대표팀 허정무 감독의 '파부침주(破釜沈舟)'란 사자성어가 화제가 되었다. 남아공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전 참패 이후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을 위해서 나이지리아전에 모든 것을 걸어야 했다.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파부침주 각오로 나이지리아와 일전에 나서겠다"라며 감독은 '밥 지을 솥을 깨트리고 돌아갈 때 타고 갈 배를 가라앉힌다'는 뜻으로 살아 돌아오기를 기약하지 않고 결사적으로 싸우겠다는 각오였다. 온 국민의 부담스러운 염원 앞에 결전의 의지를 다진 지도자의 고뇌를 이해 못 함은 아니다. 그러나 무섭다. 축구가 뭐길래? 온 국민이 함께 승패를 떠나 즐기면 되는 스포츠 경기인데 생때같은 태극전사들의 목숨을 걸고 배수의 진을 친다는 말인가? 임진왜란 때 중과부적의 왜적에게 무모한 배수지진(背水之陣)으로 모든 군병이 수장을 당한 당랑거철이 생각난다. 초패왕 항우가 파부침주로 연전연승했지만, 결말은 사면초가의 강가에서 사랑하는 여인과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역사가 떠오른다.
극단의 선택은 극단의 결과를 양산할 뿐이다. 요즘이 나라 간의 전쟁이나 당파 간의 권력투쟁으로 삼족이나 구족까지 멸했던 야만과 폭정의 시대이지는 않지 않은가. 복잡 다양한 현대사회는 한 사람의 카리스마 리더십보다 서로 섬기는 소통과 신뢰의 창의적인 '팔로어십'을 강조한다. 자신의 삶은 물론 다른 사람들의 삶까지 변화시키는 리더의 진정한 힘은 우뚝 선 '나 홀로의 힘'이 아니라, 포용과 인화로 그들까지 우뚝 서게 하는 '함께하는 힘'이다.
작년, 교수신문이 발표한 '희망의 사자성어'로 논어에 나오는 '남과 사이좋게 지내되 무턱대고 어울리지는 않는다'라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을 꼽았다. 이 말을 추천한 모 대학 한문학 교수는 "군자들의 사귐은 서로 진심으로 어울려 조화롭지만 그렇다고 의리를 굽혀서까지 모든 견해에 '같게 되기'를 구하지는 않는 데 반해, 소인배들의 사귐은 이해가 같다면 의리를 굽혀서까지 '같게 되기'를 구하지만 서로 진심으로 어울려 조화롭지는 못하다고 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지루한 우기(雨期)에서 잠깐의 푸른 하늘빛에 이끌려 나선 마실 길. 천년의 파도에 씻겨 둥글둥글해진 거제도 학동 몽돌해수욕장을 걸으며 떠올린 '화이부동'이 발에 자꾸 밟힌다.
/김형석(거제문화예술회관 관장)
[아침을 열며]야만의 리더십을 경계하며
http://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322223 - 경남도민일보
<경남도민일보>
"악법은 법이 아니고, 나의 사전엔 불가능은 있다. 생즉생 사즉사(生卽生 死卽死)이다." 제대로 익지 않은 열매 같은 자존의 가치관으로 이 우울과 패덕이 만연하는 시대를 힘겹게 살아가지만 요즘 같은 혼돈의 계절에는 옛사람들의 지혜를 빌려 세상을 본다.
교사가 아이들에게 좋아하는 사자성어 시험을 내자 '동방신기', '무한도전' 등을 적었다고 한다. 올해 취업준비생들과 구직자들은 고진감래(苦盡甘來)란 사자성어를 선호했다. 고진감래를 본래 뜻에 취업과 관련된 의미로 풀어보면 '백수생활을 마치고 멋진 직장인으로의 새로운 출발'을 뜻한단다. 한 취업 포털사이트 설문조사에서는 구직자들이 현재 자신의 상황을 고립무원(孤立無援)이라는 사자성어를 가장 많이 선택했다.
이 시대 지성의 산실, 대학의 교수들이 몇 해 전에 '올해의 사자성어'로 당동벌이(黨同伐異)를 선정했다는 신문 기사가 기억난다. '옳고 그름을 떠나 다른 집단을 무조건 배격한다'는 뜻이란다. 몇 년이 흘렀는데도 요즘 대한민국 사회를 보면 변한 게 없다. 보수와 진보의 대립, 집권당 내부 분열로 '국민을 위한 감동'은 없었던 지난 6월 지방선거 전후 가슴에 다가오던 단어다.
유행하는 사자성어 속에서도 우리나라 정치, 사회, 교육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지도자들은 시대상황을 통찰하고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 변혁의 시대에 어울리는 리더의 길이 보인다. 그런데 역사는 수레바퀴처럼 돌고 돌지만, 문명의 발달로 우주로 우주왕복선이 날아다니는 이런 시대에 말 달리며 칼싸움하던 시절의 케케묵은 리더십이 횡행하고 있다.
현대사회 리더십은 개인 카리스마 아닌 포용·인화로 타인 변화시키는 함께하는 힘
월드컵 16강 진출의 고비에서 축구대표팀 허정무 감독의 '파부침주(破釜沈舟)'란 사자성어가 화제가 되었다. 남아공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전 참패 이후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을 위해서 나이지리아전에 모든 것을 걸어야 했다.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파부침주 각오로 나이지리아와 일전에 나서겠다"라며 감독은 '밥 지을 솥을 깨트리고 돌아갈 때 타고 갈 배를 가라앉힌다'는 뜻으로 살아 돌아오기를 기약하지 않고 결사적으로 싸우겠다는 각오였다. 온 국민의 부담스러운 염원 앞에 결전의 의지를 다진 지도자의 고뇌를 이해 못 함은 아니다. 그러나 무섭다. 축구가 뭐길래? 온 국민이 함께 승패를 떠나 즐기면 되는 스포츠 경기인데 생때같은 태극전사들의 목숨을 걸고 배수의 진을 친다는 말인가? 임진왜란 때 중과부적의 왜적에게 무모한 배수지진(背水之陣)으로 모든 군병이 수장을 당한 당랑거철이 생각난다. 초패왕 항우가 파부침주로 연전연승했지만, 결말은 사면초가의 강가에서 사랑하는 여인과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역사가 떠오른다.
극단의 선택은 극단의 결과를 양산할 뿐이다. 요즘이 나라 간의 전쟁이나 당파 간의 권력투쟁으로 삼족이나 구족까지 멸했던 야만과 폭정의 시대이지는 않지 않은가. 복잡 다양한 현대사회는 한 사람의 카리스마 리더십보다 서로 섬기는 소통과 신뢰의 창의적인 '팔로어십'을 강조한다. 자신의 삶은 물론 다른 사람들의 삶까지 변화시키는 리더의 진정한 힘은 우뚝 선 '나 홀로의 힘'이 아니라, 포용과 인화로 그들까지 우뚝 서게 하는 '함께하는 힘'이다.
작년, 교수신문이 발표한 '희망의 사자성어'로 논어에 나오는 '남과 사이좋게 지내되 무턱대고 어울리지는 않는다'라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을 꼽았다. 이 말을 추천한 모 대학 한문학 교수는 "군자들의 사귐은 서로 진심으로 어울려 조화롭지만 그렇다고 의리를 굽혀서까지 모든 견해에 '같게 되기'를 구하지는 않는 데 반해, 소인배들의 사귐은 이해가 같다면 의리를 굽혀서까지 '같게 되기'를 구하지만 서로 진심으로 어울려 조화롭지는 못하다고 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지루한 우기(雨期)에서 잠깐의 푸른 하늘빛에 이끌려 나선 마실 길. 천년의 파도에 씻겨 둥글둥글해진 거제도 학동 몽돌해수욕장을 걸으며 떠올린 '화이부동'이 발에 자꾸 밟힌다.
/김형석(거제문화예술회관 관장)
[아침을 열며]야만의 리더십을 경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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