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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산과 물이 만나 빚어낸 단양팔경(丹陽八景)
<문화유산신문>
백두대간에서 뻗어 나온 소백산맥이 큰 줄기를 이루고, 오대산에서 발원한 평창강과 소백산에서 발원한 죽령천, 단양천, 금곡천 등이 합쳐져 남한강이 물길을 터놓은 그 곳에산자수명의 고장으로 널리 이름 알려진‘단양군’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옛 사람들은 산과 물의 기운이 만나 빚어낸 단양의 절경 중에서도 빼어난 경승지만을 골라‘단양팔경(丹陽八景)’이라 이름 짓고, 그 안에 깃든 경치와 풍류를 여유롭게 즐기곤 하였습니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남은 것은 변함없는 풍광과 먼저 다녀간 이들의 애정 어린 감회.이제 그 위에 우리들의 여정을 곱게 덧칠하고자 합니다.
■ 제 1경 도담삼봉 島潭三峰
단양시내에서 남한강 줄기를 따라 3Km쯤 달리면 만날 수 있는 도담삼봉(명승 제 44호)은 옥색비단처럼 펼쳐진 물결위에 멋들어진 정자 하나를 비껴 쓴 큰 봉우리를 중심으로 양쪽에 작은 봉우리 두개가 봉긋 솟아오른 모습이다. 아니, 솟아올랐다기보다는 누군가 조심스레 띄워놓고 간 느낌이 더 어울릴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원래 강원도 정선군의 삼봉산이 홍수 때 떠내려 와 지금의 도담삼봉을 이룬 것이라는 전설이 서려있기 때문이다. 그때 한 소년이 기지를 발휘하여 오히려 세 봉우리 때문에 단양이 피해를 보고 있으니 도로 가져가라고 하자 정선군은 더 이상 그 어떤 요구도 하지 못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그 당돌한 소년이 바로 조선개국 공신 중 하나였던 ‘정도전’ 이다. 훗날 그는 자신의 호를 삼봉이라고 지을 정도로 도담삼봉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과시하였다. 도담삼봉을 아꼈던 또 한명의 위인으로는 퇴계 이황 선생도 빠질 수 없는데 그는 시구를 통해 노을 지는 도담삼봉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노래하기도 하였다. 보이는 풍경은 같아도 저마다 기억하고 있는 사연은 다른 것인가 보다. 풍경이 사연을 만들고, 그 사연이 다시 풍경을 새롭게 새기는 것이기에 정도전의 도담삼봉이 이황 선생의 그것과 다르고, 내 눈앞의 보이는 풍경도 그들이 보았던 풍경과 사뭇 다름이 있는 것이리라. 나만의 도담삼봉을 가슴에 그려놓고 다음 발길을 돌린다.
■ 제 2경 석문 石門
도담삼봉에서 상류 쪽으로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계단이 이어진 언덕에 이르게 된다. 가쁜 숨을 참아내며 오르막길을 따라 300미터쯤 오르면 구름다리 모양의 돌기둥이 눈앞에 펼쳐진다. 마치 어딘가로 통하는 커다란 문처럼 보이는 이 조형물이 바로 단양팔경의 제 2경 석문(명승 제 45호)이다. 조형물이라고는 하지만 사람의 솜씨가 아닌 자연의 손길이 닿아 빚어진 풍경. 석회동굴이 붕괴되면서 동굴 천장의 일부가 남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석문을 감싸고 있는 울창한 수풀은 계절에 따라 색색의 빛깔을 발휘하여 어느때보면 정말 무지개다리를 만난 듯 설레는 풍광을 연출하기도 한다. 석문의 사이로 보이는 남한강의 경치도 제법 운치 있어 마치 액자에 걸린 그림이 살아 숨 쉬는 긋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때 누군가가 석문 안에 살았다는 마고할미의 전설을 구구절절 풀어 놓는다. 옛 이야기가 귓가에 가까워질수록 석문 너머 풍경이 꿈인듯 더욱 아스라하다.
<이연하 기자>
<문화유산신문>
백두대간에서 뻗어 나온 소백산맥이 큰 줄기를 이루고, 오대산에서 발원한 평창강과 소백산에서 발원한 죽령천, 단양천, 금곡천 등이 합쳐져 남한강이 물길을 터놓은 그 곳에산자수명의 고장으로 널리 이름 알려진‘단양군’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옛 사람들은 산과 물의 기운이 만나 빚어낸 단양의 절경 중에서도 빼어난 경승지만을 골라‘단양팔경(丹陽八景)’이라 이름 짓고, 그 안에 깃든 경치와 풍류를 여유롭게 즐기곤 하였습니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남은 것은 변함없는 풍광과 먼저 다녀간 이들의 애정 어린 감회.이제 그 위에 우리들의 여정을 곱게 덧칠하고자 합니다.
■ 제 1경 도담삼봉 島潭三峰
단양시내에서 남한강 줄기를 따라 3Km쯤 달리면 만날 수 있는 도담삼봉(명승 제 44호)은 옥색비단처럼 펼쳐진 물결위에 멋들어진 정자 하나를 비껴 쓴 큰 봉우리를 중심으로 양쪽에 작은 봉우리 두개가 봉긋 솟아오른 모습이다. 아니, 솟아올랐다기보다는 누군가 조심스레 띄워놓고 간 느낌이 더 어울릴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원래 강원도 정선군의 삼봉산이 홍수 때 떠내려 와 지금의 도담삼봉을 이룬 것이라는 전설이 서려있기 때문이다. 그때 한 소년이 기지를 발휘하여 오히려 세 봉우리 때문에 단양이 피해를 보고 있으니 도로 가져가라고 하자 정선군은 더 이상 그 어떤 요구도 하지 못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그 당돌한 소년이 바로 조선개국 공신 중 하나였던 ‘정도전’ 이다. 훗날 그는 자신의 호를 삼봉이라고 지을 정도로 도담삼봉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과시하였다. 도담삼봉을 아꼈던 또 한명의 위인으로는 퇴계 이황 선생도 빠질 수 없는데 그는 시구를 통해 노을 지는 도담삼봉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노래하기도 하였다. 보이는 풍경은 같아도 저마다 기억하고 있는 사연은 다른 것인가 보다. 풍경이 사연을 만들고, 그 사연이 다시 풍경을 새롭게 새기는 것이기에 정도전의 도담삼봉이 이황 선생의 그것과 다르고, 내 눈앞의 보이는 풍경도 그들이 보았던 풍경과 사뭇 다름이 있는 것이리라. 나만의 도담삼봉을 가슴에 그려놓고 다음 발길을 돌린다.
■ 제 2경 석문 石門
도담삼봉에서 상류 쪽으로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계단이 이어진 언덕에 이르게 된다. 가쁜 숨을 참아내며 오르막길을 따라 300미터쯤 오르면 구름다리 모양의 돌기둥이 눈앞에 펼쳐진다. 마치 어딘가로 통하는 커다란 문처럼 보이는 이 조형물이 바로 단양팔경의 제 2경 석문(명승 제 45호)이다. 조형물이라고는 하지만 사람의 솜씨가 아닌 자연의 손길이 닿아 빚어진 풍경. 석회동굴이 붕괴되면서 동굴 천장의 일부가 남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석문을 감싸고 있는 울창한 수풀은 계절에 따라 색색의 빛깔을 발휘하여 어느때보면 정말 무지개다리를 만난 듯 설레는 풍광을 연출하기도 한다. 석문의 사이로 보이는 남한강의 경치도 제법 운치 있어 마치 액자에 걸린 그림이 살아 숨 쉬는 긋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때 누군가가 석문 안에 살았다는 마고할미의 전설을 구구절절 풀어 놓는다. 옛 이야기가 귓가에 가까워질수록 석문 너머 풍경이 꿈인듯 더욱 아스라하다.
<이연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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