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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사회로 이르는 사회적 장치- 박영희(창원전문대학 대외부총장)
<경남신문>
요즘에 와서 ‘공정(公正)’이 화두로 회자되고 있는 현상으로 미루어 봐서 우리 사회를 ‘불공정(不公正)사회’라고 가정하면 지나친 역설적인 판단의 비약일까? 아무튼 공정하지 않은 것들이 이 사회에 비일비재함을 반증하는 것쯤으로 이해하는 데는 무리가 없을 듯하다.
‘공정’의 사전적 의미는 ‘공명하고 올바른’이다. 영어로는 fairness 혹은 impartiality, 좀 더 나아가 justice의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는 ‘공정’은 불편부당(不偏不黨) 즉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는 것’을 말한다. 좀 더 의미를 확장하면 ‘자신의 처지를 미루어 남의 처지를 헤아린다’는 ‘추기급인(推己及人)’의 의미와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도 시키지 않는다’는 ‘기소불욕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의 의미를 담고 있는 ‘대학’의 마지막 장에 나오는 ‘혈구지도(矩之道)’와 같은 뜻으로 해석하여도 좋을 듯하다.
아무튼 이런 의미들을 종합해 보면 ‘공정’의 개념은 ‘정의(justice)’나 ‘의(righteousness)’의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사회적 합의에 의해 정하여진 일종의 기준이나 도덕률 같은 사회적 가치기준이 아닐까 한다. ‘공정’의 개념을 이와 같은 의미로 본다면, 지금에 와서 새삼 ‘공정’을 꺼내들고 새로운 사회운동이나 이념인 양 떠들어댈 것도 없다. 인류가 사회를 형성한 이래로 이미 오래 전부터 사회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장치를 만들어 왔다. 이는 ‘게임의룰’과도 같은 ‘공정한 사회’를 위한 장치가 없으면 사회가 붕괴되는 결과에 이르기 때문에서이다.
‘불공정’이 사회문제로 떠오른 데는 ‘게임의 룰’을 ‘강한 자’와 ‘가진 자’가 지키지 않은 사례에서 촉발되었지만, 사회문제로서의 ‘불공정’의 근원적인 처방을 내는 것이 선결과제이다.
‘불공정’이 발생하게 된 이유로는 1)이미 만들어진 ‘공정’을 위한 장치를 지키지 않거나 무시한 결과이거나 2)이들 장치와 제도가 만들어질 당시부터 불균형이거나 편파적이어서 공정한 ‘게임의 룰’로서 정당성을 갖지 못하거나 3)‘게임의 룰’이 시대 상황과 기술 발전에 맞지 않는 까닭이거나 4)‘게임의 룰’이 정교하지 못하여 ‘적용하는 자’나 ‘적용대상자’ 간의 자의적 해석, 특히 공무원의 재량행위의 범위가 넓어 생겨난 결과로 나타난 것이 아닌가 한다.
우리는 급속하게 변화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에서 말하는 ‘정상과학’의 위기의 시대에 살고 있다. 한 패러다임에서 다른 패러다임으로 전환되는 속도가 빠를 뿐만 아니라 여러 패러다임이 공존하는 까닭에 사회 구성원 간의 삶과 가치의 기준이 유별나게 다른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앞으로 변화의 속도는 더해 갈 것이며, 실존하는 현실 세계뿐만 아니라 정보통신기술과 인터넷의 발달로 생겨난 사이버 세상에서도 살아가야할 것을 생각하면, 더더욱 공정한 ‘게임의 룰’이 필요한 세상을 살고 있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아는 자’와 ‘모르는 자’, ‘약자’와 ‘강자’, 그리고 세대계층 간의 간극이 점차 넓혀져 가고 있는 시대임을 인식하면, 공정한 사회를 위한 새로운 장치가 필요한 것은 필연적 현상이다.
불공정에 이르게 하는 ‘말뚝’과 ‘전봇대’는 뽑아내고 새로운 사회 환경에 적합한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강자’와 ‘약자’, ‘가진 자’와 ‘못가진 자’가 수긍하는 균형 있는, 양쪽 다 손해 보지 않는 기준과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 ‘강자’와 ‘가진 자’의 독식으로 끝나는 잔치와 사회는 실패하기 마련이다.
지극히 옳다고 여겨지는 당연한 것이 이 사회에 보장되어야 한다. 법률에 의한 행정행위, 절제된 재량권 사용, 여기에다 시대 사회 환경에 맞는 정교한 ‘게임의 룰’ 즉 선제적인 입법과 제도의 마련이 곧 ‘공정사회의 길’로 이르게 하는 장치가 아닌가 한다.
박영희(창원전문대학 대외부총장)
<경남신문>
요즘에 와서 ‘공정(公正)’이 화두로 회자되고 있는 현상으로 미루어 봐서 우리 사회를 ‘불공정(不公正)사회’라고 가정하면 지나친 역설적인 판단의 비약일까? 아무튼 공정하지 않은 것들이 이 사회에 비일비재함을 반증하는 것쯤으로 이해하는 데는 무리가 없을 듯하다.
‘공정’의 사전적 의미는 ‘공명하고 올바른’이다. 영어로는 fairness 혹은 impartiality, 좀 더 나아가 justice의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는 ‘공정’은 불편부당(不偏不黨) 즉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는 것’을 말한다. 좀 더 의미를 확장하면 ‘자신의 처지를 미루어 남의 처지를 헤아린다’는 ‘추기급인(推己及人)’의 의미와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도 시키지 않는다’는 ‘기소불욕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의 의미를 담고 있는 ‘대학’의 마지막 장에 나오는 ‘혈구지도(矩之道)’와 같은 뜻으로 해석하여도 좋을 듯하다.
아무튼 이런 의미들을 종합해 보면 ‘공정’의 개념은 ‘정의(justice)’나 ‘의(righteousness)’의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사회적 합의에 의해 정하여진 일종의 기준이나 도덕률 같은 사회적 가치기준이 아닐까 한다. ‘공정’의 개념을 이와 같은 의미로 본다면, 지금에 와서 새삼 ‘공정’을 꺼내들고 새로운 사회운동이나 이념인 양 떠들어댈 것도 없다. 인류가 사회를 형성한 이래로 이미 오래 전부터 사회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장치를 만들어 왔다. 이는 ‘게임의룰’과도 같은 ‘공정한 사회’를 위한 장치가 없으면 사회가 붕괴되는 결과에 이르기 때문에서이다.
‘불공정’이 사회문제로 떠오른 데는 ‘게임의 룰’을 ‘강한 자’와 ‘가진 자’가 지키지 않은 사례에서 촉발되었지만, 사회문제로서의 ‘불공정’의 근원적인 처방을 내는 것이 선결과제이다.
‘불공정’이 발생하게 된 이유로는 1)이미 만들어진 ‘공정’을 위한 장치를 지키지 않거나 무시한 결과이거나 2)이들 장치와 제도가 만들어질 당시부터 불균형이거나 편파적이어서 공정한 ‘게임의 룰’로서 정당성을 갖지 못하거나 3)‘게임의 룰’이 시대 상황과 기술 발전에 맞지 않는 까닭이거나 4)‘게임의 룰’이 정교하지 못하여 ‘적용하는 자’나 ‘적용대상자’ 간의 자의적 해석, 특히 공무원의 재량행위의 범위가 넓어 생겨난 결과로 나타난 것이 아닌가 한다.
우리는 급속하게 변화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에서 말하는 ‘정상과학’의 위기의 시대에 살고 있다. 한 패러다임에서 다른 패러다임으로 전환되는 속도가 빠를 뿐만 아니라 여러 패러다임이 공존하는 까닭에 사회 구성원 간의 삶과 가치의 기준이 유별나게 다른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앞으로 변화의 속도는 더해 갈 것이며, 실존하는 현실 세계뿐만 아니라 정보통신기술과 인터넷의 발달로 생겨난 사이버 세상에서도 살아가야할 것을 생각하면, 더더욱 공정한 ‘게임의 룰’이 필요한 세상을 살고 있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아는 자’와 ‘모르는 자’, ‘약자’와 ‘강자’, 그리고 세대계층 간의 간극이 점차 넓혀져 가고 있는 시대임을 인식하면, 공정한 사회를 위한 새로운 장치가 필요한 것은 필연적 현상이다.
불공정에 이르게 하는 ‘말뚝’과 ‘전봇대’는 뽑아내고 새로운 사회 환경에 적합한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강자’와 ‘약자’, ‘가진 자’와 ‘못가진 자’가 수긍하는 균형 있는, 양쪽 다 손해 보지 않는 기준과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 ‘강자’와 ‘가진 자’의 독식으로 끝나는 잔치와 사회는 실패하기 마련이다.
지극히 옳다고 여겨지는 당연한 것이 이 사회에 보장되어야 한다. 법률에 의한 행정행위, 절제된 재량권 사용, 여기에다 시대 사회 환경에 맞는 정교한 ‘게임의 룰’ 즉 선제적인 입법과 제도의 마련이 곧 ‘공정사회의 길’로 이르게 하는 장치가 아닌가 한다.
박영희(창원전문대학 대외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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