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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주렁주렁 주홍물결 쉿! 곶감 떨어질라
[바람난 주말] 경북 상주 남장마을
<경남도민일보>
경상도의 '상'자를 만들었던 고도(古都) 경북 상주는 쌀과 누에고치, 곶감이 유명해 '삼백'의 고장으로 이름난 곳이다. 요즘은 자전거 도시라는 별칭도 얻고 있다. 상주는 전국 곶감의 60% 이상을 생산한다. 많이 생산하는 것과 품질 좋은 것을 생산한다는 것은 다른 의미지만 일단 미국과 뉴질랜드, 일본, 중국, 대만 등에 수출되고 있을 만큼 곶감의 품질이나 양이 좋고 많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10월 말 상주 근교를 찾으면 마을마다 곳곳에서 주홍빛 감이 줄에 주렁주렁 매달려 건조된다. 곶감이 익어 가는 상주의 한 마을을 찾았다.
상주시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남장마을이 있다. 최근 자전거 박물관이 이전하기 전만 해도 많은 사람이 남장마을을 찾아 곶감도 먹고 자전거 박물관 구경도 하곤 했다.
마을 입구부터 감나무가 손님을 맞는다. 가로수가 감나무다. 물론 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손을 뻗도록 유혹한다. 유혹을 받은 사람이 한두 사람이었을까. 그래도 감은 도둑맞지 않고 잘 달렸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가로수 감은 상주시 소유로 함부로 따먹을 수 없다고 한다. 하나씩 슬쩍 따먹을 법도 하지만 규칙이 지켜지는 이유는 마을 안으로 들어가서야 알았다.
마을은 온통 감나무다. 감이 도로에서부터 마당, 대문 등 어디든지 풍성하다. 감나무에 매달린 감이 보는 사람의 마음을 풍성하게 할 만큼 많이 달려있다.
사람이 올라타면 잘 부러지기로 유명한 감나무지만 200여 개의 감을 달고도 견디는 모습이 신기할 정도다.
이곳 마을의 집은 2층 구조다. 1층에서 살림을 하는 이들도 있고 창고로 쓰는 곳도 있지만 어김없이 2층은 뻥 뚫린 사각의 공간이다.
2층이 바로 감을 말리는 장소다. 마을 입구에서 가까운 한 농가를 찾았더니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여 감을 깎고 줄에 거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저 많은 감을 어떻게 깎았을까 하는 의문은 바로 해소된다. 쇠를 깎는 공업용 선반의 원리를 이용해 감을 고정시켜 돌리면서 칼을 가져다 대어 깎고 있었다.
일은 철저히 분업화돼 감 꼭지를 떼는 사람, 몸통을 깎는 사람, 하단을 깎는 사람, 줄에 매다는 사람으로 나뉘어 있었다.
그중 모든 일을 혼자 하는 사람이 있는데 가까이서 보니 감이 물러서 홍시가 될 듯 말 듯한 감을 수작업으로 곶감을 만들고 있었다. 조금만 조심하지 않으면 터질 듯해서 기계를 이용하지 못하고 일일이 수작업하고 있었던 것이다.
곶감의 원료는 단감이 아니라 떫은 감이다. 상주에서 곶감을 만들 때 쓰는 감을 '둥시'라고 부른다.
둥시는 떫은맛이 강해서 생으로 먹는 것보다 시간을 들여 곶감이나 홍시로 먹어야 맛이 좋다.
둥시는 경북 청도의 반시보다 타닌의 함량이 많은 대신 물기가 적어 곶감을 만들기 더 좋다고 한다. 경북 상주가 둥시의 대표적인 주산지다. 하지만 요즘 이곳의 농심 자체가 떫은 감 상태다. 올 여름 잦은 비와 탄저병 때문에 작황이 저조해 곶감 수급에 비상이 걸렸기 때문이다.
지난해보다 생산량이 30~40% 정도 줄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갑자기 10월인데도 서리가 내리면서 곶감이 얼어버린 것이다.
근데도 눈치 없이 "곶감 값이 오르면 농민들에게 더 좋지 않나요?"라는 질문을 했다.
"저렴하게 많이 팔려야지 비싸지면 수요가 엄청 줄어"라는 답이 바로 나왔다. 실제로 기호식품인 곶감 값이 오르면 수요가 크게 줄고 외국산 수입이 늘어 생산농가들이 큰 피해를 보게 된다.
감나무 빼곡한 곳인 만큼 인심도 곶감만큼이나 달다. 길을 걷다 마주친 한 아주머니는 직접 나무에 달린 홍시 하나를 따서 준다.
아주머니는 "가장 맛있는 감은 끝까지 나무에서 떨어지지 않고 남은 홍시"라며 덥석 건넨다.
꼭지를 따서 꼭지에 붙은 것까지 입에 발라본다. 역시 꼭지는 텁텁한 맛이다. 본격적으로 홍시 몸통을 살포시 갈라본다.
부드럽게 찢기어 나간다. 먹음직스러운 홍시 알이 불쑥 배를 내민다. 씨도 없는 홍시가 이에 닿기도 전에 녹는 듯하다. 이 부드럽고 단 맛에 까치는 그렇게도 열심히 쪼아대고 있었던 것이다.
감나무 잎이 수북이 쌓인 마을 골목길을 걷는 소리가 요란하다.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바스락거리는 발소리 때문이 아니길 바랄 뿐.
나무 대문이 특징인 마을 중앙의 한집안에 조용히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마당도 좁고 아주머니 혼자서 무엇인가 열심이다. 기계 소리는 감 깎는 기계다. 하지만 최신 기계라 혼자서도 작업이 가능하다. 세 명이 함께 하는 작업을 혼자서도 할 수 있게 되었다. 혼자서 깎는 기계가 사람을 외롭게 만들었는지 아주머니가 손목을 까닥이며 들어오란다. 그리곤 기계설명을 한참 하다가 먹을 것을 찾다가 아침에 따 논 홍시를 두 개 건넨다.
맛있게 하나를 먹었더니 그사이에 장바구니 가득 담아 손에 들려준다. 이 정도면 시식이 아니라 사먹어야 할 정도다. 가격을 물어보니 손사래 친다. 자신도 남편과 서울에 살면서 1년 전 귀향했는데 집안사람들 먹을 정도만 농사짓지 판매하진 않는단다. 감이 익어 곶감이 완성되는 12월 중순에는 홍시가 아닌 곶감을 먹어보면 인심만큼이나 후한 곶감의 단맛이 전해질 것 같다.
대구를 향하는 구마고속도로를 거쳐 중부내륙고속도로 상주나들목을 빠져 나오면 곧장 보은 방향으로 향한다.
상주 시내를 관통하는 25번 국도를 따라가면 도시를 벗어나 곧 은행나무길이 나온다.
북천길을 따라 2번째 마을이 남장마을이다. 자전거 박물관이란 큰 간판이 나온다.
남장마을 뒷산인 노악산에는 남장사가 있다. 마을에서 30여 분을 걸어가면 나온다. 희귀한 목각탱(보물 922호)과 비로자나철불좌상(보물 990호)이 있는 신라시대 창건 사찰이다.
석장승과 일주문도 구경거리다. 아늑하고 고요한 주위 분위기가 사찰의 단청과 어우러져 있는 곳이다.
<여경모 기자>
주렁주렁 주홍물결 쉿! 곶감 떨어질라
[바람난 주말] 경북 상주 남장마을
<경남도민일보>
경상도의 '상'자를 만들었던 고도(古都) 경북 상주는 쌀과 누에고치, 곶감이 유명해 '삼백'의 고장으로 이름난 곳이다. 요즘은 자전거 도시라는 별칭도 얻고 있다. 상주는 전국 곶감의 60% 이상을 생산한다. 많이 생산하는 것과 품질 좋은 것을 생산한다는 것은 다른 의미지만 일단 미국과 뉴질랜드, 일본, 중국, 대만 등에 수출되고 있을 만큼 곶감의 품질이나 양이 좋고 많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10월 말 상주 근교를 찾으면 마을마다 곳곳에서 주홍빛 감이 줄에 주렁주렁 매달려 건조된다. 곶감이 익어 가는 상주의 한 마을을 찾았다.
상주시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남장마을이 있다. 최근 자전거 박물관이 이전하기 전만 해도 많은 사람이 남장마을을 찾아 곶감도 먹고 자전거 박물관 구경도 하곤 했다.
마을 입구부터 감나무가 손님을 맞는다. 가로수가 감나무다. 물론 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손을 뻗도록 유혹한다. 유혹을 받은 사람이 한두 사람이었을까. 그래도 감은 도둑맞지 않고 잘 달렸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가로수 감은 상주시 소유로 함부로 따먹을 수 없다고 한다. 하나씩 슬쩍 따먹을 법도 하지만 규칙이 지켜지는 이유는 마을 안으로 들어가서야 알았다.
마을은 온통 감나무다. 감이 도로에서부터 마당, 대문 등 어디든지 풍성하다. 감나무에 매달린 감이 보는 사람의 마음을 풍성하게 할 만큼 많이 달려있다.
사람이 올라타면 잘 부러지기로 유명한 감나무지만 200여 개의 감을 달고도 견디는 모습이 신기할 정도다.
이곳 마을의 집은 2층 구조다. 1층에서 살림을 하는 이들도 있고 창고로 쓰는 곳도 있지만 어김없이 2층은 뻥 뚫린 사각의 공간이다.
2층이 바로 감을 말리는 장소다. 마을 입구에서 가까운 한 농가를 찾았더니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여 감을 깎고 줄에 거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저 많은 감을 어떻게 깎았을까 하는 의문은 바로 해소된다. 쇠를 깎는 공업용 선반의 원리를 이용해 감을 고정시켜 돌리면서 칼을 가져다 대어 깎고 있었다.
일은 철저히 분업화돼 감 꼭지를 떼는 사람, 몸통을 깎는 사람, 하단을 깎는 사람, 줄에 매다는 사람으로 나뉘어 있었다.
그중 모든 일을 혼자 하는 사람이 있는데 가까이서 보니 감이 물러서 홍시가 될 듯 말 듯한 감을 수작업으로 곶감을 만들고 있었다. 조금만 조심하지 않으면 터질 듯해서 기계를 이용하지 못하고 일일이 수작업하고 있었던 것이다.
곶감의 원료는 단감이 아니라 떫은 감이다. 상주에서 곶감을 만들 때 쓰는 감을 '둥시'라고 부른다.
둥시는 떫은맛이 강해서 생으로 먹는 것보다 시간을 들여 곶감이나 홍시로 먹어야 맛이 좋다.
둥시는 경북 청도의 반시보다 타닌의 함량이 많은 대신 물기가 적어 곶감을 만들기 더 좋다고 한다. 경북 상주가 둥시의 대표적인 주산지다. 하지만 요즘 이곳의 농심 자체가 떫은 감 상태다. 올 여름 잦은 비와 탄저병 때문에 작황이 저조해 곶감 수급에 비상이 걸렸기 때문이다.
지난해보다 생산량이 30~40% 정도 줄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갑자기 10월인데도 서리가 내리면서 곶감이 얼어버린 것이다.
근데도 눈치 없이 "곶감 값이 오르면 농민들에게 더 좋지 않나요?"라는 질문을 했다.
"저렴하게 많이 팔려야지 비싸지면 수요가 엄청 줄어"라는 답이 바로 나왔다. 실제로 기호식품인 곶감 값이 오르면 수요가 크게 줄고 외국산 수입이 늘어 생산농가들이 큰 피해를 보게 된다.
감나무 빼곡한 곳인 만큼 인심도 곶감만큼이나 달다. 길을 걷다 마주친 한 아주머니는 직접 나무에 달린 홍시 하나를 따서 준다.
아주머니는 "가장 맛있는 감은 끝까지 나무에서 떨어지지 않고 남은 홍시"라며 덥석 건넨다.
꼭지를 따서 꼭지에 붙은 것까지 입에 발라본다. 역시 꼭지는 텁텁한 맛이다. 본격적으로 홍시 몸통을 살포시 갈라본다.
부드럽게 찢기어 나간다. 먹음직스러운 홍시 알이 불쑥 배를 내민다. 씨도 없는 홍시가 이에 닿기도 전에 녹는 듯하다. 이 부드럽고 단 맛에 까치는 그렇게도 열심히 쪼아대고 있었던 것이다.
감나무 잎이 수북이 쌓인 마을 골목길을 걷는 소리가 요란하다.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바스락거리는 발소리 때문이 아니길 바랄 뿐.
나무 대문이 특징인 마을 중앙의 한집안에 조용히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마당도 좁고 아주머니 혼자서 무엇인가 열심이다. 기계 소리는 감 깎는 기계다. 하지만 최신 기계라 혼자서도 작업이 가능하다. 세 명이 함께 하는 작업을 혼자서도 할 수 있게 되었다. 혼자서 깎는 기계가 사람을 외롭게 만들었는지 아주머니가 손목을 까닥이며 들어오란다. 그리곤 기계설명을 한참 하다가 먹을 것을 찾다가 아침에 따 논 홍시를 두 개 건넨다.
맛있게 하나를 먹었더니 그사이에 장바구니 가득 담아 손에 들려준다. 이 정도면 시식이 아니라 사먹어야 할 정도다. 가격을 물어보니 손사래 친다. 자신도 남편과 서울에 살면서 1년 전 귀향했는데 집안사람들 먹을 정도만 농사짓지 판매하진 않는단다. 감이 익어 곶감이 완성되는 12월 중순에는 홍시가 아닌 곶감을 먹어보면 인심만큼이나 후한 곶감의 단맛이 전해질 것 같다.
대구를 향하는 구마고속도로를 거쳐 중부내륙고속도로 상주나들목을 빠져 나오면 곧장 보은 방향으로 향한다.
상주 시내를 관통하는 25번 국도를 따라가면 도시를 벗어나 곧 은행나무길이 나온다.
북천길을 따라 2번째 마을이 남장마을이다. 자전거 박물관이란 큰 간판이 나온다.
남장마을 뒷산인 노악산에는 남장사가 있다. 마을에서 30여 분을 걸어가면 나온다. 희귀한 목각탱(보물 922호)과 비로자나철불좌상(보물 990호)이 있는 신라시대 창건 사찰이다.
석장승과 일주문도 구경거리다. 아늑하고 고요한 주위 분위기가 사찰의 단청과 어우러져 있는 곳이다.
<여경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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