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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소중한 옛것 누구나 접하고 느낄 수 있게"

작성자
강소연
작성일
2011.03.12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1194
내용

 

사천 '교육박물관 '운영하는 박연묵 씨

 

 

30여 년의 교직생활을 접고, 자신의 고향에서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박연묵 교육박물관'운영하는 퇴직교사가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일제강점기인 1934년 사천시 용현면 신복리에서 태어나 진주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68년 교직에 입문한 박연묵(78) 선생이다. 박 선생은 유년시절부터 지난 99년 퇴직할 때까지 2차 대전 말에서 해방 초까지의 생활상을 간직한 사진과 고서적, 농기계(우마차, 풍로, 홀개가마니틀 등), 생필품(덕석, 짚신, 나막신, 톱 등), 학교 관련 자료물(일제교과서, 학생기록부 등) 등 2000여 점을 수집했다.

사천초등학교 교사를 끝으로 교직을 떠난 박 선생은 자신의 집에 '박연묵 교육박물관'을 건립, 그동안 모아온 수집품들을 분류·보관, 그리고 전시하기 시작했다. 이웃과 제자, 친지·지인들에게 우리 민족 고유의 얼을 되새기는 자료로 제공해 온 것이다. 처음엔 1동이었지만, 지금은 7동으로 늘어나는 등 박물관 규모가 꽤 커졌다. 무엇보다 이 곳을 찾는 사람들 발길이 늘어나고 있다.

   
 

박 선생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시골마을에 있는 작은 박물관이지만, 박물관과 어울리는 환경을 만들려고 열정을 쏟아부었다. 4000여 평에 석류·모과·앵두·돌배나무 등 민속수를 심고, 1년 내내 꽃을 감상할 수 있도록 패랭이·코스모스·과꽃·국화 등 130여 종의 꽃으로 화원을 조성, 꽃길을 따라 산책하면서 자연의 정취를 만끽함과 동시에 생태학습이 가능하도록 했다. 박 선생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우리의 소중한 옛것을 함부로 취급하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박물관을 조성하게 된 것"이라며 "언제나 놀러 올 수 있고, 한 가지를 배우고 갈 수 있는 그런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 선생은 '박연묵 교육박물관'은 특별하지 않다고 겸손해 한다. 하지만, 사진 한 장에 담긴 사연, 성적표에 담긴 사연, 셈본에 담긴 추억 등 박 선생이 늘어놓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옛 사람들의 생활상은 물론 잊혀가던 어린 시절 추억도 떠오르게 된다. 박 선생은 "박물관 하면 번드레한 건물과 찬란한 조명을 떠올리겠지만 여긴 그렇지 않다"며 "제가 살고 있는 집의 비어 있는 공간을 다듬어 박물관 전시관으로 활용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 선생은 교직생활 동안 아내인 최말달(78) 할머니에게 월급 봉투를 한 번도 줘 본 적이 없다. 특히, 지금까지 가족끼리 회식도 해 본 적이 없다. 박 선생에게는 어떤 것을 수집할 것인지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말달 할머니는 때로는 야속하고 섭섭한 마음도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자랑스럽고, 존경하는 마음은 여전하단다.

최말달 할머니는 "80여 년 살아오는 동안 남편과 함께 남들은 쉽게 먹을 수 있는 자장면, 짬뽕을 먹어 본 적이 없고, 월급 봉투를 받아 본 적도 없다"며 "생활은 모두 내 손으로 해결했고, 지금도 시장에 나가 생계비를 벌고 있다. 남들처럼 호강하고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남편이 좋아하는 일을 계속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박 선생은 교직생활 동안 사랑과 열정을 다한 교사로서도 인정을 받았다. 31년간 학생지도에 헌신해 지역사회와 제자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모범교사, 훌륭한 교사라는 칭송과 함께 지난 2009년 12월 제31회 경남교육상을 수상한 것. 경남교육상은 경남교육 발전에 헌신한 교원과 교육행정직, 그리고 교육 발전에 이바지한 일반인에게 주는 권위있는 상이다.

박 선생은 스스로 '기록병'이라는 희귀한 병을 앓고 있다고 한다. 어떤 일이든, 무슨 일이든, 습관적으로 기록해야 하는 병이다. 어려서부터 일기를 써왔다. 초임교사 때부터 교단일기도 빠짐없이 쓰고 있단다. 일기쓰기를 60여년을 해온 셈이다. 요즘도 박 선생은 대문 앞에 태극기를 게양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일기를 쓰며 하루를 마친다. 이 일기는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말까지 열리는 국제기록문화전시회에서 김구·안중근·윤봉길 선생의 일기와 함께 전시되고 있다. 이로 인해 국가기록원 이경옥 원장이 지난 2월 17일 '박연묵 교육박물관'을 방문한 뒤 '소중한 기록물을 전시, 우리 국가기록원을 빛내 주셔서 고맙습니다'라는 인사와 함께 감사장을 전달했다.

박물관을 둘러 본 이 원장은 "소중하고 희귀한 민간기록물들이 잘 보존, 관리돼 왔다. 역사의 교훈을 담고 있는 이 기록물이 잘 보존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며 "서적과 지도 등을 국가기록원에 가져오면 부패와 산화 방지 처리를 해주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박 선생은 요즘 고민이 하나 생겼다고 한다. 박물관 앞에 물레방아를 설치하고 싶지만, 돈이 없어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박 선생은 방문객들에게 시원하게 돌아가는 물레방아를 보여주고 싶다는 일념으로 오늘도 먹고 싶은 것 안 먹고, 입고 싶은 것 안 입는다.

 

경남도민일보

/장명호 기자 jangco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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