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정보
안동 하회마을 북촌댁(北村宅)
숱한 세월을 거치면서도 지금까지 굳건하게 역사를 품고 있는 곳, 안동 하회마을. 과거와 현재가 현재진행형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는 그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지난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경주 양동마을과 함께 안동 하회마을(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마을전체가 중요민속자료 제122호,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은 가장 한국적인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곳으로 세계적인 관심을 받는 곳이다. 풍산 류씨가 600여 년간 대대로 살아온 혈연마을로 기와집과 초가가 오랜 역사 속에서도 잘 보존되어 지금도 그 숨결이 계속 흐르고 있다. 안동 시내를 벗어나 하회마을로 들어서면 부모가 사는 고향 같은 정취가 느껴지고 어릴 적 뛰놀던 추억이 어린 듯 우리 조상의 삶이 구석구석 묻어난다. 마치 과거로의 여행처럼 마음부터 설렌다.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따라 초가집과 기와집이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사이좋게 들어선 모습이 참 보기 좋다. 토담 너머 정겹게 서 있는 초가집에서는 금방이라도 외할머니가 문을 열고 반갑게 맞아줄 것만 같다. 2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흐트러짐 없이 북촌을 지키며 옛 모습 그대로 온전하게 자리 잡고 있는 북촌댁(北村宅, 중요민속자료 제84호)은 정조·순조 조에 초계문신과 예조·호조 참판을 역임한 학서(鶴棲) 류이좌(柳台佐, 1763~1794)의 선고(先考) 지중추부사 류사춘(柳師春) 공이 1797년(정조 21년)에 처음으로 작은 사랑과 좌우익랑(左右翼廊)을 건립한 뒤, 1862년(철종 13년)에 류사춘의 증손 석호 류도성(柳道性)이 안채, 큰사랑, 대문간, 사당을 건립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기와집에 고스란히 녹아 있는 조선 시대 양반가의 위엄은 수백 년 세월을 지나도 누그러질 줄 모른다.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멋이 살아 있는 집, 북촌댁 솟을대문을 두드린다. 갑자기 잡은 약속임에도 흔쾌하게 필자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겠다던 류세호 선생이 반갑게 맞아준다. 흰 고무신을 신은 모습에 고개를 돌려 혼자 빙그레 웃는다. 선생은 학교와 직장 때문에 상경, 30년을 서울에서 살다가 지난 2006년에 귀향해 이곳에 살면서 북촌댁을 찾아오는 방문객을 맞으며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건물 하나하나가 선생의 손끝이 닿아서인지 선생과 많이 닮았다. 선생은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는 생각으로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한국 고유의 전통문화를 많이 전해 주고 싶단다. 군불을 때서 따뜻해진 온돌방의 아랫목에 도란도란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던 우리의 좌식문화와 ‘뒷간과 사돈집은 멀수록 좋다.’라는 속담이 있을 만큼 집의 본채와 멀리 떨어져 지었던 우리 화장실 문화를 알려주고 싶어 한다. 선생의 안내를 받으며 먼저 ‘북촌유거(北村幽居)’란 현판이 걸려 있는 큰사랑으로 올랐다. 가장 웃어른인 할아버지께서 거처하던 사랑으로 외빈 접객용으로도 사용하는 곳이다. 누마루에 앉아 보니 하회마을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앞마당에다 정원을 만들지 않고 이렇게 누마루에 앉아서 자연 그대로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게 건물을 지은 우리 선조의 지혜에 다시 한 번 감탄하는 순간이다. 큰사랑 뒤에는 이 마을을 감싸고 흐르는 낙동강의 모양을 그대로 닮은 소나무가 300년의 세월을 간직하고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화경당(和敬堂). 이 집의 당호이기도 한 중사랑은 경제권을 가진 바깥주인이 기거하던 곳이다. 중사랑과 안대문을 사이에 두고 작은사랑인 수신와(須愼窩)가 자리 잡고 있다. 수신와는 손자가 기거하는 가장 작은 규모의 사랑으로, 어린 손자가 안채의 어머니가 보고 싶을 때 바로 드나들 수 있도록 작은 문을 달아 놓았다. 인기척을 내며 선생을 따라 안채로 들어간다.
안채는 높은 축대 위에 지었으며 기둥도 매우 높이 올렸다. 안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 부엌과 안방, 오른쪽에 며느리가 거처하는 건넌방, 그 앞에는 안주인에게 살림을 물려준 노모가 거처하는 툇마루와 연결된 방이 있으며, 대갓집 규모에 걸맞게 널찍한 부엌이 아랫방과 연결되어 있다. 이 집 문간채에는 우리가 평소에 자주 볼 수 없는 세화(歲畵)라는 그림이 걸려 있다. 이것은 류이좌 공이 임금으로부터 받은 새해 선물로, 새해를 송축하고 재액을 막기 위한 그림이라 한다. 그림 속 인물은 당나라 태종 때 실존했던 진숙보와 호경덕이라는 장군으로, 태종이 병에 걸려 귀신을 두려워하자 잠도 자지 않고 밤낮으로 그 옆을 지켜 태종의 병을 낫게 해 이를 기특하게 여긴 태종이 화공에게 두 사람의 모습을 그려 궁궐의 대문에 걸도록 했다는 것에서 유래되었다. 이것이 조선으로 전래해 수문신(守門神)의 주체로 형상화되었다고 한다.
선생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깔끔한 집 안 이곳저곳을 다니며 선생은 자세한 설명까지 덧붙인다. 선생에게서도 대쪽 같은 선비정신이 묻어나온다. 우리에게 콩가루를 넣어 반죽한 국수를 권하는 선생은 약속시각보다 늦게 도착한 우리를 위해 그때까지 점심도 거른 채 계셨단다. 이곳에 머문 지난 5년간 방문객을 맞으면서 느낀 점 몇 가지를 얘기해주는 선생. 이곳 안동 하회마을에는 문화재로 지정된 고택들이 몇 가옥 더 있지만 대부분 사는 분들이 연로하여 관리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란다. 찾아오는 손님과 체험객을 맞이하다 보면 하루가 모자랄 정도이고, 옛날에는 하인을 비롯해 대가족이 살던 집에 지금은 달랑 노부부 두 사람이 지키면서 집을 관리하기에는 아주 많이 힘에 부친다고 한다. 옛날처럼 장작으로 군불을 지펴 온돌방을 데워야 하지만, 화재의 위험과 일손 부족으로 전기 패널로 교체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나 규제할 수도 없는 일이니 이렇게 하여 우리의 전통문화를 간직한 고택이 하나둘씩 사라져가고 있다며 안타까워한다. 더 늦기 전에 우리 문화유산을 잘 지켜낼 수 있도록 국가적인 지원이 있어야 함을 강조하는 말씀에 힘이 실린다. 안동 하회마을은 몇 해 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다녀가고,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국내외적으로 더욱 알려졌다. 외지인들이 많이 찾아오면서 마을에는 기념품 가게나 식당 같은 곳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그렇게 상업적으로 변한 모습들이 눈에 많이 거슬리긴 하지만 그나마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엿보여 다행이다 싶다. 그래도 아직 이곳엔 우리 전통문화의 향기가 면면히 흐르고 있었다. 문화유산신문_이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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