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풀의 동명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 뒷심이 심상치 않습니다. 지난달 17일 개봉했는데요. 개봉 첫 주말, 박스오피스 6위의 주목을 받지 못할 성적으로 시작을 알렸죠. 그런데 3주차에는 신작들을 제치고 다시 4위로 올라섰고 관객 수 60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지난 8일에는 2위에 자리매김한 데 이어 3주차에는 좌석점유율 38.1%로 전체 영화 중 1위를 차지하며 62만 5126명의 관객을 모았습니다.
이 영화가 뒤늦게 흥행몰이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관객들의 적극적인 입소문과 소셜네트워크 덕분이라고 하는데요. 최근에는 유명 인사들도 트위터를 통해 이 영화의 감동을 전하고 있습니다.
선남선녀의 사랑도 복수와 반전이 없으면 진부하다고 느껴지는 세상에 노년기의 사랑이라니. 지루하고 재미없을 것이라는 편견이 흥행의 가장 큰 힘이라는 '관객의 입소문'으로 무참히 깨지고 있습니다.
흰머리가 텁수룩하고 얼굴에는 굵은 주름이 가득한 중년을 넘어선 노배우들이 스크린을 꽉 채웁니다.
청춘남녀가 만나는 고전이 있습니다. 남자는 자전거를 타고 갑니다. 여자는 책을 팔로 안은 채 사뿐히 걸어갑니다. 그러다 모퉁이에서 여자는 남자의 자전거를 스치다 넘어집니다. 여자가 안고 있던 종이가 이리저리 흩날립니다. 남자는 자전거에서 내려 여자의 종이를 주워주다 서로 알아보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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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의 한 장면. |
하지만, 현실에서 이런 일은 흔하지 않습니다. <그대를 사랑합니다>의 만석(이순재)과 송씨(윤소정)의 만남은 더욱 매몰찹니다. 만석은 새벽 우유배달을 합니다. 한번 시동이 꺼지면 다시 시동을 걸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오토바이를 끌고요. 송씨를 만나던 그날 새벽에도 우유를 싣고 오르막길을 오릅니다. 송씨는 폐지를 담은 손수레를 힘겹게 끌며 미끄러질세라 내리막길을 내려오죠. 그런데 길바닥에 있던 돌멩이 하나가 달리던 만석의 오토바이 바퀴에 튕겨 송씨의 머리를 강타합니다. 송씨는 그대로 넘어지고 폐지가 바닥에 흩날립니다. "내가 그런 거 아니지?" 그렇게 둘은 서로 눈을 쳐다봅니다.
또 하나의 사랑이 있습니다. 장군봉(송재호)과 군봉처(김수미)가 그들인데요. 군봉처는 치매에 걸렸습니다. 군봉은 이런 아내를 혼자 둔 채 대문에 자물쇠를 채우고 주차장 관리일을 하고자 출근을 하죠. 일을 하고 오면 군봉처는 이불에다 '실례'를 해놓고 크레파스로 벽에 그림을 그리다 군봉을 환한 얼굴로 맞이합니다.
군봉은 얼굴 하나 찡그리지 않고 말합니다. "볼일은 요강에다 해." 그리고 군봉은 군봉처를 씻기고 하루 있었던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군봉은 아내에게 "나이 들수록 더 예뻐진다"며 무한 애정을 퍼붓습니다.
불평만 많은 버럭쟁이 이순재의 엉뚱한 행동과 거친 대사는 큰 웃음을 주지만, 그 거침 속에 녹아든 따뜻한 속마음을 엿볼 수 있어 정겹습니다. 치매에 걸린 역할을 과장도 꾸밈도 없이 해내는 김수미도 큰 웃음을 주죠. 송재호와 윤소정의 잔잔한 연기도 영화를 풍성하게 합니다. 오달수·이문식·송지효 등 조연들의 맛깔스런 연기는 지루할 틈을 주지 않습니다.
1970∼80년대를 풍미했던 세시봉 열풍이 '신드롬'이라 불릴 정도로 최근 다시 불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젊은 세대에게 '무한' 자리를 양보했던 중년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문화를 찾기 시작한 것인데요. <그대를 사랑합니다> 흥행몰이도 이 맥락에서 이유를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랑에서조차 젊은이들의 특권인 양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넘겨주었던 중년들이 그들의 '사랑'에 공감하고 박수를 보내고 밖으로 끌어내고 있습니다. 최근에 인기있는 영화를 되짚어 보자면 <글러브>나 <헬로우 고스트> 등 칼로 찌르고 죽이고 피흘리는 영화가 아닌 감동적인 영화였습니다. 어느 학자는 '사회가 디지털화될수록 아날로그의 힘은 더욱 중요해진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자극적이지 않은 소재로 '사랑' 본연에 대한 메시지를 전한 <그대를 사랑합니다>로 세대간 소통을 이어가기를 바랍니다.
경남도민일보
/최규정 기자 gjchoi@ido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