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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돈에 짓밟히고 사람에 짓밟히고"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1.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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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0
조회수
1300
내용

"돈에 짓밟히고 사람에 짓밟히고"

 

'미술계 1%법'이 낳은 미술조형물, 어디로

 

 

건축물 신·증축 시 건축비의 0.7%를 미술 장식에 사용하도록 한 제도로 설치된 작품이 외면받고 있다. 한 행인이 창원시 마산회원구 합성동 CGV 건물 앞에 있는 이명림 작가의 작품 <생(生)>에 발을 올리고 있다. /여경모 기자

 

 

1%법은 도시미관 특히 해당 건물의 미관을 위해 만든 제도입니다.

하지만, 이제 미술조형물은 '환경 공해물'로 변질한 상태입니다. 손가락이 부서진 채 서 있는 인물상이 있는가 하면 귀가 떨어져 나간 동물도 상당수입니다.

작가가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것이라 할지라도 전혀 소통되지 못한 건물에 후한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손님들이 눈길조차 주지 않는 작품에 건축주도 시선이 삐딱해집니다.

게다가 손님들이 드나드는 곳 한복판에 있다면 작품은 눈칫밥 먹기도 어려워집니다.

현재 어떤 상태인지 여러 곳을 둘러보았습니다. 근래에 지은 상당수의 대형건물에 작품이 없더군요. 그나마 있는 것도 곧 폐기절차에 들어갈 정도입니다.

 

건물 여닫이문을 열어 놓기 위해 작품에 줄을 감아놓은 곳도 보입니다. 서울 대검찰청 건물의 조형물을 설치한 지역출신 작가의 작품조차 이런 상태로 관리되고 있는데 다른 작품이야 오죽하겠습니까.

마산회원구 합성동 CGV 건물의 작품은 현 건축물의 상태를 한눈에 보여줍니다. 2m가량의 애벌레처럼 생긴 물건이 입구 땅바닥에 놓여 있습니다.

한 시간 동안 곁에서 지켜보았더니 용도는 하나였습니다. 구두 신을 때 쓰는 받침대였습니다. 억 단위 금액이 들어간 작품이라곤 상상할 수 없습니다. 바로 옆에 놓인 나무 의자보다 못한 처량한 신세입니다. 이 작품이 의자로도 쓸 수 없는 것은 흰 대리석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더럽혀져 있기 때문입니다. 생활 스티커에 껌조차 덕지덕지 붙어 있으니 말입니다.

이 건물에는 이런 조각품이 2점 더 있습니다. 하나는 조경수 뒤 에어컨 실외기 옆에 숨겨두었고 다른 하나도 가건물 뒤로 울타리를 넘어야만 겨우 보이는 곳에 숨겨져 있습니다.

3개의 추상 조각 작품 중 하나만 작품명제가 붙어 있어 겨우 작가가 누군지 알 수 있습니다.

더럽지만 작품이 제자리에 있는 건물은 그나마 건물주가 양심적인 편입니다.

상당수의 건물 앞에 서 있던 작품은 건물주가 몰래 치우거나 버리는 등 작품 훼손을 당하고 있습니다.

기업 이미지로 장사하는 업체가 속한 건물은 조금 나은 편입니다.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의 고가 작품이 해당합니다. 조각가 문신이나 임형준의 작품이 많이 보입니다. 작품보존 상태가 양호한 편입니다. 물론 두 작가의 작품 가운데서도 천대받고 있는 작품이 있습니다.

지역미술계는 '관공서가 모범적으로 미술작품을 폄하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옛 마산시청(현 합포구청)에 설치된 문신의 건축물 조각 작품 '화(和)'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정문에 있던 작품을 키 큰 나무 숲 뒤로 옮긴 것을 두고 미술계의 반발도 있었지만 결국 원상복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건물의 문패처럼 세워진 대형조각품들과 전시실 조각품을 구분하는 방법이 단순히 크기 하나뿐이라는 말에 미술가들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럼 누가 미술가를 '뻥튀기' 장사꾼으로 만들었을까요.

뻥튀기를 주문한 사람을 찾으면 됩니다. 최근 들어 보다 투명한 방식으로 작품을 선정하고, 엄정한 공모 등을 통해 작품을 설치하는 예가 많아져 개선되고 있지만, 여전히 상당수의 건축주는 자신들이 지정하거나 특정 작가가 선정되도록 유도하는 다양한 기술들이 전해 내려옵니다.

당연히 건축비의 0.7%라는 아까운 돈이 들어가는데 가만히 놓아두지 않았을 테지요. 돈을 쥔 건축주, 돈 앞에 거절 못 하는 미술가, 미술단체 임원인 심의위원 간 고성이 오갈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물론 심의에서 반려되는 경우는 많습니다. 대부분 예술성이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입니다. 실질적으로 들여다보면 심의를 맡은 지역 미술단체의 장이나 주변에서 추천한 작품이 1점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자주 발생합니다. 뿔난 심의위원에 의해 미술장식품 심의가 늦어져 준공검사가 2~3개월 미뤄지면 가장 답답한 것은 건축주입니다.

작가가 선정되면 그들만의 계산은 시작됩니다. 일단 조형물의 납품가를 부풀리겠지요. 전시실에서 수백만 원하던 작품이 갑자기 '억'에 가까운 작품으로 탈바꿈합니다. 건축주 계좌에서 미술가의 계좌로 들어간 돈은 절반을 떼어 건축주 지인의 통장으로 입금되겠지요. 건축주와 미술가를 중계했던 갤러리도 상당한 몫을 챙깁니다. 결정적 역할을 했던 심의위원도 있네요. 리베이트와 비자금은 여기서 시작이지 끝이 아니란 것은 미술계 누구나 아는 이야기입니다.

"1억 원짜리 작품 만드는데 재료비 1천만 원 쓰기도 겁난다"는 한 조각가의 말에서 장식품 설치 의무비용을 훨씬 밑도는 뻥튀기 미술품이 양산되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슬슬 건축물 미술장식품 제도도 손질할 때가 되었습니다.

 

경남도민일보/여경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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