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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이 미술가 홍위병 된 사연
- 각종 의혹 관련 작품 알려 가격 치솟게 해
'먼 산 불구경'을 이런 때 두고 하는 이야기일까요. 한 달이 멀다고 서울에서는 고가의 그림을 두고 기사가 쏟아져 나옵니다. 해외 경매에서 피카소, 데미안 허스트 등의 작품이 수백억 원에 낙찰되었다는 소식보다 더 허탈하게 만드는 이야기들입니다. 그래서 여의도발 미술소식은 가깝고도 먼 이야기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최근에는 고위 공직자의 재산공개에서 대거 미술작품이 공개되면서 세간의 관심을 끌기도 했습니다. 세부목록까지 공개된 고위 공직자의 작품목록을 보면서 사뭇 흥미로운 미소를 지어봅니다. 흥미로운 미소를 짓게 했던 것은 '권장소비자가격'에도 미치지 못한 작품의 가격이 아닙니다.
바로 공직자와 작품의 관계 때문입니다. 특히 일반인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작품을 가진 공직자의 목록입니다. 미술에 전적으로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만 흥미를 느낄 법한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이들입니다. 이들 작품과 공직자의 평소 이미지를 결부하는 일은 소설만큼이나 흥미롭습니다. 이들 작품만 봐도 감상용인지, 투자용인지, 선물용인지 그림 값 계산에는 뛰어난 재주가 없지만, 이들의 그림 고르는 센스는 대충 눈높이를 맞출 수 있겠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공개된 작품이 빙산의 일각이란 것은 삼척동자도 알 법한데 좀 더 많은 작품이 공개되길 2탄을 기다려 볼까 합니다.
왼쪽부터 1.2008년 삼성가의 비자금 조성용도로 의심받았던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 2.최근 오리온 그룹의 비자금 의혹과 관련해 세간의 입에 오르내리는 앤디 워홀의 <플라워>. 3.한상률 전(前) 국세청장이 인사청탁 로비 용도로 사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최욱경의 <학동마을>.
이야기를 돌려, 서울에서는 그림이야기가 정치이야기보다 뜨거운데 왜 도내서는 정치권에서 그림이야기 듣기 어려울까요.
도내서 그림을 두고 소송이 벌어지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작품의 가치에 대한 평가절하에 있습니다. 그림은 말 그대로 '아는 만큼' 보이는 특징을 지닌 재화이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작품이라 할지라도 작가의 사인 하나로 수천, 수만 배 차이가 나는 작품에 로또식 대박을 기대하는 이들을 찾기 어렵습니다.
그림에 대한 문전박대는 관공서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아직도 도내 몇몇 경찰서와 동사무소 등에는 상당수의 작품이 걸려 있지만 인테리어용 이상의 가치를 부여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수년째 똑같은 작품이 똑같은 자리에 걸려 있는 모습을 종종 목격하게 됩니다. 주민등록증 받으러 가서 본 작품과 10년 후 인감증명을 받으러 가서 본 작품이 같은 작품인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작품들은 대개 작가의 기증이나 대여가 상당수 차지하는데 누구도 이의제기하지 않습니다. 작품을 치우게 되면 빈 벽이 채우기 부담스러운 관공서도 난감하고 작가도 자신의 전시팸플릿에 작품 소장처 목록으로 올릴 '기회'를 날리기 아쉽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그림의 소유권을 확고하게 구분 짓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도내 많은 기업에도 크기와 종류가 다양한 작품이 걸려 방문객을 맞이합니다. 일부의 기업은 소장 작품 목록을 만들어 놓기도 하지만 많은 수의 기업은 기업 재산목록에 그림이 빠져 있습니다. 생물처럼 변하는 그림의 가치를 공식적으로 정할 수도 없어 골치 아픈 계륵과 같은 존재감입니다.
최근 그림 소송에서도 나타났듯이 문제가 생기면 가장 밝혀내기 어려운 것이 그림의 원소유자입니다.
그림이 가진 공유자산이란 성격 탓입니다. 말이 좋아 '공유'란 단어를 쓰지 다른 측면에서 보면 공유는 '누구의 소유도 아닌'으로 바꿔 말할 수 있습니다.
삼성가의 고가작품 구입 논란이 되었던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채 마르기도 전에 국세청 로비로 사용된 혐의로 수사 중인 최욱경의 <학동마을>에서 이제는 오리온 그룹의 비자금 의혹에 이번엔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의 <플라워>가 세인의 입을 오르내립니다. 다른 작품도 마찬가지였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앤디 워홀의 작품가가 국내서 더 높아질 듯합니다.
이런 바람이 불 때마다 작가의 인지도가 높아지는 현상이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갤러리마다 소장 중인 앤드 워홀 작품을 감춰놓기 바쁩니다. 그럴수록 공급이 달리는 작품가는 더욱 치솟기 마련입니다. 왜 대한민국의 대국민 미술품 홍보는 정치권이 도맡아 하는지 이런 환상의 짝꿍이 또 있을까요.
경남도민일보/ 여경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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