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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가 끝나면 다음 시대의 사람들은 앞 시대를 평가하는 책무를 가진다. 앞 시대를 완전하게 정리해 모든 성취를 밝히고 평가하는 일이다. 이들 중에는 지속적으로 이어가야 할 일들이 있고 과감하게 도려내어야 할 일도 있다. 고려의 역사는 조선이 평가했고 조선의 역사도 평가받고 있다. 물론 조선과 대한제국을 강탈한 일본은 앞 시대를 왜곡하고 폄훼하는 일을 하기도 했다.
미술도 예외가 아니다. 서양미술에서 근대미술은 현대미술의 개척자의 눈으로 평가와 재평가를 받고 구분되었다. 한국의 근대미술도 현대 미술가들에게 그 의미를 인정받으며 새로운 미술사의 장면에 끼어들고 있다. 개인 미술가도 마찬가지다. 그림을 완성하고 작가 사인을 하고 나면 이전 작품과 비교를 하면서 자학(自學)의 단계로 진입한다.
최근 늦은 밤에 급한 전화를 받는 일이 잦다. 기자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는 소문을 어디서 듣곤 바로 전화기를 쥔 모양이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라며 들뜬 호들갑은 저녁식사 약속으로 입을 다물게 한다. 고마운 이들에게 먼저 인사조차 못한 고약한 기자후기를 자학스런 거짓 여유와 함께하고 있는 중이다.
10년 전이다. 첫 발령부서였던 편집부의 부장님은 '잣대 놓는다'는 말의 의미를 가르쳐 줬다. 편집 일이 신문쟁이의 기준이 된다는 이야기를 하면서다. 컴퓨터 편집 이전에 큰 자를 재면서 활자편집을 했던 활약상에 이어진 이야기다.
5년 전 처음 미술을 맡으면서 설랬던 일이 이전의 시대를 평가했던 두려움이었다면, 지금은 다음 세대의 평가가 두려운 시기다. 경남미술사에 단추 구멍을 달려고 했던 일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용을 그리려다 급하게 이무기를 그렸다가 눈에 잉크를 흘린 작품을 전시장에 내놓아야 하는 화가의 심정과 어찌나 같은지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인다.
고개를 들면 일은 산적하다. 발등에 쌓인 일은 차버리고, 손앞의 일은 잡아서 뒤로 던져놓는다. 그래도 한치 앞에 놓인 일을 볼 혜안은 없다.
다만, 후임 미술기자의 냉철한 평가와 건투를 바라며 마지막 취재노트에 마침표를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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