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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통영 최초의 서양화가인 故 김용주(1910-1959·사진) 화백을 기념하는 화비가 시민들의 모금으로 세워진다.
김용주화비건립추진위원회(위원장 최규태)는 10월 1일 오후 5시 통영시민문화회관에서 ‘김용주 탄생 100주년 기념 화비 건립 및 기념전’을 갖는다.
김용주 선생의 화비는 탄생 100주년이었던 지난해 건립추진위원회가 결성돼 그해 10월부터 예총, 미협, 시민단체, 시민 등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모금운동을 펼쳐 탄생 101주년 만인 10월 1일 세워지게 됐다.
화비는 부산대학교 미술학과 김문규 교수가 ‘빛’이라는 작품으로 표현해냈다. 화비 설치 장소는 남망산 공원 내 통영시민문화회관 옆에 자리하게 된다.
만석꾼의 맏손자였던 김용주 화백은 지난 1910년 10월 14일 통영시 태평동 617번지에서 태어나 통영공립보통학교와 일본 동경 메이지학원(明治學院) 중학부를 거쳐 카와바타 미술학교(川端畵學校) 양화부에 입학했다.
1940년 고향 통영으로 돌아온 김 화백은 항남동 9번지의 언덕 위에 화실을 마련해 놓고 그해 조선미술전람회(蘚展) 양화부에 2점의 작품을 출품해 2점 모두 입선했으나, 이후 조선미술전람회에 더 이상 출품하지 않고, 중앙화단의 활동을 도외시하며 고향 통영에서 작품 활동을 했다.
술은 입에 대지도 않으면서 술을 잘 사고, 온화한 얼굴에 환한 웃음, 뛰어난 유머감각으로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드는 그의 주위에는 언제나 많은 친구들이 있었다.
유치진, 유치환, 유치상, 장응두, 서성탄, 최삼한기, 김기섭, 박재성, 황하수 등 당시 통영의 문화인들은 누구라 할 것 없이 그의 화실에 출입했고, 정찬진(일본거류민단 단장, 재일동포회장)은 통영에 오면 김 화백의 집에서 먹고 잤다.
1945년 해방이 되자, 김용주 화백은 통영중학교와 통영여자중학교에서 미술교사로 재직했다. ‘통영문화협회’의 창립회원으로 참여했으며, ‘경남교육미술연구회’를 결성하고, 방학 기간 동안 경남 각 지방을 순회하며 전시회, 강연회, 사생 대회를 개최하는 등 미술계몽과 서양화 보급에 힘썼다.
김 화백은 이때부터 미술지망생들을 받아들였는데, 이태규, 김형근, 이한우, 정창수, 박종석, 황유찬, 정근대 등이 그의 문하생들이다.
특히 김 화백은 1953년 이중섭이 6·25전쟁 때 피난와 통영 나전칠기 양성소에 오게 되자 산양면에 있던 선생의 농장집 사랑채를 내줘 이중섭과 이태규를 함께 기거하게 했고, 이후 항남동 성림다방에서 이중섭의 개인전을 열 수 있도록 준비하고 도와줬다.
1950년 후반, 김 화백은 불편한 몸으로 작품 제작에 몰두하다 천재적 기량을 다 펼쳐 보지도 못한 채 1959년 1월 15일 새벽 49세의 젊은 나이로 불꽃 같은 예술적 생을 마감했다.
한편 김용주 화백 화비 건립을 기념해 김 화백의 막내딸이며 옻칠예술가인 김설(숙명여자대학교 교수)씨가 통영옻칠미술관 초대로 10월 1일부터 16일까지 ‘김설 칠예작품전’을 갖는다.
통영미술협회도 2011 통영예술제 기념 및 김용주 화백 화비 건립을 축하하는 ‘제28회 통영미술협회전’을 10월 1일부터 10일까지 통영시민문화회관 대전시장에서 마련한다.
경남신문 - 조윤제기자 cho@knnews.co.kr
통영 최초 서양화가 김용주 화백, 고향 언덕에 ‘빛의 화비(畵碑)’로 우뚝
지난해 탄생 100주년 기념 추진 |
내일 통영시민문화회관 옆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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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최초 서양화가인 故 김용주 화백.
‘빛’이라는 작품으로 표현한 김용주 화백 ‘화비’
통영 최초의 서양화가인 故 김용주(1910-1959·사진) 화백을 기념하는 화비가 시민들의 모금으로 세워진다.
김용주화비건립추진위원회(위원장 최규태)는 10월 1일 오후 5시 통영시민문화회관에서 ‘김용주 탄생 100주년 기념 화비 건립 및 기념전’을 갖는다.
김용주 선생의 화비는 탄생 100주년이었던 지난해 건립추진위원회가 결성돼 그해 10월부터 예총, 미협, 시민단체, 시민 등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모금운동을 펼쳐 탄생 101주년 만인 10월 1일 세워지게 됐다.
화비는 부산대학교 미술학과 김문규 교수가 ‘빛’이라는 작품으로 표현해냈다. 화비 설치 장소는 남망산 공원 내 통영시민문화회관 옆에 자리하게 된다.
만석꾼의 맏손자였던 김용주 화백은 지난 1910년 10월 14일 통영시 태평동 617번지에서 태어나 통영공립보통학교와 일본 동경 메이지학원(明治學院) 중학부를 거쳐 카와바타 미술학교(川端畵學校) 양화부에 입학했다.
1940년 고향 통영으로 돌아온 김 화백은 항남동 9번지의 언덕 위에 화실을 마련해 놓고 그해 조선미술전람회(蘚展) 양화부에 2점의 작품을 출품해 2점 모두 입선했으나, 이후 조선미술전람회에 더 이상 출품하지 않고, 중앙화단의 활동을 도외시하며 고향 통영에서 작품 활동을 했다.
술은 입에 대지도 않으면서 술을 잘 사고, 온화한 얼굴에 환한 웃음, 뛰어난 유머감각으로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드는 그의 주위에는 언제나 많은 친구들이 있었다.
유치진, 유치환, 유치상, 장응두, 서성탄, 최삼한기, 김기섭, 박재성, 황하수 등 당시 통영의 문화인들은 누구라 할 것 없이 그의 화실에 출입했고, 정찬진(일본거류민단 단장, 재일동포회장)은 통영에 오면 김 화백의 집에서 먹고 잤다.
1945년 해방이 되자, 김용주 화백은 통영중학교와 통영여자중학교에서 미술교사로 재직했다. ‘통영문화협회’의 창립회원으로 참여했으며, ‘경남교육미술연구회’를 결성하고, 방학 기간 동안 경남 각 지방을 순회하며 전시회, 강연회, 사생 대회를 개최하는 등 미술계몽과 서양화 보급에 힘썼다.
김 화백은 이때부터 미술지망생들을 받아들였는데, 이태규, 김형근, 이한우, 정창수, 박종석, 황유찬, 정근대 등이 그의 문하생들이다.
특히 김 화백은 1953년 이중섭이 6·25전쟁 때 피난와 통영 나전칠기 양성소에 오게 되자 산양면에 있던 선생의 농장집 사랑채를 내줘 이중섭과 이태규를 함께 기거하게 했고, 이후 항남동 성림다방에서 이중섭의 개인전을 열 수 있도록 준비하고 도와줬다.
1950년 후반, 김 화백은 불편한 몸으로 작품 제작에 몰두하다 천재적 기량을 다 펼쳐 보지도 못한 채 1959년 1월 15일 새벽 49세의 젊은 나이로 불꽃 같은 예술적 생을 마감했다.
한편 김용주 화백 화비 건립을 기념해 김 화백의 막내딸이며 옻칠예술가인 김설(숙명여자대학교 교수)씨가 통영옻칠미술관 초대로 10월 1일부터 16일까지 ‘김설 칠예작품전’을 갖는다.
통영미술협회도 2011 통영예술제 기념 및 김용주 화백 화비 건립을 축하하는 ‘제28회 통영미술협회전’을 10월 1일부터 10일까지 통영시민문화회관 대전시장에서 마련한다.
경남신문 - 조윤제기자 ch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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