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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웅천 도공(陶工)- 조윤제 문화체육부 차장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1.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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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1293
내용
임진왜란, 정유재란 7년 가까이 일본은 조선에 막대한 피해를 남겼다. 인명 살상은 물론 문화재 약탈·파괴, 기술자 납치 등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수탈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강행된 임진왜란을 일각에서는 ‘도자기 전쟁’이라 부르기도 한다. 조선 도자기를 너무 좋아했던 도요토미의 개인적 취향이 반영된 말인 듯한데, 그래서 도요토미는 조선 도공을 데려오라는 납치명령을 내리기까지 했다.

▼임진왜란 중 조선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도공은 충청도의 이삼평, 전라도의 심수관, 진해 웅천지역의 도공 등 크게 3곳의 도공집단으로 분류할 수 있다. 우리 지역으로 볼때 진해 웅천지역 도공들은 도요토미의 납치명령서에 의해 끌려간 도공 집단이다. 웅천지역에서 가장 먼저 일본으로 건너간 도공은 종차관(從次貫)이며, 그 다음으로 거관(巨關)과 에이(고려할머니)였다. 이 밖에 웅천지역에서는 100여 명의 도공과 그 가족들이 일본으로 끌려갔다.

▼크게 보면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인정받고 있는 일본 도자기의 역사는 조선 도공과 그 후손들의 열정의 결과물이라고 보면 정확하다.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간 조선 도공들은 일본에서 살기 위해 도기와 자기를 만들었고 최고만을 만들었다. 거관의 집안은 더 좋은 흙을 찾기 위해 일본 각지를 다녔으며, 결국 최고의 흙을 찾아내 순백색의 훌륭한 자기를 빚었다. 나중에 거관과 에이, 종차관의 후손들이 함께 모이면서 웅천 선조들의 가마는 영주와 막부와 황실의 어용가마가 되는 영화를 누리기도 했다.

▼끌려가기는 했지만 열정적 도자기 삶을 산 웅천 선조 도공들은 성(姓)을 받으면서 무사(武士)의 상징인 칼까지 차고 다니기도 했다. 지난 8월 일본 히라도 미카와치 지역에서 만난 웅천 도공의 후손들은 400년 동안 선조들 못지않은 작업을 계속하고 있었다. 하지만 도공으로서의 처우는 선조들의 영화에는 미치지 못하는 힘겨운 삶을 살고 있었다. “일본 미카와치에서 후손들이 도자기를 굽고 있다는 것을 경남에 많이 알려 달라”는 말이 아직도 귓전에 선해 가슴이 찡해진다.

조윤제 문화체육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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