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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할머니 20년간 돌본 '착한 공무원'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2.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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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1168
내용

그렇게 허무하게 이승을 떠날 줄 알았더라면 생전에 좀 더 자주 찾아뵙고 잘해 드릴 걸…. 회한만 남습니다."

비록 육신은 벗었지만 그래도 할머니는 외롭지 않았다. 마지막 가는 길에 이승에서 선택적 인연으로 맺은 아들과 며느리, 손자, 손녀가 함께했기 때문이다.

공무원이 근무 중에 알게 된 홀 할머니를 20년이 넘도록 남몰래 보살피며 친어머니처럼 모셔오다 마지막 가는 길인 장례까지 직접 치러 각박한 세태에 귀감이 되고 있다.

김해시청 여성아동과 임주택(48·사회복지 6급) 씨. 그는 20년 전인 1991년 6월 김해시 동상동사무소에 7급으로 첫 발령을 받았다. 이후 동상동에 살던 이진혁(88) 할머니를 만났다.

    
 
  김해시 여성아동과 임주택 보육지원계장./박석곤 기자  
당시 67세였던 할머니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신분이었다. 정부에서 지급하는 월 30여만 원의 보조금을 받아 생활했다.

할머니는 젊은 시절 결혼 후 3일 만에 남편이 징용에 끌려가는 불운을 겪었다. 이후 남편은 생사를 확인할 길이 없었고, 할머니는 3년 뒤 시댁에서 나온 후 동상동에서 자식 하나 없이 줄곧 혼자서 월세방에서 살았다. 정부 보조금과 폐지 등을 수집하면서 생계를 연명해갔다. 이런 딱한 사정을 알게 된 임 씨는 공무원으로서 당연한 일인 양 할머니 보살핌에 한치도 소홀하지 않았다. 수시로 전화해서 식사와 건강을 챙겼다.

비록 혈육의 아들은 아니지만, 영혼의 아들이 되고자 작정했다. 이런 고마움을 안 할머니는 제주도 관광여행을 다녀오면서 관광기념품인 수건을 한 장 산 뒤 임 씨에게 줬다. 할머니로서는 큰 마음 먹고 산 선물이었던 만큼 임씨는 눈물겹도록 고마웠다. 수건 한 장이 이들을 선택적 모자지간으로 이어준 계기가 됐다.

이후 이들 모자는 매일 전화로 안부를 주고받으며 서로 보살핌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임 씨는 동사무소 근무 5년 만인 1996년 7월 김해시청으로 발령받았다. 임 씨는 동사무소를 떠났지만, 할머니 챙김에는 변함이 없었다. 한번 맺은 인연으로 임 씨의 아내(48)와 아들(대학 2년), 딸(중 2년)도 할머니 댁을 자주 찾아가 반찬을 놓고 식사도 함께하며 한가족이 됐다.

할머니에게는 뜻밖에 며느리와 손자·손녀까지 생기면서 졸지에 대가족을 이뤘다.

임 씨가 바쁜 날에는 며느리나 손자·손녀가 할머니를 보살폈다. 아플 때는 병원도 모셔가고 적적할 때는 말벗을 자처했다. 임 씨 가족의 할머니 챙김은 할머니가 눈을 감는 순간까지 계속됐다. 지난 3월 23일. 임 씨는 출근해 변함없이 할머니에게 전화했다.

하지만, 평소와 달리 아무 반응이 없자 직감적으로 이상한 징후를 감지했다. 곧바로 집에 있는 아내에게 연락해 할머니 댁을 찾도록 했다. 임 씨 아내는 할머니의 얼굴빛이 병색으로 가득하자 김해의 한 병원으로 모셔 입원시켰다. 그러나 입원 3일 만인 지난 26일 할머니는 세상을 떠났다. 임 씨는 직접 상주로 병원 영안실에 빈소를 차렸다. 임 씨 부인과 아들·딸도 함께하며 찾아오는 조문객을 맞았다. 가는 길이라도 적적하지 않게 하려는 의도에서였다.

당시 동상동 사무소에 근무하면서 할머니 딸을 자처한 시청 여직원 4명도 마지막 길에 동행했다. 장례를 위해 장을 보며 음식도 마련했다.

상주인 임 씨 가족들은 할머니를 김해추모공원에서 화장한 후 납골당에 안치하고 절(동상동 소재)에 49재를 올렸다. 10년간 절에서 할머니 제사를 지낼 계획이다.

임 씨는 "이렇게 빨리 가실 줄 알았더라면 한 번이라도 더 찾아보고 잘해 드릴 걸, 가슴 속에 회한만 남는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웃 할머니 20년간 돌본 '착한 공무원'
http://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376033 - 경남도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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