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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환철(화가)
요즘같이 살을 에는 추운 계절에는 가슴을 찢는 듯한 비탈리의 샤콘느 G단조 바이올린곡이나, 러시아 대설원을 연상케 하는 장중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 1악장과 같은 음악이 들을 만하다.
특히 혼자서 그림을 그리는 동안 이러한 음악들은 내게 숨겨진 영감들을 자극하고 혼을 불러오며 예술을 지향하는 끝없는 동반자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그들의 혼을 녹여낸 이런 치밀한 곡들은 자연과 더불어 내 창작의 원천이 되고 영혼을 살찌우는 근원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림 또한 이와 다르지 않아 좋은 작품 하나가 주는 정신적 위로는 가히 심금을 충분히 울리고도 남으리라 생각된다.
금세기 최고의 종교화가로 칭송받으며 ‘미제제레’란 석판화 작품을 통해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목도한 충격과 슬픔으로 인해 인간의 나약해진 정신세계를 비판한 조르지오 루오, 사랑하는 가족들의 연이은 죽음이 그림자처럼 늘 따라다녔던 ‘절규’란 작품으로 잘 알려진 노르웨이의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 등 유명이든 무명이든 작가들의 작품 속에는 그들 자신의 삶과 정신적 이유가 오롯이 숨겨져 있다.
한편 요즘 같은 허허로운 세파에 더욱 빛나고 돋보이는 작가는 조선 후기 최고의 서화가인 추사 김정희 선생을 들 수 있다. 추사 선생이 자신의 애제자 이상적에게 내린 그림 ‘세한도’에 드러난 풍미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누옥과 한 노인, 소나무 한 그루가 주는 여백의 백미는 단출하며 군더더기 없는 명료함으로 노예술가의 품위와 인격이 묻어나고 있으며, 숱한 모략으로 당대에 핍박받은 자신의 심정과 작가의식을 충분히 담고 있다.
이같이 고품격의 예술작품은 세기와 시간을 넘어 인간의 영혼을 울리고 인간 본연의 내적 자아를 자극함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작가들의 겨울은 춥고 기나긴 자신과의 싸움이고 물리적인 생존이 위협받는 계절이다.
하지만 그들은 글로, 음악으로 때론 그림이라는 그들만의 언어를 위해 힘들어도 독특한 생존방법을 터득해 나가야만 한다. 아무리 동장군이 기승을 부려도 맹렬한 기세로 새싹을 밀어 내는 대지의 용틀임이 멈추지 않는 것처럼 자신의 존재에 관한 질문과 믿음을 저버려서는 안 된다. 그것이 절규든, 쓸쓸함이든, 고독함이든, 분노를 넘은 추사의 평정이라 하더라도….
박환철(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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