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행사가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사람이 있다. 한국화가 김병규(67·사진) 씨.
약속이라도 한 듯 적게는 한 달에 두세 번, 공연장과 전시실에서 그와 마주친다. 볼 때마다 그는 무심한듯 시크하게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있고, 연거푸 작품이나 공연 사진을 찍고 있다. 그래서 사진가인 줄 알았더니 한국화가란다. 작품을 찍는 화가? 대체 무슨 사연일까. 김 씨가 붓 대신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가 찍은 사진은 어디에 쓰이는 걸까? 지난 18일 제26회 대동제가 열리고 있던 마산합포구 대우백화점에서 김병규 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마산동중과 마산상고를 다닐 때 미술부였다. 구속받는 걸 워낙 싫어하고 모험심이 많아 여러 군데에서 일을 했다. 마산수출자유지역이 들어설 무렵, 일본인을 상대로 레저 사업도 했다.(웃음)"
- 한국화가라고 하던데, 언제 다시 붓을 잡았나?
"1971년 크게 사고가 나서 3~4년 꼼짝도 못하고 누워 있었다. 그림은 그 이후부터 꾸준히 그리기 시작했다. '미인도'로 유명한 교당 김대환 선생으로부터 그림을 배웠다. 내가 마지막 제자다."
- 카메라를 항상 들고 다녀, 사진가인 줄 알았다. 블로그에 들어가 보니 '예술'과 관련된 사진도 어마어마하더라. 언제부터 블로그를 했나?
"내가 좀 별나다.(웃음) 10여 년 전 블로그 하는 게 유행이었는데, '나도 한 번 해보자'해서 '야후'에서 블로그를 시작했다. 주제가 있으면 좋겠다 싶어 내가 몸담은 '문화'를 택했다. 거창한 이유는 없었다."
- 지난해 12월 31일로 야후 코리아(Yahoo Korea)가 문을 닫았다. 10여 년 동안 찍은 사진들이 한순간에 사라졌겠다.
"복원하는 데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웃음) 아직 갈 길이 멀다. 작년 자료를 살리는 데 꼬박 두 달 가까이 걸렸는데, 언제 다 될지는 모르겠다. 1988년 시작된 '대동제' 같은 귀중한 사진은 따로 보관해 놔서 다행이다. 안타까운 것은 14~18회 대동제 사진만 없다는 것이다."
- 참석을 못했나?
"그렇다. 대동제는 엄연히 지역 미술사에 포함되어야 할 주요 내용인데, 대동제 역사를 한 번에 읽어볼 수 있는 자료가 거의 없다."
- 대동제뿐만 아니라 도내 미술 아카이브 구축이 시급한 것 같다. 어쩌면 김 작가가 그 역할을 대신해왔다고 볼 수도 있겠다.
"지난 1988년 한국미술협회 마산지부에서 〈마산미술 50년〉을 발행했는데,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자료의 소중함'을 많이 깨달았다. 그 당시 지부에서 책을 만들려고 자료를 수집했는데, 정말 많이 없었거든. 그래서 난 힘 닿는 데까지 카메라로 기록하고 싶은 마음이다."
- 주위에서 사진 달라는 사람도 많이 있을 것 같은데…. 공짜로 주나?
"웬만하면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공짜로 준다.(웃음) 작가 중에 원본이 필요하다고 하면 이메일로도 보내준다. 어떤 작가는 '왜 내 전시 사진은 안 찍어 주느냐?'라며 삐치기도 하고, 합동전이 열리는 날이면 '왜 다른 작품만 찍고 내 작품은 안 찍느냐'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사람도 있다. 에피소드가 참 많다. 될 수 있으면 이름없는 사람, 새롭게 그림을 시작하는 사람의 작품을 찍고 싶다."
카메라는 물론, 동영상 편집 등도 능숙한 '신세대' 김병규 작가의 새 블로그는 포털 사이트 '다음'(blog.daum.net/fulfyri)에 마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