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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줄탁동시- 서 휘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3.03.13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1281
내용

 

봄입니다! 그토록 추웠던 겨울이 가고 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유치원에서부터 대학교까지 3월 초의 학교 모습은 새로운 만남들로 인해 활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즐겁고 흐뭇하지요! 그러다가 문득 입학과 관련한 사진을 보고 싶어 앨범을 뒤적입니다. 덕분에 이제 갓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들과의 첫 수업에서 느꼈던 설렘은 잠시 접어두고, 어린 시절 커다란 하얀 손수건을 가슴에 붙인 채 어머님의 손을 꼭 붙잡고 서 있는 빛바랜 흑백 사진을 꺼내봅니다. 그 시절 그 표정에서 제가 과연 설렘에 가슴이 두근거렸었는지 아니면 생소한 환경에 두려워 가슴이 쿵쿵거렸는지 곰곰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설렘 또는 두려움의 시절에 저와 인연이 닿았던 수많은 선생님으로부터 ‘줄탁동시’의 황홀한 순간이 있었는지 돌이켜 봅니다. 또한 수많은 제자들에게 제가 과연 줄탁동시의 기쁨을 주었는지 생각해 봅니다. 이내 이와 같은 좋은 인연의 순간들이 그리 많지 않음을 발견하고 어린 시절 학생으로서 학업에 소홀했음과 지금 스승으로서의 나태함에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줄탁동시란 선불교의 선문답서인 벽암록에 나오는 글로서 줄은 알 속의 병아리가 세상 밖으로 나오려 껍질을 쭉쭉 빨 줄, 탁은 어미 닭이 때가 되었음을 알고 알 껍질을 톡톡 쪼을 탁, 동은 같을 동, 시는 때 시의 뜻으로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려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너무 이르지도 늦지도 않는 가장 적절한 시기에 어미 닭이 병아리를 도와주는 아름다운 순간’을 의미하는 사자성어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스승과 제자, 부모와 자식, 직장 상사와 부하 직원 그리고 선배와 후배의 관계에서 적용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줄탁동시의 인연이 닿는 인간관계는 참으로 행복한 만남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어미 새는 병아리가 알 껍질 안에서 힘들지 않도록 서둘러 깨뜨려 주면 좋으련만 왜 줄의 반응이 있을 때까지 기다릴까요? 그 이유는 어미가 서둘러 도와줘서 깨어난 아기 새는 이소(離巢)가 가능하더라도 야생의 환경에서 제대로 살아남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현명한 어미는 힘겹겠지만 병아리가 스스로 깨쳐 나올 수 있는 힘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현명한 부모는, 지혜로운 스승은, 지도자 능력을 갖춘 직장 상사는, 그리고 진정한 멘토(mentor)는 탁이 반드시 필요한 진실의 순간(moment of truth)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병아리와 닭이 줄탁동시를 한다면 만물의 영장인 우리 인간은 어떻게 줄탁동시의 조건을 만들어야 할까요? 그 조건은 주변 환경과 스스로의 변화에 대한 적극적인 순응과 도전, 미래에 대한 다양하고 철저한 준비, 가야 할 때 가고 머물러야 할 때 머물 수 있는 시의적절함, 누군가 기꺼이 탁의 역할을 해 줄 상호간 믿음이 가는 인간관계, 줄과 탁이 동시에 일어나는 진실의 순간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행동 철학 그리고 실천 등을 의미할 것입니다.

세상에는 어른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리고 봄날의 새순처럼 여리고 여린 아이들과 청춘 또한 많습니다. 비록 세상이 각박하고 험난해도 어린 새싹들을 힘겹게 하는 이들보다는 무언가 도움을 주고 싶어 하는 어른들이 분명 많을 것입니다. 어른들은 젊은이들에게 줄 하면 -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성실히 다 하고 나면, 반드시 탁이 - 하늘의 뜻이 아니더라도 누군가 하늘의 뜻이 되도록 도와줌이 - 있을 것이란 믿음을 심어주고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젊은이들이 노력의 기쁨을 알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해 봅니다.

햇살 스며든 봄바람에 흩날리는 연초록빛 버들가지가 눈부십니다. 이 찬란한 계절에 수많은 분들에게서 서로를 위한 줄탁동시의 마음이 봄날의 샘물처럼 솟아났으면 합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새로운 만남에 대해 두려움보다는 설렘으로 가슴이 쿵쾅거렸으면 합니다.

서 휘(창원문성대학 문헌정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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