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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도 감동한 한 동장의 열정, 세계적 명소 낳아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3.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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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1039
내용

도시, 문화 옷 입고 재생을 꿈꾸다] (4)기업-주민 협업 돋보인, 일본 나오시마

 

처음 이 섬에 발을 디딘 후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어디선가 익숙한 음악 소리가 계속해서 귓가에 흐른다.

 

"음음음음~" 흥얼거리며 귀를 기울이니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이 경쾌하다. 소리는 바다 쪽에서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니 좀체 보지 못한 신선한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섬과 뭍을 잇는 페리 앞. 일군의 사람들이 배 앞에 모여 석별의 정을 나누고 있었다. 음악 소리는 선상 갑판에서 흘러나왔다.

 

나오시마(直島). 일본 시코쿠 가가와(香川) 현 세토나이카이 국립공원 구역에 속하는 섬이다. 둘레 16㎞, 면적 14㎢로 우리나라 여의도 크기 정도에 불과하며 인구는 3200명 남짓이다. 이웃 간 소소한 정을 담뿍 느끼고 살 법한 작고 외딴 섬. 이날 기자가 본 광경은 섬에 살던 주민이 뭍으로 이사를 하게되자 인근 주민들이 배웅을 나온 모습이었다.

 

이렇게 작고 순박한 섬이 1년에 인구 100배가 넘는 관광객이 몰려드는 관광 명소가 됐다. 세계적인 여행전문지 <콘드 나스트 트래블러>는 이 섬을 파리, 베를린, 두바이와 등과 함께 '세계 7대 관광지'로 선정하기도 했다. 이유는 섬 전체가 미술관이라고 해도 될 정도의 '예술의 섬'으로 거듭났기 때문이다.

 

20년 전만 해도 줄어드는 인구와 황폐해진 경제의 나락에서 허우적거리던 작은 섬이 어떻게 세계적인 관광지로 이름을 알리게 됐을까.

 

이대로 섬의 명멸을 지켜봐서는 안 된다는 주민들의 변화 노력과 행정 간 유기적 조합, 이를 눈여겨본 기업의 과감하고 전폭적인 투자, 그리고 세계적 예술가들과 결합이라는 커다란 힘이 뭉쳤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전통신사 계단을 광학 유리로 표현한 고오진자 외부./공동취재단  

◇행정과 기업의 강력한 의지가 낳은 산물

나오시마는 불과 20년 전만 하더라도 죽어가는 섬이었다.

1917년 섬 북쪽에 미쓰비시사가 중공업 단지를 건설한 후 70여 년간 구리 제련소에서 나오는 연기와 폐기물로 섬은 황폐해졌다. 1960년대 7900여 명에 달하던 인구는 1980년대 중반 절반 이하로 줄었다. 회생이 불가능할 것 같던 섬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한 행정가의 강력한 자구 노력과 이에 화답한 한 기업가에 의해서다.

 

미야케 치카즈쿠(三宅親連·1909∼1999)는 36년 동안 나오시마초(直島町) 단체장을 지냈다. 미야케는 섬 일대를 '깨끗하고, 건강하고, 편안한 정경'으로 바꾸겠다는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1960년대 후반 섬 북쪽을 '산업지역', 섬 관문인 미야노우라 항 인근 중심권역을 '생활·교육 영역', 남부 혼무라와 고단지 마을 지역을 문화예술리조트 영역으로 나눠 개발하고자 했다. 의지는 있었지만 재원은 턱없이 부족했던 미야케 동장은 지역 기업가들을 찾아다니며 계획을 설명하고 투자를 권유했다.

 

여기에 화답한 것이 후쿠다케 출판사의 후쿠다케 데쓰히코 회장이다. 인근 대도시인 오카야마 태생인 그는 나오시마 남쪽 땅을 사들여 캠프장을 지으려는 계획을 세웠다.

 

미야케 동장은 이미 1970년대 초반 일본의 유명 건축가인 이시이 가즈히로를 불러 나오시마 초등학교와 중학교, 유치원 리모델링에 착수해 예술적 조형미가 두드러진 새로운 학교로 재탄생시킨 바 있었다.

 

후쿠다케 회장은 문화예술에 대한 선진적 조예를 가진 미야케 동장에 감복해 기업의 사회공헌 차원에서 나오시마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를 결정한다. 그런데 1986년 그가 갑자기 사망하자 후계자인 아들 후쿠다케 소이치로 현 베네세 그룹 회장이 유지를 받들었다.

 

후쿠다케 소이치로는 1987년 섬 남쪽 땅을 사들인데 이어 1988년 '나오시마 문화촌 구상'을 발표했다. 1989년 국제어린이캠프장을 완성한 후, 1990년대 초반부터는 노출콘크리트 공법으로 널리 알려진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와 함께 본격적으로 예술의 섬 프로젝트에 들어간다.

 

   
  나오시마 섬 입구에 설치된 구사마 아요이 작 '붉은 호박'./공동취재단  

◇죽어가던 섬이 현대미술 본거지로

베네세 그룹과 안도 다다오의 만남으로 나오시마는 본격적인 현대미술의 본거지로 탈바꿈한다.

 

이들은 첫 사업으로 베네세 하우스(1992년)를, 뒤를 이어 베세네 하우스 부설 미술관(1995년)을 차례로 건립한다. '자연, 예술, 건축의 공생'을 주제로 한 미술관 건물은 안도 다다오의 특징인 노출콘크리트 기법이 오롯이 녹아있다.

 

 미술관 외부 작품은 배열에 신경을 썼다. 전체적인 외경이 미술관이 가진 내경과 조화를 이루도록 배치해 보는 맛을 더한다. 건물 밖 오브제와 내부 그림을 한 동체 안에서 파악할 수 있도록 해 눈을 뜨고 바라보는 모든 곳이 작품이 되는 진경을 느낄 수도 있다.

 

 

   
  지중미술관 입구 수련 연못.  

지중미술관(2004)은 안도가 꿈꿔왔던 건축 철학이 집약된 공간이다. 미술관을 땅속에 가라앉혔지만 덕분에 자연과 미술작품, 건축물이 완전한 조화를 이뤄 숭고한 감정을 자아낸다. '땅 속'이라는 이름 그대로 언덕지하에 미술관을 매설해 외형적으로 자연능선을 해치지 않았다.

 

지중미술관의 미로 같은 내부는 시야의 급격한 변화를 가져다 준다. 동굴 같은 내부와 뻥뚫린 천장이 쉴새없이 나타났다 사라지며 '내가 외부에 있는 건지 내부에 있는 건지' 헷갈리게 만든다. 내부 어디서나 모두 통하는 빛은 끊임없이 주변환경과 조화, 소통을 통해 살아가는 인간의 삶을 일견 성찰하게끔 만든다.

 

콘크리트라는 인공 물질이 연속되는 의미없는 공간 안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도록 한 설계다. 신기한 것은 조명이 없이도 모든 공간에는 사방에서 빛이 스며들고 있다는 점이다. 자연과 물질의 진정한 조화란 이런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충분하다.

 

일본 출신 세계적인 설치 미술가인 구사마 야요이 작품들 또한 나오시마 곳곳에 설치돼 있다. 미야노우라항에 있는 붉은 호박과 베네세하우스앞 해안에 위치한 노란 호박은 나오시마의 상징캐릭터로 자리매김 했다.

 

 

◇주민 참여로 공감 얻은 '이에 프로젝트'

   
  버려진 치과 건물을 개조한 하이샤.  

베네세 그룹이 처음 나오시마를 예술의 섬으로 만든다고 선언했을 때 주민들은 이들을 반신반의했다.

결국 제 잇속 차리기 아니냐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점차 변해가는 섬의 모습을 보면서 이들의 진심에 감동하기 시작했다. 감동의 절정은 '이에 프로젝트'(집 프로젝트)에서 분출했다.

이 프로젝트는 섬 동쪽 해변 전통 마을인 혼무라(本村) 지역의 150~200년 된 전통가옥을 개조해 미술관으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이었다. 이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주민들의 예술 참여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현재도 계속 진행 중이어서 나오시마의 대표적인 예술 프로젝트로 단연 주목을 받는다.

 

시작은 혼무라 지역의 한 주민이 동사무소에 오래된 가옥을 기증하면서부터다. 주민들은 베네세 그룹과 협의해 이 집을 하나의 미술작품으로 만들기로 한다. 설치미술가 미야지마 다츠오가 개축을 맡고, 마을 125가구 전 주민이 설치에 참여했다. 사각 풀장 내에 디지털 계수기가 들었는데, 주민들이 놓고 싶은 대로 계수기 위치가 정해졌다. 물은 세토 내해를, 숫자는 그 섬에 사는 사람을 의미했다. 이 작품 '시간의 바다(Sea of Time)'가 설치되면서 1998년 3월 이에 프로젝트 1호인 '카도야'가 탄생했다. '모퉁이에 있는 집'이라는 의미인데 섬의 전 가구, 기업, 예술가가 모두 참여해 서로에 대한 긍정적 이해를 돕는 계기로 작용했다.

 

카도야 성공에 자극을 받은 안도 다다오는 이듬해 인근 버려진 절터를 이용해 재2호 건물인 '남사(南寺·난지)'를 만들었다. 내부에는 공간과 빛의 작가 제임스 터렐의 작품 '달의 뒷면'이 놓여있다.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 기본 135분은 기다려야 하는 인기 작품이다.

 

이 밖에 전통 신사의 계단을 광학 유리로 바꿔 지하에서 지상으로 연결되게 한 '고오진자(護王神社)'. 옛날 소금창고로 쓰던 곳에 아크릴로 그린 현대화를 건 모습이 인상적인 '이시바시(石橋)', 다다미방으로 된 옛 기원의 모습을 재현한 '고카이쇼(碁會所)', 버려진 치과건물을 각종 잡동사니와 자유의 여신상 등을 콜라주 형식으로 배치해 톡톡 튀는 감각을 주는 '하이샤(치과)'도 있다.

 

이들 작품은 '1건물 1작품' 개념으로 지난 1997년부터 2007년까지 모두 7채가 완료됐다. 올봄 완공된 '안도 뮤지엄'까지 더하면 8채가 완성된 셈이다. 원래 100년 된 건물이던 안도 뮤지엄은 안도가 이를 모두 해체한 후 자신을 대표하는 노출콘크리트로 집을 짓고, 해체한 집을 다시 붙인 작품이다. 안도가 살아 온 역사와 대표 작품 소개, 베네세 그룹과 나오시마 그룹의 연혁 등이 전시돼 있다.

 

경남도민일보 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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