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정보
창원시 마산회원구 마재고개길 14번지. 공장 단지 내 노란색 건물이 눈에 띈다. '마재고개 14'다. 누구나 찾아와 목공과 조각, 회화 등을 배울 수 있는 문화창작공간이다. 설치미술을 주로 작업하는 하석원(49) 작가가 지난해 10월 지역민에게 개방한 작업실이다.
지난 몇 달 창원지역 일본군위안부 추모 조형물인 소녀상을 만드느라 여념이 없었다는 하 작가를 마재고개 14에서 만났다.
"마재고개 14가 문을 연 지 1년이 되어가네요. 시민 중심 창작공간으로 기능을 갖추려고 목공실과 세미나실, 체험학습장을 넣었어요. 문화놀이터로 만들려고 애쓰는 중이죠. 주말에 가족 단위로 많이 찾아옵니다."
마재고개 14를 찾는 지역민은 내서읍에 사는 젊은 층이 대부분이다. 공단 내 노동자의 참여는 아직 낮다고 했다.
"노동자를 끌어안기가 쉽지 않을 거라 예상했지만 역시 어렵더라고요. '문화가 있는 저녁'이라는 말로 상사가 노동자들에게 권유하더라도 그들은 '일'이라고 생각하죠. 이들이 편하게 마재고개 14를 들락거리려면 시간이 더 걸릴 겁니다."
문화창작공간 '마재고개 14'에서 만난 하석원 작가. /박일호 기자 iris15@idomin.com |
하 작가가 지난해 후배 작가들과 마재고개 14를 연 이유는 하나였다. 문화로 공동체 공간을 만들겠다는 것. 그는 인터뷰 내내 '커뮤니티', '소통'이라는 단어를 자주 내뱉었다. 부산 출신인 그가 마산 한 모퉁이에서 지역민과 이야기를 나누는 창작공간을 연 이유는 무엇일까?
하 작가는 이미 공공미술 프로젝트 전문가로 이름이 나 있다. 2006년 당시 부산비엔날레 전시 팀장으로 조각프로젝트를 수행했고 정부가 주관한 'Art in City 공공미술 프로젝트' 총감독을 맡아 공공미술을 진행했다. 창원시가 창동예술촌을 준비할 당시 기획전문가로 참여하기도 했다. 창동 여러 곳을 디자인해 예술촌 기초를 닦았다. 부산과 마산을 오가며 다양한 활동을 했다.
그는 작가가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독일에서 경험했다.
바로 요셉 보이스(1921~1986)다. 모든 사람은 예술가라고 말한 그는 환경친화적인 프로젝트에 성공한 독일 작가다.
"1982년 요셉 보이스는 떡갈나무 한 그루를 작품으로 냈습니다. 프라데리히아눔 미술관 앞에 나무를 심었죠. 그리고 현무암 기둥 6999개도 함께 세웠습니다. 그리고는 말했죠. '현무암을 누구나 들고 갈 수 있다. 대신 그 자리에 나무를 심어라'고요. 5년 만에 떡갈나무 6999그루가 심겼습니다. 총 7000그루 나무심기 프로젝트가 완성된 거죠. 숲으로 변해 장관을 이룹니다. 한 예술가가 도시 산림화를 이뤄낸 거죠. 작가의 상상력에 주민 참여가 더해져 사회를 바꿨습니다."
그는 미술은 '생물'이기 때문에 전시장에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나와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군위안부 추모 조형물 제작도 같은 맥락이다. 일본군위안부창원지역추모비건립추진위원회가 창원지역에 세워질 소녀상을 만든다는 이야기를 듣고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윤귀화·한경희·김두용·조란주 작가와 공동으로 작업했다.
"토론을 기반으로 작업을 진행해 완성했습니다. 5~6개월 정도 걸렸어요. 소녀상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긴장감을 표현했습니다. 민주화 성지인 마산답게 비장함을 나타냈습니다. 치욕의 역사를 절대 잊지 말자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오동동에 대해 할 말이 많았다. 최근 오동동 일부 상인들이 소녀상 건립을 반대하고 나서면서 논란이 됐다.
"기념비라는 인식이 달라지고 있어요. 어디 조용한 곳에 두는 조형물이 아니에요.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게 됐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해서라도 시민과 가까이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동동 주민들에게 묻고 싶어요. 오동동을 앞으로도 술집으로 발전시킬 건지요. 문화는 생물입니다. 소녀상이 오동동을 새롭게 바꿀 수 있어요. 오동동문화광장이 왜 있습니까? 구도심에 문화로 생기를 불어넣는 거잖아요. 그런데 문화광장에도 고층 건물이 들어선답니다. 술집이래요. 오동동 주민들은 잘 생각해야 합니다. 앞으로 어떤 공간을 만들지…."
그는 갈수록 예술인의 역할과 책임에 무게를 느낀다고 했다. 수차례 공공미술을 해오고 봐오면서 한계도 경험했단다.
그래서 그는 끈기를 강조한다. 짧은 시간에 결과를 내는 행정적 미술 사업이 아니라 장기전으로 가는 문화 친숙 거점 공간 만들기.
마재고개삼거리 한쪽에 자리 잡은 마재고개 14가 지역민과 만나 어떤 문화생태계를 보여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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