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정보
사천시 사천읍 옛 사천읍사무소로 이전한 ‘리 미술관’.
▲용현면에 문을 연 사천 1호 ‘리 미술관’
만추(晩秋)의 풍요로움이 보는 이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추수를 끝낸 가을 들녘은 호젓함이 감돌고, 저수지와 어우러진 파란 가을 하늘과 노랗게 물든 단풍잎은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가을의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시골길을 따라 찾은 곳은 2015년 7월 개관해 다양한 전시와 교육 등으로 3년 동안 지역민들에게 사랑을 받은 사천의 1호 미술관 ‘리’가 있었던 사천시 용현면 신촌리.
햇살에 반짝이는 서택저수지와 용현 들녘, 병풍처럼 둘러싼 와룡산의 풍광에 반해 5년 이상 폐가로 방치된 옛 다니엘 수도원을 임대해 문화 불모지인 사천에 문화의 불씨를 살리는 불쏘시개 역할을 했던 유은리, 이유경(가명), 이민지 (가명) 세 사람의 꿈이 담긴 곳이다. 미술관 이름도 세 사람의 이름에 공통적으로 들어 있는 ‘리’자를 따 ‘리 미술관’으로 지었다.
이들은 첨단 항공 우주 산업 도시인 사천을 문화예술의 감동과 아름다움이 있는 도시, 우리의 삶 속에 다양한 문화적 가치가 살아 숨 쉬는 도시를 꿈꾸며 ‘문화가 사람을 살리는 길’을 이념으로 문화와 예술을 선도하는 역동적인 문화예술 공간으로 탈바꿈을 시도했다.
지붕이 새고, 전기, 수도시설조차 없는 폐허나 다름없는 공간에 이들은 생명을 불어 넣었다. 예상보다 많은 비용과 운영비 등으로 어려움도 겪었지만 구조 변경 공사를 시작한 지 5개월여 만에 265.78㎡(80.1625평)의 크기에 제1전시관(90㎡), 제2전시관(66㎡), 상설전시관, 도서관, 사무실, 휴게공간 등을 갖춘 제법 어엿한 미술관이 탄생했다.
지금의 자리로 옮기기 전 용현면 ‘리 미술관’.
미술관은 개관 기념으로 서양화가 유충렬·허훈의 초대전을 갖는 등 작가들의 초대전이 이어졌다.
풍광이 뛰어난 반면 도심에서 떨어진 농촌에 위치해 접근성이 낮은 약점을 갖고도 미술관은 문화예술에 목말라하던 지역민들에게 ‘오아시스’와 같은 역할을 담당했다.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통영, 고성, 진주, 거제 등에서 물어 물어 찾아오는 방문객의 수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났다. 많게는 평일 하루 30여명, 주말은 70~80여명이 전시장의 작품을 감상하는 등 개관 첫해 6개월 동안 1000여명의 관람객들이 미술관을 찾았다.
2016년에는 최웅렬·김도화·김정혜 등 32회의 초대전과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길위의 인문학’, ‘신나는 예술여행’ 등 다양한 공모사업에 선정되면서 5000여명의 관람객들이 미술관을 찾았고, 지난해에는 박성식·박수진·최진식 작가 등 13회의 기획초대전과 단체전, 그리고 지역브랜드 사업, 창의적 체험학습, 어르신문화 프로그램 등 다양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참여로 7000여명의 관람객과 어린이·청소년들이 미술관에서 다양한 전시와 체험교육을 경험하는 등 지역의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아픔도 있었다. 함께 꿈을 키웠던 2명의 공동 관장이 운영비 등 현실적인 어려움에 부딪히면서 미술관을 떠나 자신의 본업으로 돌아갔다. 이로 인해 유 관장 혼자 미술관 살림을 도맡아 운영하는 고달픈 나날이 이어졌다. 또 협소한 전시공간에서 체험과 교육 프로그램이 함께 진행되면서 웃지 못할 일들이 벌어지기도 했다.
특히 안정을 찾아가던 ‘리 미술관’이 국가산업단지에 포함되면서 불가피하게 이전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전시관.
▲옛 사천읍사무소로 이전한 ‘리 미술관’
3년여의 용현면 생활을 접고 우여곡절 끝에 사천시의 도움으로 옛 사천읍사무소로 이전한 ‘리미술관’은 2개월여의 구조 변경 공사를 거쳐 지난 3월에 다시 문을 열었다.
당시 옛 사천읍사무소(1976~2016)는 청사건물의 노후화, 공간 협소, 주차난 문제 등으로 인근에 새로이 건물을 지어 이전해 유휴시설로 지정된 상태로 1년가량 빈 공간으로 방치돼 있었다.
텅 빈 사무실 공간에 작품을 걸 수 있는 가벽과 조명을 설치하고, 새롭게 페인트칠을 하면서 미술관은 제 모습을 찾아갔다.
건물의 1층은 사천시에서 운영하는 장난감 백화점 ‘꿈꾸미의 보물창고’가, 2~3층은 리 미술관이 공간을 활용했다.
새롭게 단장한 미술관의 2층은 전시관과 학예실이, 3층은 관장실과 지역에서 찾아보기 힘든 ‘어린이 미술관’이 자리 잡았다.
‘어린이들이 놀이를 즐기면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유은리 관장의 의지가 담긴 어린이 미술관은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다양한 콘텐츠 개발로 마음껏 보고, 느끼면서, 뛰어놀 수 있는 공간, 가족들이 예술적 경험과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어린이미술관.
리 미술관 내 어린이 미술관은 전속 작가 2명과 함께 3개월에 한 번씩 어린이들이 꿈과 희망을 꿈꿀 수 있는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선보이면 인기를 끌었다.
첫 기획전에서는 아이들이 편안하게 작품을 접할 수 있는 의도로 ‘이웃집 언니 엽서’展을, 두 번째 기획전에서는 내가 좋아하고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나의 색’이 무엇인지 찾아보는 ‘보이는 고유의 색을 품고’展을, 세 번째 기획전에서는 보고, 듣고, 만지는 오감만족 체험전시 ‘Sound of light seen in a dream’展을 열어 아이들의 꿈을 키웠다. 이와 함께 박은주, 이은경, 최소리, 김영순, 박희선, 박은애, 김성혜 작가의 기획 작품전이 이어지면서 미술관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리 미술관은 다양한 기획전과 연계한 교육프로그램으로 지역민들에게 문화향유의 기회를 제공하고, 아이들에게는 미술을 가까이에서 접하면서 꿈을 키울 수 있는 교육의 장이 되기를 소망하고 있다.
‘리 미술관’의 콘셉트는 ‘색깔’이다. 유 관장은 “사람들이 리미술관은 뭐에 관해 주로 전시하세요? 라고 묻는다면 ‘리 미술관은 색에 관에 미술관입니다’라고 답할 거예요. 색은 우리 아이들이 제일 처음 배우는 미술입니다. 아이들이 제일 먼저 색깔부터 구별하면서 미술에 대해 알아가는 거죠. 아이들과 하는 교육프로그램을 만들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색입니다. 그래서 색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하면서 색에 대한 상설전시관, 색에 대한 아이들 프로그램, 색과 관련된 아트상품 등을 준비 중이다. 내년에는 색에 관한 전시도 할 것이다”고 설명한다.
길위의 인문학.
우여곡절을 겪은 사천의 1호 리미술관은 이제 어엿한 청년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아픈 만큼 더욱 단단해지고 야물어졌다.
통영 전혁림·옻칠미술관, 창원 대산미술관에 이어 막내 미술관으로 출발했지만 도민에게 사랑받는 공간이 되기 위해 오늘도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글·사진= 이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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